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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르세데스 May 02. 2024

나는 지방출자출연기관 일반 행정직 8급 직원입니다

작은 실수가 도화선이 됐을까(2)


앞서 언급했듯 지출을 할 때 여러 번 통장번호, 입금자명, 입금 금액등을 확인하며 송금을 했는데 더 먼저 확인했어야 할 예산서의 계정과목을 확인하지 못했고 송금 실수를 저질렀다. 그날 난 매우 당혹스러웠지만 괜찮은 척,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고 바로 수습을 해나갔다.





지방출자출연기관에게 8월은 정신없이 바쁜 달이다. 이 달에 '내년도 예산안'을 짜기 때문이다. 재단의 정책기획과에서는 각 시설로부터 취합한 예산서를 정리하고 시로 보내기에 앞서 여러 번, 거짓말 조금 보태 수십 번 검토한다. 파티션도 없는 내 옆자리 그녀는 그 어마무시하게 중대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소위 말해 예, 결산 담당자.
그녀와 제일 친한 회사동료이자 나의 오래전(15년 전) 직장동료이면서 현 직장동료인  B는 그녀에 대해 말하길, "평소엔 친절하고 잘 가르쳐주는 편인데 예민하고 바쁜 시기에만 건들지 않으면 돼. 그 시기엔 어쩔 수 없이 좀 퉁명스러울 수 있으니 이해해 주면 ."
그래도 신뢰가 있는 동료이기에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회사에서 익숙해지기 전 점심을 어쩌다 둘이 먹을 때마다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그녀의 대답에 90프로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건은 8월 23일에 발생했다. 햇병아리 신입모드를 벗아나지 못한 나는 주변에서 열심히 쓰고 있는 사업계획서에 대해 완전히 알지 못하고 옆 사람들만 힐끔거리며 눈치 보고 있었다. 반면 그녀는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 집중하다가도 건너편 '사업계획서 총괄 담당자(S)'와 큰 소리로 업무 내용을 공유했다. 누가 봐도 '다음 연도 예산안'구성을 위한 초 핵심 멤버인 그녀와 S다.


난 공유된 공문서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정신없는 사무실 공기를 그대로 흡수하며 자리를 지켰다. 어딜 가나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소처럼 일하는 나이기에.
사건이 날줄 알았으면 미리 달달커피로 처방이나 하고 올걸 그랬다.
"지금 내가 보낸 파일 2개 열어보고 사업계획서에 복붙 하세요."
날 바라보며 하는 얘기가 아닌지라 정확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분명 나한테 하는 얘긴데 싶으면서도 앞 뒤 다 자른 말에서 내가 유추하거나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은 없었다. 아, 딱 하나. 내가 담당하는 "업무추진비(회의, 접견, 보고회, 간담회, 좌담회 등 각종 행사에 소요되는 경비_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참조)"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쓸 때 그녀가 건네준 파일의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것."


일도 잘하고 재단 사무국에서 좀 친절한 D샘에게 구원을 갈구하는 눈빛을 보내며 "샘~ 이거 이 파일 이거랑 이거 보고 여기에 붙이라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겠어요?"
내 물음에 모니터를 보더니 "내 업무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어요." 하며 안타까운 눈초리를 보냈다.
난 그나마 구원의 동아줄이었던 D샘의 도움을 못 받게 되자 조금씩 불안해졌다. 그래서 그나마 오랫동안 다양한 책을 읽으며 쌓아온 '문해력'을 믿어 보기로 하고 한 글자, 한 글자 집중해 읽었다. 하지만 정말 검은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일 뿐.
분명 시간 내에 건네받은 자료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할 터인데 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삼십여분을 애꿎은 모니터만 쏘아보다가 조심스레 옆자리 그녀에게 물었다.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하라고 주신 거예요? 전 이해를 할 수가 없어서 그러는데 바쁘시더라도 조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세요?"
그러자, 그녀는 날카롭고 빠르게 "아니 뭘 더 설명해요. 복붙 하라고요!! ctrol+c, ctrol+v!"


분명 내가 들은 것이 맞는가? 난 어이가 없어 바로 D샘을 쳐다봤고 본인도 모르겠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난 순간 무슨 감정인지도 모를 당혹스러운 감정에 휩싸였고 두 눈에 눈물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속으론 제발, 제발 울면 안 돼,를 외쳤건만 속절없이 투두둑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휴지가 바로 옆에 있어 급하게 눈꼭지를 막았다.
이럴 땐 잠시 바람을 쐬고 오는 게 상책인데, 내 안의 미련곰탱이 녀석은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튀지 말고 자리를 지켜야 돼,라고 말하며 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이럴 땐 좀 느려도 되는데, 내 감정 먼저 추슬러도 되는데 난 매우 의기소침해진 목소리로 다시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거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어요. 좀 더 알 수 있게 설명 좀 해주세요."
"아니 누군 내 담당도 아닌데 알아서 한 거 같아요? 나도 거의 밤새우다시피 전 자료, 전 전자료 다 뒤져가며 정리하고 찾은 거라고요. 시 주무관이 이거 두 장 주면서 업추비 산출내역 근거로 내용 보충하라고 했다고요!"


