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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Dec 07. 2021

[개묵상]_도깨비 바늘 떼기

그에게 담당시키다

새로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왔다.

생태 공원이라 인위적인 손길을 조심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다행히 애견 동반이 가능하다. 솜이는 야생의 냄새에 완전 들떴다. 흐린 날씨에 찬바람이 불어 사람이 뜸했다. 게다가 저쪽 밭두렁을 넘어서는 산책로가 없기 때문에 아예 사람이 없다. 여기선 잠시 돌아다녀도 될 것 같아 붙잡고 있던 목줄을 놓아주었다. 솜이는 알 수 없는 냄새에 이끌려 밭두렁 너머 야생숲으로 들어갔다. 나는 밭 이편에 서서 잠시 기다렸다.




드디어 솜이가 숲에서 기어나왔다.

생각보다 혼자만의 숲체험이 매우 짧았다. 숲이라고 해봐야 나무가 가지런히 서있고 그 아래 낙엽과 들풀이 우거진 수풀이 전부. 여기 서서 보면 솜이 돌아다니는 게 죄다 보인다. 야생 짐승의 배설물 냄새를 맡아보고 가끔은 혀로 핥아보기까지 해서 그게 좀 찜찜한데, 그런 것만 아니면 좀 스트레스도 풀고 자연을 만끽해보라고 내버려두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돌아오다니, 무슨 바람이 불었나, 하고 돌아온 솜이를 내려다보니, 세상에, 온몸이 가시로 새카맣게 뒤덮였다!




이게 뭐람?

같이 산책갔던 부모님은 '도둑놈 가시'라고 불렀다. 아무래도 본명이 따로 있을 것 같은데,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실제로 그렇게들 부른단다. 다른 이름은 '도깨비 바늘'이라고. 솜이 털이 하얘서 망정이지, 검은 털이었으면 심히 골치 아팠을 것 같다. 수풀을 돌아다니다 스쳤을 무수한 가시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발바닥엔 조금씩 찔리기도 하면서 깨달았나 보다. 무슨 문제가 생겼구나, 하고. 사고 치고 나서 이렇게 쪼르르 와서 해결해달란다. 




그로부터 한 시간 가량을 붙잡고 뜯었다.

솜이를 안아다가 옮겨놓을 수도 없었다. 안다가는 자칫 가시가 더 박힐 수도 있고, 어딜 붙잡든 아파서 어쩔 줄을 모른다. 밭두렁에 그대로 주저앉아 작업을 시작했다. 식구들이 차례로 들락대면서 안부를 묻고 교대로 뜯어주기도 했다. 그래도 꽤나 길고 어려운 상황이었다. 털이 같이 잡아뜯겨서 아팠을 텐데, 그리고 발바닥에서 뽑을 때엔 가시가 따끔거려서 힘들었을 텐데, 솜이는 붙잡힌 채 꼼짝하지 않고 얌전히 몸을 맡겼다. 종종 아파서 꿈틀거리기도 하고, 잡아뜯긴 쪽으로 혀를 날름대기도 했지만, 겨드랑이며 귓등까지 털 깊숙히 숨은 가시들을 일일이 찾아내어 다시 바람에 날려 들러붙지 않도록 내 뒤쪽으로 버렸다. 그 많은 걸 제거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솜이는 그저 처분만 기다리며 잘 참아내었다. 그러게 요녀석아, 아무렇게나 그렇게 돌아다닐 거야?




이렇게 쉽게 붙어버릴 줄은 몰랐다.

처음에 잠시 따끔할 때엔, 이러다 말 줄 알았다. 그런데 갈수록 더 심해졌다. 뭔가 있는 것 같아서 몸을 문질렀더니 꿈틀댈수록 더 따가웠다. 문제가 생긴 걸 알고 숲에서 나가려고 했는데, 어디선가 발목이 잡혔다.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냥 잠시 꼼짝하지 않고 서있어 보았다. 이미 그땐 가만히 있어도 아픈 지경이 되었다. 어차피 아플 바엔 냅다 뛰었다. 간신히 주인에게로 돌아오니, 잔소리 폭격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상관 없다. 이 녀석, 요 녀석, 어쩌구저쩌구 해도, 주인은 성실하고 세밀하게 나를 관찰하고 가시를 하나하나 제거해주었다. 호기심에 들어간 곳이 그렇게 무서울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저기 주인이 서서 날 기다리고 있어서 힘을 내어 뛰쳐나왔다. 내가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아니까. 우리 주인만이 날 붙잡고, 너무나 쉽게 들러붙어 날 파고드는 이 섬찟한 것들을 하나씩 없애줄 수 있으니까. 내가 잘못해서 잠시 아프더라도 빨리 뛰어가면 더 빨리 나을 테니까.






시 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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