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나를 책임지지 않는다
2024년 12월, 바야흐로 연말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내년을 꿈꾸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는 오지 않은 올해이기도 한 시간이다. 직장인으로 살면서 연말은 항상 싱숭생숭하다.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빨리 인수인계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어서 빨리 남은 연차를 소진하며 어떡해서든 합법적으로 출근하지 않는 방법을 찾는다.
회사마다 시기적 차이는 있지만 12월은 보통 내년 조직 개편을 한다. 지금 내가 속한 회사는 11월 중순부터 임원 인사를 시작으로 사원급까지 조직개편을 하여 12월 1일부터 2025년 조직에 근무한다. 그래서 보통 10월까지 누계 실적을 바탕으로 인사고사를 평가하고, 실적 반영은 11월 누계 자료를 하여 진급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끝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다.
오늘은 12월 10일, 신조직에서 근무한 지도 벌써 10일이 지났다. 지난 2주 동안 인수인계를 하며 정신없이 보냈기에 11월 말부터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는 올해 관리했던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였다는 사실이다. 내심 관리 지역이 변경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바랐던 것이 실제로 일어나 조금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다.
올해 내가 소속된 부서는 참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흔히 현안(懸案)이라고 말하는 미해결 업무를 처리하면서 한 명의 퇴사가 가져온 관리 지역의 변화, 그리고 급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가 나에게 주어지면서 10월부터 11월까지 2달 동안 정말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다른 사람도 있는데 왜 내가 굳이 이 업무를 처리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직장생활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기에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업무를 처리해 본 경험으로 겁 없이 덤벼들었지만 수시로 변경되는 시스템적인 처리과정을 다시 익히면서 급히 처리해야 할 계약 관련 업무와 영업장의 환경을 새롭게 만드는 업무까지 무사히 해결하니 어느새 11월 말이 되었다. 약 한 달 반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지는 업무 일지 상에 적혀 있지만 솔직히 기억하고 싶지 않다. 팀원이 퇴사하지 않았다면 내가 하지 않았을 일이라, 애정이나 애착을 가지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남들과는 다르게, 남들보다 돋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겠지만 솔직하게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할 필요도 없었고, 최선을 다한다 한들 바뀌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나는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 업무를 억지로 맞아서 해결했고, 흔히 말하는 뒷수습을 했기에 진이 빠졌을 뿐이다.
퇴사한 팀원을 원망하며 욕할 수도 있지만, 남겨진 업무를 처리하다 느낀 것은 그가 무엇 때문에 급하게 퇴사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이 업무를 계속했더라면 계약 업무부터 환경 개선 업무까지 처리되지 못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업무를 하면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결코 자신은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과 업무를 하는 것은 정말 힘들고 다시는 이런 사람을 상종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퇴사의 대표적인 이유가 업무가 힘들기보다는 사람 때문에 힘들어 퇴사한다는 것처럼, 계약 관계만 아니면 존대를 할 필요도 없는 사람과 마주 보며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못할 짓이다. 그의 퇴사 이유도 사람 때문이겠지만 그만 알고 있는 미해결 업무를 뒷사람에게 아무런 말도 안 하고 퇴사하는 것도 정말 욕을 먹어도 싼 일이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나도 조금 한심하다.
이런 한심함 속에서 직장에서 느낀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 그동안 글쓰기 소재로 딱 한 번 있었던 직장 생활 이야기,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았던 글감이지만 나의 주도적인 직장과의 이별을 준비하면서 이제는 쓰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지난 10여 년 동안의 이야기를 써 갈 것이다. 앞으로 언제까지 직장생활을 할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회사가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언젠간 퇴사를 할 것이고, 회사도 언젠간 망할 것이며, 나도 언젠간 죽을 것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기에, 하고 싶지 않은 업무이지만 직장인이라서 회사밥을 먹기 때문에 해야만 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진정 내가 하고 싶고 하고 싶어서 미칠 지경인 업무를 하는 평생 직업인이 되고 싶은 욕망을 아무것도 없는 하얀 종이 위에 가득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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