전국 사상 에코 마라톤 후기
초보 러너인 나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인 것이 너무 많다. 10km 달리기를 한 것도 불과 두 달 전의 일이며 15km, 하프 마라톤도 지난달에 몇 번 해본 것이 전부이다. 8월 말 <부단히런>이라는 달리기 크루에 참여하면서 50분 달리기를 연습하다 호기롭게 신청한 사상 에코 마라톤은 난생처음으로 참가하는 마라톤 대회이자 앞으로 나의 달리기 인생을 바꿔 놓을 대회였다.
10월 26일 런데이 문고리 마라톤, 하프 코스를 완주하면서 새로운 지경을 열었지만 사실 15km의 거리도 완벽하게 달리지 못하면서 고작 6km의 차이를 전혀 알지 못했던 어리석은 나를 마주하는 경험을 했다. 앞으로 더 15km 달리기 연습에 집중해야 함을 느끼면서 10km 달리기에 깊이를 더해야 함도 알게 되었다.
아주나이스님의 가르침대로 대회 전에는 달리기 연습을 하지 않고 가볍게 걸으며 몸의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다. 몸살 기운에서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지 달릴 때마다 머리도 울려서 오래 달릴 수도 없었다. 이런 상태로는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컨디션 회복에 더욱 힘을 썼지만 내 마음대로 회복되지는 않았다.
문득 “괜히 문고리 하프 마라톤을 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미 지난 일을 어떻게 할 수도 없었고, 대회 일주일 전이라 하프 마라톤을 해도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하프 마라톤의 후유증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력했다. 이제 확실히 배운 것은 절대 욕심내거나 무리하면 안 된다는 진리를 몸에 새기고 달릴 것을 다짐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나의 성장을 위한 달리기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회 당일, 간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 1시에 잠에서 깼다. 조금 더 자려고 눈을 붙였지만 한 시간이 넘도록 잠이 오지 않았고 책을 보며 잠들기를 원했지만 책을 볼수록 또렷해지는 정신이 얄밉기까지 했다.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어주며 집 안을 걸어 다녔더니 이내 나른해지며 침대에 다시 누웠고 새벽 6시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어제 잠들기 전 준비해 놓은 대회티와 준비물을 챙겨 밖으로 나왔고 새벽 공기를 가르며 대회장으로 향했다.
7시 정도 대회장에 도착했고 집결지 근처 주차장에서 사과 한 개를 먹으로 에너지를 보충했고 차 안에서 마사지를 계속하면서 다리 근육을 풀어주었다. 여전히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지만 대회장에 온 이상 걷더라도 완주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한 시간 이십 분이라는 시간제한이 있어 최대한 달리면서 틈틈이 걸으면 시간 내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회 전부터 코스를 계속 머릿속으로 그려왔고, 자주 다녔던 곳이라 어색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러너가 운집한 대회장은 사실 내 성향과 맞지 않았다. 시끌벅적하고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조용히 집중하며 몸을 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 대회장 주변을 가볍게 걷고 차 안에서 집결 시간까지 기다렸다. 대회장 안에 여러 행사 부스들이 있었지만 딱히 나의 관심을 끄는 곳은 없었기에 차에서 휴식을 취했다.
집결 시간이 되니 전체적으로 준비 운동을 하며 대회 준비를 하였고, 5km 마라톤에 참가한 러너부터 순차적으로 출발했다. 많은 러너들 사이에서 과연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을지 가장 걱정이 되었지만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세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러닝화에 장착한 시간 측정용 태크를 다시 확인하고 출발점에서 별도의 출발 신호 없이 러너들 사이에서 출발하였다.
약 삼천여 명의 러너들이 참여했다고 하는데 출발할 때는 러너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앞으로 나가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지만 3km 구간대까지는 부상의 위협을 무릅쓰고 앞에 있는 러너들을 피해 앞으로 달렸고, 4km 구간부터는 걸어가시는 분들이 많아 달리기 편했다. 가민을 보니 긴장했는지 심박수가 170을 육박하고 있어서 더 빠르게 달리고 싶었지만, 페이스를 올리면 후반부에 힘이 떨어질 것 같아, 5분 후반대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렸다.
전국 사상 에코 마라톤 대회는 10km 마라톤의 경우 5km, 7km 지점에서 급수대를 운영해서 좋았지만 평소 무급수 훈련을 해서 두 개의 급수 지점을 이용하지 않고 달렸으며 별도의 에너지 겔도 먹지 않았다. 컨디션 회복을 위해 에너지 겔이라도 먹었으면 조금 더 좋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그동안의 훈련 성과와 순수한 내 실력을 알고 싶었기에 그냥 달리기로 했다.
약간의 오르막길이 있기는 했지만 그동안 업힐 구간이 있는 코스를 달렸기에 크게 힘들지 않았고, 마지막 구간까지 힘을 내어 달려서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내 기록은 58분 28초로 목표로 삼았던 완주와 한 시간 이내에 들어오는 것을 달성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 개인 최고 기록은 아니지만 대회뽕은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는 것으로 그동안 존재 자체를 의아하게 여겼던 대회뽕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완주 후 사진을 찍으며 기념으로 남기려는 러너들 사이에서 완주 기념품만 수령하고 서둘러 본가로 향했다. 어제 잠을 설쳐서 그런지 완주 후 급격하게 졸음이 몰려왔고, 졸음방지 껌을 씹으며 본가에 도착해서 샤워 후 사과 한 개로 배고픔을 달래며 낮잠을 잤다. 긴장했기 때문일까 완주 후에 찾아오는 노곤함으로 꿀맛 같은 낮잠을 잤고 완주의 기쁨보다는 휴식이 기쁨이 더 강렬했다.
낮잠에서 깬 후, 소파에 앉아 대회를 떠올리며 11월 초의 쌀쌀한 가을 날씨가 아닌 20도를 육박하는 따뜻한 날씨라서 혹시 모를 추위를 예상해 긴 팔을 안에 입어서 매우 더웠는데 다음 대회에는 한 겨울이라도 반 팔, 반 바지를 입고 출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생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목표한 바를 모두 이뤄서 기분이 좋았지만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 대회를 경험했으니 내년 봄에는 하프 마라톤에 출전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하며 달릴 것이다. 어젯밤 글쓰기 모임인 몹글 9시 시작 전 줌 미팅을 하면서 여러 작가님들께서 나의 완주를 축하해 주셨는데, 대회의 중심이 완주보다는 체중 감량으로 전환되어 급하게 예전에 찍었던 사진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보았다.
평소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내 사진이 별로 없었지만 2년 전 찍은 사진과 어제의 모습을 비교하니 참 심각할 정도로 뚱뚱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거울도 잘 보지 않아 눈바디도 하지 않았기에 이렇게까지 체중이 불어난 것을 몰랐던 내가 정말 한심했다. 이제 매일의 달리기를 즐기며 체중을 관리하고 달릴 수 있는 컨디션을 유지해서 즐겁게 달릴 것이다.
물론 체중 감량의 축복을 덤으로 누리며 건강하게 오랫동안 부상 없이 달리기를 누리려고 한다. 욕심내지 않고, 무리하지 않으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달리는 나만의 속도로 달리기를 평생의 습관으로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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