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라이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형희 Jun 29. 2024

유월 이십구일 토요일

내가 테니스를 안배웠어도 뭐라도 배웠을거라는건 확실하지만 운동을 시작하길 잘했다고 생각이 든 날이다. 역시 운동은 사람을 참 단순하게 만든다. 별 생각없이 운동하고 나면 좋고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볼 수 있고. 재밌네ㅎ


H와의 교우는 여전히 재밌다. H는 사람이 좋아서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같아서 옆에서 지켜보면 즐겁고 재밌는 일도 더러 생긴다. 어떻게 그렇게 금방 사랑에 빠질 수가 있을까. 어떻게 그렇게 금방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은건지. 어떻게 그렇게 장점만 볼 수 있는건지 신기하다. 나와는 반대되는 사람이라서 신기하고 즐겁다.


H는 테니스를 잘 치는 남자만 보면 곧잘 사랑에 빠지곤 한다. 근육이 있다거나 혹은 신체능력이 좋다거나 혹은 목소리가 좋다거나 혹은 외모가 좋다거나 등등 빠지는 이유도 참 다양하다ㅎㅎㅎ 어떻게 그토록 푹 빠지게 좋아할 수가 있는건지. 나한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긴 한데ㅎ 그래서 그런가. H랑 같이 다녀서 그런가 나도 점점 금사빠가 되는 것 같다 ㅋㅋ 그나마 H는 그 사랑이 오래도록 간다는 것이겠고 나는 한순간에 파사삭 식어버린다는게 다른점이긴 한 것 같다. 내 관심은 그저 그렇게 금방 날아가버리곤 한다.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질 수 없게 된 것은 어쩔 수 없겠지. 아는게 많아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어려서는 사람 볼 줄을 몰라서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들에 다양하고 각양각색의 그럴싸한 이유들을 붙여주었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식으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거라고. 나 좋을대로 생각하기 쉬웠다. 그땐 참 어리고 어리석었지. 그럴 사람 안그럴 사람 따로 있나. 사람인데ㅎ 나이가 들어서 사람을 볼 때면 속이 잘 보이곤 하다보니 식기도 매우 쉽다. 그 사람이 나를 대하는 마음의 태도가 잘 보이니까. 그 사람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하면 곧잘 속이 보이게 되었으니까. 말하자면, 어려서는 상대방을 사랑할 이유를 각종 상상으로 나 스스로 만들어냈다고 하면, 이제는 나 스스로 만들어낼 연료가 없다고나 할까.


어쩌면 지금에서야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관계라는건 혼자 하는게 아니니까. 서로가 서로를 업고 가는 길이라서 나 혼자 연료를 만들어내서 사랑하는 일은 결국 나 역시도 상대방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고 상대방도 나를 제대로 보는 게 아닐 것이다. 서로가 첫사랑이었던 시절에는 말해 뭣하겠나. 서로가 스스로를 지독히도 사랑했던 일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소꿉놀이같던 장난.


남자보는 눈 역시 많이 달라졌는데 불과 1년 전과도 다르다. 나로서도 굉장히 신기한 체험을 하는 중이다. 어렸던 내가 끌렸던 이성의 모습이란ㅎ


H는 P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맘고생을 더러 하고 있다. 사실 나는 H가 P에게 끌리는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내 눈에는 P가 정신연령이 어린데 나이만 먹고 늙어버린 사람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아무리 P가 테니스를 잘 친다고 해도. 테니스를 잘친다고 해서 P가 테니스 말고 가진게 뭐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내가 못된걸까ㅎㅎ.. 나는 P에게 어떤 매력도 못느낀다. P는 마인드가 늙어버렸다. 거칠고 변덕이 심하고 자격지심도 있어보이고 고집도 쎄고 이기적인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P랑 테니스를 안 칠 이유는 없다. 그냥 지인이니까. 친구니까. P도 나름 사람을 대할 때 노력하기는 한다. 본인의 원래 모습이 아닌 친절한 모습으로. 나는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깝긴 하지만 P가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어떤 감정도 없다. P에게 끌리는 H를 보면 간혹 내 예전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ㅎ 내가 부족하다 느끼는 부분에서 무언가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사람? 이 경우에는 이를테면, 테니스 실력?ㅎ 그래서 H는 P와 친해지고 싶어하고 기대하다가 상처받고 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P의 성격을 알게 된 뒤로는 P와 테니스도 치고 싶은 생각이 없는 편이다. 테니스하면서 느끼는거지만 참.. 별 사람이 다 있다 싶은데. 테니스가 무슨 인도 계급도 아니고ㅋㅋ 좀 잘치고 못치고로 으스대는 꼴도 꼴보기 싫고. 무슨 불가촉천민도 아니고 테린이 얕보는 것도 우습다. 인생에서 테니스말고 없나 싶고. 얘기가 딴 길로 샜다. 아무튼 P와 H를 보면서 옛날 생각이 더러 난다. 나는 P를 보면서 내가 예전에 얼마나 마음에 여유가 없었는지를 보고 있다. 거울치료라고나 할까ㅋ


