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무원들은(원래도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사발령을 받고 나면 업무 인수인계를 전 담당자에게 일정한 시일에 걸쳐 차근차근 받지 못한다고 들었다. 기존의 행정 자료를 뒤져보거나 상급자에게 물어보며 업무를 배워나간다고.
내가 입사한 곳도 공공기관이라서 그런 건지 업무 인수인계가 그리 썩 잘되는 편은 아닌 듯싶다. 행정직 8급으로 입사한 자리는 공석으로 있은지 몇 개월 되었고 그 자리에 있던 분은 나에게 맡겨질 업무+@로(제일 중요한 급여, 시간 외 수당 사대보험, 출장여비 등등등) 상당한 양의 업무를 떠안고 있었다.(들어보면 찰떡표현)
앞서 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내 자리는 단순 행정, 회계업무를 하는 8급(9급 공무원의 95%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전 담당자가 소위 말하는 '일잘러'셨을까, 아님 조직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어 체계가 잡히지 않아서일까, 그도 아니면 일을 맡기면 '저 이것까진 못하겠어요.'라고 말할 수 없는 최강의 책임감을 탑재한 분이셔서 일까.
아무튼 그분은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맡아하시느라 매우 바쁘셨고 몸이 안 좋아져서 잠시 휴직을 하셨다가 결국 퇴사를 하셨다고 한다.
그 자리의 공백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나 유일한 직장 내 친구에 의하면 "이 자리에 오는 사람은 꼭 칼퇴시켜주고 어려운 업무는 주지 않을 거야."라고 다들 다짐과 각오 어느 사이쯤 있는 말들을 했다고 한다. 나도 그 말을 입사하고 두 어번 내 자리 쪽 회계팀에서 들었다.
"히*샘은 일 많이 안 시켜요. 아이도 있고 하니까."
특히나 친구의 제일 친한 그녀(앞으로 내 글에서 나오는 그녀는 그녀일 거다. 글이 험해지면 거기에 'ㄴ'이 붙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는 회계 쪽에서도 제일 중요한 재단의 총 예, 결산을 맡고 있다. 그리고 전 담당자가 맡았던 급여와 그 뒤의 아이들까지도.
참, 인수인계 이야기를 하려다 너무 멀리 와버렸는데... 우리 쪽도 인수인계가 영 시원찮다. 그런데 뭔가 주변 상황은 바삐 돌아가고 뭘 혼자서라도 집중해서 익혀나가기에는 병아리 신입으로썬 역부족이다. 양 엽, 그 앞의 좀 친절해 보이는 팀원에게 질문을 하며 업무를 할 초석을 다진다.
와중에 대표님 호출이 있었고,
"히*샘은 행정업무 잘할 수 있겠어요? 전에 어떤 일들을 했었나?"라는 질문을 받았다.
"아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만삭 때까지 ○○기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했고 이후엔 육아를 하다가 둘째 3살 때부터 온라인물류센터에서 파트로 일했습니다."
"그렇구먼. 그럼 유통의 흐름도 좀 알겠구먼. 잘 적응하길 바라네. 단순히 잘하는 거 말고 조직에 보탬이 되도록 빠르게 적응했으면 하네."
그러고 보니 대표님은 면접 때 "예산 관련해서 어디까지 일해봤나? 연말정산은 할 줄 아나?"라고 물어보셨고 "네 저는 청소년 활동 위주로 프로그램 짜고 진행하면서 제 사업에 주어진 예산을 깔끔하게 쓰는 것은 잘했지만 더 나아가서 전체 예산을 감당하는 일은 솔직히 해보지도 않았고 썩 자신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면접 때 나 말고도 더 젊고 유능해 보이는 분도 있었는데(그분은 결국 다음에 또 응시하여 나랑 같은 직군의 한 단계 위의 직급인 7급으로 입사했다.) 내가 뽑힌 이유가 뭐였을까 아이러니하다. 나중에 면접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직원분이 "히*샘 면접 때 이야기하는 거 들어보니 문화**에서 힘들게 일하셨던대요."라고 말하는 걸로 보아 면접관들에게 나의 근성은 잘 어필했나 싶기도 하다.
이 조직이 나에게 기대하는 수준은 어느 정도 일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생각만큼 별 기대는 없을 거 같단 생각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인정받으며 일하는 위치는 아닐 거 같단 직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