한층 격양되고 날 선 목소리에, 난 그만, 대충 잠가놓은 눈물꼭지를 더욱 끝까지 풀어놓고 말았다. 그러곤 자리를 떠나 2층 화장실로 올라가 숨었다.
변기커버를 닫고 앉아있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너무 울면 화장도 다 지워지고 눈도 부을 텐데 싶으면서도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시간이 꽤 흐른 거 같아 대충 정리하고 내려갈 요량으로 손을 씻고 화장실에서 막 나오자, 문자메시지가 왔다.
"괜찮아요? 그러려니 생각하고 기분 푸셔요~ 다들 힘들어서 그런지 말투들이 민감한듯해요~"
D샘도 아닌 K샘이다. 그 메시지를 보자 겨우 잠가놓은 눈물꼭지가 또 터졌다. 다시 화장실로 입장.
"어후 어우 어우 이게 뭐야. 나한테 왜 이래. 내가 뭘 잘못했는데....."
누가 들을까 봐 큰 소리도 못 내고 겨우 울먹거리다가 다시 눈물을 훔치고 나왔다. 심호흡을 하고 계단을 막 내려서려는데 D샘이 다가오며 "괜찮아요?"라고 물었다. "우우우웅 괜찮아요오옥오" 겨우 대답. "아, 겨우 진정하고 나왔는데 왜 물어봐요." D샘은 하도 안 오길래 집에 갔나 걱정돼서 나왔다며 내 등을 토닥였다. "샘 그럼 미안한데, 내 차키 좀 찾아서 차 안에 화장품 파우치 좀 갖다 줄래요? 이대론 못 들어갈 거 같아요."



친절한 D샘은 금세 찾아다 주었고 난 다시 화장실로 가서 다 지워진 얼굴에 팩트를 찍어 발랐다. 화장을 다시 고친 들 딱 엄청 운애 얼굴이었다.
걱정해 주는 동료샘 덕분에 2,3차 눈물을 흘려보내고 겨우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나의 감정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도 여전히 아무런 미동도 없이 업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난 눈물을 닦으며 못난 모습을 동료들에게 보였구나 하는 부끄러움에 한껏 쪼그라들었다. 그녀의 말투에 민망하고 당혹스러워진 내 마음보다도 타인이 더 신경 쓰였다. 바쁜 시기에 괜히 나 때문에 분위기 망칠까 봐 기분 나쁜, 그보다 슬픈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다.
난 다시 그 자료들을 쳐다보다가 이내 집중하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마음이 추슬러졌다고 생각되었을 즈음 전화가 왔다. 방금 퇴근한 D샘이었다.
"ㅇㅇ샘! 빨리빨리 좀 나와봐요!"
"응 왜요? 뭐 두고 갔어요?" 하며 1층 로비를 나오는데 D샘이 하늘을 가리켰다.
"와! 어머!"
내가 서있는 쪽 하늘 위엔 쌍무지개가 걸려있었다. 난 언제 울었냐는 듯이 폰으로 예쁜 무지개를 담았다.




엉망이 된 내 마음도 조금씩 평온을 되찾았고, 19시 35분. 마침내 자료를 정리하여 사업계획서 담당자샘에게 보낸 후 퇴근을 할 수 있었... 다라고 하고 싶지만 그날은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다음 날 그녀에게 또 비굴하게 "선생님 설명해 주시면 써 볼게요"라고 요청하게 된다.

그녀는 내 질문을 듣고 아무 대답이 없다가 2분 동안 다른 동료의 말에 대답을 해준 뒤 "어디까지 되셨어요? 이해 안 되시는 부분을 물어보시면 그거 답변을 드릴게요."라고 어제와 다른 목소리로 차근히 설명을 해주었다.





아래글이 내가 정리한 그 내용이다.



□ 업무추진비 산출기초
○ 「2024년 지방출자출연기간 예산편성 운영지침」에 별도 규정이 없을 시, 「2024년 지방공기업 예산 편성기준」 및 「2024년도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을 준용함을 원칙으로 함.
○ 「2024년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 및 기금 운용계획 수립기준」, P58에 따라 행정운영경비의 일정비율을 적용 총액한도 산정(당해 자치단체 최근 3년 행정운영경비 평균액*0.0035) 단, 산정된 한도액은 당해 최근 3년 평균액 대비 17.6%를 초과할 수 없음. 그에 따라 당해 자치단체 전년도 기관운영업무추진비*(1+0.003)
   : 23년 6,000천원*117.6%=7,056천원(월588천원)
○ 「2024년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 및 기금 운용계획 수립기준」, P60에 따라 1) 정책사업예산 연동수요 = 최근 3년간 당해 시․도 당초 시책추진업무추진비 기준액 평균 × 0.3
2) 연동수요 (21년 12,600,000 + 22년 14,400,000)/2*0.3 =4,050,000
3) 정책사업결산 연동액=정책사업결산 증감률 × 정책사업예산 연동수요
=19.32*4,050천원=78,285천원
4) 기준액=기초 기준액+정책사업결산 연동액(증감률x연동수요)x보정계수
=15,600천원+78,286천원*0.1=23,428
23,428,592/6개 기관/12월=325천원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난 다시는 그녀를 90프로라는 큰 수치로 신뢰할 수 없었다.



업무를 하다 보면 숨 막힐 정도로 바쁠 땐 예민해지고 상대를 배려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춰 서로를 대해야 하지 않나 싶다.



(덧,)

이후 2024년 최종 사업계획서에는 내가 정리한 내용이 아닌 그녀가 깔끔하게 정리한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내가 한 것도 아닌 그녀의 작품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업추비 예산은 23년도와 같은 예산으로 최종 편성되었다.



#햇병아리신입의눈물바람

#이것도직장내괴롭힘일까요

#그녀는왜그랬을까

#공공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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