어쩌면 내가 P를 2-3년 전에 만났더라면 나는 P에게 끌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늘 그런 부분에 끌렸다. 못되처먹고 가끔은 욱하고 가끔은 제멋대로지만 그런 사람이 나한테 잘하는 모습에서. 내가 그런데에 끌렸던 것은 그런 성격을 가진 내아버지에게 받지 못했던 애정의 보상심리일 수도 있고 나만이 특별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둘만의 어떤 로맨틱함이라든지. 서로만이 특별하다는 감정에 취하는 그런것들. 나를 위해 모든걸 맞추겠다 다짐했던 모습. 내가 싫어하는건 하지 않는 모습. 달라지려는 모습. 내가 원하는대로 해보려는 애씀. 나 역시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이런 시도들은 결국 끝이 오기 마련이다. 내 원래 모습이 아닌 노력이고 연기니까. 에너지도 결국엔 끝이 보이기 마련이다. 내가 사랑을 하면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잘 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나 금방 지쳐버려서 곧잘 이별을 떠올리곤 했던 것은 다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특히나 나는 P와 교류를 하면서 내가 이제 그런 과정을 졸업했다는 것을 체감했다. 나는 P를 보면서 내 아버지같다는 생각은 했으나 매력은 못느낀다. 솔직히 쓰자면, 애새끼라는 생각 뿐이다..ㅋㅋ 너무 거칠게 표현했나.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찰떡인 표현이다. P는 그냥 어린애다. 나이만 먹은. 뭐 알아서 살겠지. 내 알 바가 아니다.


나는 최근에는 P같은 유형보다는 Y같은 남자에게 더 관심이 간다. 긍정적이고 너무 까다롭지도 않고 부드럽고 유머감각도 있고 항상 말을 이쁘게 하고 자존심세우지도 않고 유순하다. 약하게 보이기 싫고 지지않으려 악을 써대는 P와는 다르게 어른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겉으로야 Y가 P에게 잘 맞춰주고 있다. 아니, P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잘 맞춰준다..ㅋㅋ 나는 그게. 에휴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 식으로 애를 달래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P는 본인이 성격이 강해서 그런 줄 안다. 본인이 성격이 강해서 주변에서 맞춰준다는 것은 알긴 하는거 같은데 그게 니가 어린애라서 맞춰준다는 생각은 안하는 듯 하다. 피곤해지기 싫어서 맞춰주는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나는 P와 딱히 말을 섞고 싶은 마음이 없다..ㅋㅋ 어디까지 맞춰줘야하는걸까. 이 어린이한테는. 난 얘가 궁금하지도 않고 같이 운동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관심없다. 나는 오히려 Y가 더 어른스럽고 관대하고 중심이 잘 잡혀있고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자존감이 높을수록 자존심을 세우지 않는 것이다. 고집도 덜 부리고. 조금 져준다고 해서 자신의 존재 가치가 깎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주변과 잘 녹아드는 사회성이 있다. 어른이 된다는건 그런거니까.


나는 H와 얘기하길 Y같은 사람이 더 좋다고 했다. 그런 사람과 만나고 싶다고. 그러면 내 마음이 아주 편하고 즐겁고 잘 살 수 있을것 같다고. H도 동의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나에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참 신기한 경험을 하는 중이다. 사람 보는 눈도 이렇게 바뀌나..ㅎ 나도 내가 P에게 어떤 매력도 못느낀다는게 신기하다. 그리고 그런 생각도 든다.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도 그 사람에게 편안한 사람이 되어줘야겠다는 생각.


그러면 참 좋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월 이십육일 수요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