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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Aug 24. 2021

문장의 항해

마음닿는대로 글쓰기 여행


노트북 키보드에 있는 자음과 모음을 섞어 빠른 손놀림으로 하얀 화면을 채운다. 독수리타법을 벗어난 지 얼마 안 되 여전히 Backspace를 마구 눌러대고 있지만 그래도 기특하다. 내용은 엉망진창이어서 한 줄을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오늘 안에 결론이 날지는 미지수이다. 미완성이 아름답기를 바라지만 내 글쓰기 실력으로는 결론이 있어도 미완성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고 최선을 다해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저녁을 먹고 이제껏 드라마를 보았다. 시간이 금방 가고 나의 기분을 알아서 업 해준다. 가능하면 단순하면서도 재미있는 것으로,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미리 드라마 정보를 찾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다보면 시간을 빨리 가나 한 순간 시들해진다. 역시 마음의 헛헛함을 채우기엔 한계가 있나보다.


‘무얼 할까?’ 가만히 둘러보다 잠시 나에게 말을 걸어봤다. 글을 쓰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오랜만에 글을 쓰기로 했다. 주제는 정하지 않고 일단 마음 가는대로, 발길 닿는 대로 생각의 항해를 시작했다. 항해의 닻은 멋지지는 않지만 나름 전진한다. 현재의 감정의 신발 끈을 조이고 과거에서 무의식이라는 마음을 건져내며 미래를 향하여 한 글자 한 글자 앞으로 나아간다. 1초 후의 일도 모르는 세계를 사는 일은 글자를 미지의 푸른 백지에 박혀 넣는 것만큼 설렌다. 미지의 세계에 한발과 내 생각이 만들어 내는 한 글자가 잘 버무려 창조물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나에게도 가능성이 있을까? 모르는 것투성인 지구별에 살면서 절망과 한계의 문턱 앞에서 주저하는 나에게도 희망은 남아 있을까? 당차다가도 힘이 빠지기도 하며, 한없이 슬퍼해지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즐거워하면서 어쩌지 못하는 삶의 언저리에 나는 그냥 서 있는 기분이다. 이런 마음을 글로 적어보는 건 흐트러져 있는 감정의 조각들을 모아 한 편의 생을 만들어 다시 시작하는 희망의 언어가 될 것이다. 혼란스럽고 뭔가 잡히지 않는 이때 가능하면 최선의 것이 아닌 신데렐라의 잃어버린 구두를 영원히 찾지 못할지 언정 그냥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기로 결심해본다. 누가 주어지는 것이 아닌 내가 찾아가는 긴 삶의 여정을 글과 함께 다시 시작해본다.


결론이 있는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재주가 없는 나에게는 항해를 하다 무인도에 도달한 느낌이다. 남이 봐주는 글쓰기가 나에게 ‘파이팅’하는 글이 되 버려 미리 결론을 안 드라마처럼 싱거워졌다. 매력이 없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결론은 나에게 힘이 되는 성실한 임무는 했으니 읽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서 읽을 것이므로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람을 판단할 때는 자신의 모습 안에서 판단하기 때문에 훌륭한 독자는 이미 훌륭한 생각을 갖고 있기에 읽으면서 감동을 받을 수도 있을 거라는 우스운 상상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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