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소개인가
화창한 5월이었다. 어버이날을 맞아 오랜만에 본가에 방문했다. 어버이날 기념 선물들을 드릴 때, 집안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너, 남자 만나니? 얼굴빛이 좋아 졌네." 당황한 나는 잠시 입이 막히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연달아 말씀이 이어졌다. "너에게 소개해 줄 남자가 있는데, 이번엔 꼭 나가면 좋겠구나. 그 쪽 집안은..." 이어지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고, 나는 소개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가 소개 받을 사람이 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이면 좋겠다. 아, 내가 그 사람에게 생각 이상으로 마음을 주고 있구나.'
생각에 푹 잠길 때 쯤 어르신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이야기를 맺으셨다. "책 잡힐 일 없게 해다오. 어떤 의미인지 알지? 너 나이에 이런 기회는 쉽지 않아."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이 사실을 그 사람에게 모두 말하며 정리할 수 있을까? ... 아니 못하겠다. 나는 정리 당하는 비겁한 방법을 알면서도 선택했다.
갈무리 되지 않는 마음을 접고 있을 때 소개 받는 날이 되었다. 보통 소개 받는 자리가 으레 그렇듯이, 어색한 인사를 시작으로 음료를 마시며 자기 소개를 하고 밥을 조금씩 먹으며 뒤셸 웃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집에 갈 시간이 된다. 집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말에 잠실역에 일이 있어 거기까지만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차에 나고 나서는 조용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내릴 때 쯤 되었을 때, 운전자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재밌긴 했는데, 제가 원하는 이미지랑 많이 다르시네요." 하고는 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요? 저도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통했네요,' 라는 말을 삼키고 같이 어색하게 웃었다.
차가 정차했을 때, 내가 말을 건넸다. "오늘 저도 즐거웠습니다. 꼭 원하시는 분 만나시길 바라요.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문을 닫고 90도 인사를 하고 교보문고로 향했다.
정처 없이 책 사이를 거닐며 지난 일들을 회상했다. 그리고 나의 결혼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운이 좋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짧지 않은 사귐 후에 집안 분위기를 고백하면 받아줄 수 있을까? 내 마음과 상관 없이 집에서 원하는 사람과 내가 결혼할 수 있을까? 이와 다르게 결혼하는 방법은 있을까? 세 가지 질문에 나는 모두 어렵고 힘든 길뿐 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것도, 어느 집안 며느리가 되는지 중요한 가족의 바람대로 사는 것도 못할 것 같다. 그러나 가능성이란 0과 1사이의 수라서 사람을 더 미치게 만든다.
교보문고 전체에 곧 문 닫을 시간이라는 방송이 울렸을 때 눈에 보이는 엽서를 집어 계산하고 집으로 향했다. 나는 그냥 내가 마음을 많이 줬던 그 사람이 나보다 더 좋은 사람과 사랑했으면 좋겠다. 오늘 같이 시간 보낸 사람은 원하는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 하루 종일 추웠다 더웠다 비가 왔다 화창했던 5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