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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Sep 01. 2021

마당을 쓸다.

운명의 삶

잘려진 풀과 잔디와 지푸라기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손잡이만 나무로 된 초록색의 커다란 플라스틱 빗자루를 가지고 마당을 쓸었다.

생각보다 잘 쓸려지지 않는다. 촘촘하지 않은 빗자루에 말 안 듣는 사춘기 아들처럼 가는 풀들이 자꾸 삐져 나간다. 여러 번 빗질을 해야 겨우 한 구석을 쓸어낼 수 있었다. 손에 힘을 단단히 쥐고 여러 번 빗질을 하니 차츰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며칠 전 마당은 풀이 나무처럼 자라는 그야말로 숲이 되고 있었다. 어느 구석은 정글 같았다. 잔디는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얄미운 풀들만 무성했다. 들어가면 뱀과 고라니 온갖 동식물이 다 튀어나올 것 같아 들어가지도 못 했다. 봄이 주변에는 커다란 풀들이 자라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봄이 얼굴도 겨우 보이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싶어 큰 아들을 불렀다.

"아들, 우리 앞마당 풀을 깎아야 할 것 같아."

"그렇지 않아도 생각하고 있었어."

"할아버지 집에서 제초기 가져올게."

"네"


 남편이 사고 나기 며칠 전. 정오가 얼마 지났을 무렵 현장 일을 하다 말고 갑자기 집에 왔다. 마당에 풀을 깎아야겠다고 한다. 늦은 출근을 하는 나는 준비하는 남편의 모습만 보고 서둘러 나왔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남편이 아니라 큰아들이 제초기를 어깨에 짊어지고 풀을 열심히 깎고 있었다.

"아들, 아빠는?"

"많이 깎았는데 바쁘다고 하면서 하는 방법 알려주고 가서 내가 하고 있어요."

"그냥 다하고 나가지 뭐가 바쁘다고" 잠깐 얄미운 생각이 들었지만 하지만 내심 싫지만은 않았다. 아들도 배우면 언젠가는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침에 눈 뜨자마자 아들은 제초기를 어깨에 메고 풀을 깎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과연 본래의 집으로 원상복귀가 될까 싶었는데 차츰 마당의 원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화과나무도, 담처럼 심어놓은 작은 소나무도, 수돗가도 모습을 드러냈다. 몇 번 하지 않았는데 잘하는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봄이의 집 주변을 깎기 위해 데리고 산책을 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목줄이 늘어났는지 순간 목줄을 벗어버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풀을 깎는 것보다 봄이는 묶는 것이 우선이어서 정신없이 찾아서 우여곡절 끝에 잡았다. 목줄을 다시 묶는 게 싫어서인지, 아들을 무시하는지 모르겠지만 으르렁대고, 물으려고도 하고 아들은 풀보다 봄이 때문에 더 짜증이 나 보였다. 덩치 큰 녀석이 성질 내니 순간 겁이 났다. 하지만 봄이를 묶어 줄 남편은 더 이상 없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노릇에 아들은 물려도 괜찮다며 봄이를 강하게 제압했다. 봄이는 아들의 힘을 알았는지 몇 번 으르렁대다 순순해졌다.


이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리긴 했지만 넓은 마당이 제 모습을 찾았다. 아들의 군대 입대할 때의 푸르스름한 깍까 머리를 닮았다. 시원하다. 넓은 이마 드러나보여 훤칠했다. 키가 더 커보이고 내 눈에는 잘생겨 보였다. 마당은 아들의 수고로 훤칠해졌다. 보기 좋아졌다. 제 모습을 찾았다.


풀을 깎고 난 잔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그것들을 말끔히 쓸어버렸다. 훤칠한 앞마당이 깔끔해졌다. 과거의 일들이 아무렇게나 자라난 풀처럼 뒤죽박죽 했는데, 남편이 떠난 빈자리가 많이 혼란스러웠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했는데 내 마음도 왠지 모르게 정리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풀은 또다시 자란다. 그때는 또다시 풀을 깎으면 된다. 깔끔하게 정리된 마음도 다시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그러면 또 정리하면 된다. 과거의 잡초는 새로운 미래를 위해 빗자루에 흘려보내고 의연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제는 용기보다 두려움이 훨씬 많다. 불안이 때때로 엄습해온다. 과거를 흘려보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다. 봄이가 내 몸을 문다고 해도 봄이를 묶지 않으면  안 되며, 풀 깎는 일이 힘들어서 마당이 정글이 되도록 뇌둘수는 없기 때문에, 나의 운명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지만 멈출 수는 없다. 힘을 단단히 쥐고 끊임없이 쓸고 또 쓸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 운명은 잔디 깍는 법을 미리 알려준 것 처럼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오늘의 과정을 통해 나도, 아들도 한층 더 어른스러워졌다고 생각한다. 아픔을 통해 성숙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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