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개 묵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가운 열정 Dec 10. 2021

[개묵상]_미용하기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겨울이다.

어쩌면 솜이의 계절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털이 빡빡하고 북슬거리는 개에게는 제격인 기온. 나도 양털 점퍼를 둘러 입으면서 이런 옷을 여름에도 뒤집어쓰고 산다면 참 숨 막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이젠 추워졌으니 털을 짧게 깎기보다는 조금 여유 있게 길러 따스하게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여름에 1cm로 빡빡 밀었던 몸통의 털이 가을을 지나 어느새 수북하게 자랐다. 살도 찌고 털도 쪘다. 매일 털을 빗겨주고 다듬어주지 않으면 꼬불꼬불 털이 뭉쳐 엉켜버리고 그 자리엔 온갖 균이 들러붙어 곰팡이 같은 것들이 생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과 잦은 산책으로 관리해주지 못했다. 이제 미용하러 갈 때가 되었다.




솜이가 어릴 때엔 아무것도 몰랐다.

개 냄새가 많이 나는 펫 샵 출신 솜이, 처음 거기서 솜이를 데려오고 나서 보름쯤 지났을 때, 솜이 발톱을 어찌할 바를 몰라 다시 펫 샵에 데려가 서비스 미용을 부탁했다. 솜이는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꼬리를 휘저으며 기뻐하고 좋아했다. 솜이가 잠시 머물던 곳이라 좋아하는 건가 싶었다. 이후 동물 병원을 가든 애견 미용실을 가든, 개들이 머물던 곳은 어디에서나 솜이 꼬리가 빙빙 날아올랐다. 주사를 맞거나 털을 깎느라 고통스러울 텐데,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하는 게 신기했다. 아무래도 싫은데 좋은 것 같다. 정신줄 놓고 덤비고픈 동료 개들이 있으니 일단은 반가움이 큰 게 아닐까?




그런데 이제 눈치가 제법 생겼다.

무서워한다, 미용실을. 근처에만 가도 벌써 차에서 내리기 싫어하고, 솜이를 간신히 꺼내어 끌어안고 미용실 문을 열면 품에서 발톱을 바짝 세우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하긴 이제 알 때도 되었다. 털부터 빗고 목욕하고 털 말리면서 또 빗고 가위질하고 발바닥을 뒤덮은 털도 제거하고 발톱도 깎고, 귓속 털도 제거하고 온몸을 전체적으로 다 다듬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종종 귓속 피부나 발바닥 몇 군데에 피가 맺혀서 돌아오기도 하고, 내가 평소에 빗질을 충분히 해주지 못해서 선생님이 일일이 빗겨주시다가 살짝 뜯겨나간 털과 이미 죽은 털들이 엉킨 채 꼬리에 매달려 오기도 한다. 많이 쓰라렸겠다. 능숙한 선생님이라 할지라도 빡빡한 스케줄로 시간 내에 기계적으로 미용을 끝내려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주인이 아닌 누군가의 손길, 공장처럼 대기하고 있는 동료들과 시끄러운 기계음 속에서, 주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버티고 견뎌야 할 시간. 너무 싫다는 걸 이젠 잘 안다.




그래도 견뎌야 한다.

나는 주인의 기쁨이 되기로 했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먹는 것 자는 것, 뭐 하나 내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주인이 무엇이든 마련해주고 베풀어주어야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 뿐이다. 나는 뭘 해드리지, 나의 사랑하는 주인에게? 고민을 아무리 해봐도 답이 없다. 그냥 내 존재 자체,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고, 돈 들여 시간 들여 미용실에 보내어 주면 감사히 꽃단장하고 예뻐져서 주인의 기쁨이 되어드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무리 싫어도 못 할 일은 아니다. 아이고, 이뻐라, 이 꽃님이가 도대체 누구야? 하며 현관문을 열고 나를 데리러 오는 주인을 기다리며 준비된 꽃님이가 될 수 있다면, 털이 좀 뜯겨나간들 발바닥이 조금 베인들, 그게 무슨 대수냐? 이렇게 종종 빗어줘야 피부도 건강해지고, 발바닥 털을 밀어줘야 미끄러지지 않는다. 귓속 털을 뽑아내야 귓속에 진드기가 살지 않고, 가위질을 해줘야 털이 눈을 찌르지 않는다. 주인 눈에 예쁘라고 한다기보단 사실 나를 위해서라는 걸 안다. 그래도 그냥 나를 위함이라고 하기보다는 주인을 위해서라고 하는 게 내겐 더 의미가 있다. 주인의 사랑에 반 푼어치도 비할 바 못 되겠지만, 나도 주인을 참 사랑하니까. 건강하고 예쁜 똥강아지로 주인을 기쁘게 해주고 싶으니까.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골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사 61: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매거진의 이전글 [개묵상]_도깨비 바늘 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