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수련회는 난생처음이었다.
사실 조금은 들떴다. 그 기분이 묘했다. 내가 수련회 같은 것에 참석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심지어 살짝 기대감까지 가지고 있다니. 대학 다닐 때에도 MT니 세미나 뒤풀이니 따위는 도통 귀찮아서 따라간 적이 거의 없는 내가, 교사가 되고 나서도 학생 수련회니 수학여행이니 하는 것도 너무 싫어 이직을 고민했던 내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불편함을 감수할 것이 빤한 교회 수련회라니. 와놓고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왜 지금 여기 이러고 있는 거지? 그래도 내내 궁금했다. 도대체 이게 무엇이기에 정민이가 변했을까? 그리고 그 질문은 그대로 나에게로 이어졌다. '나도 변할 수 있을까?'
정민이는 남편의 성향과는 매우 다른 사람이었다.
아직 대학 졸업을 미처 하지 못한 또래들에 비해 남편은 매우 일찍 결혼한 편이었다. 내 직장을 따라 신혼집을 얻고 보니 정민이네 집 근처였다. 친구가 가까이 와서인지, 또래 중에 일찍 결혼한 친구가 신기해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는 무척 신이 난 모양이었다.
"진무야, 이 돼지야, 형님 오셨다. 술상 받아라."
남편을 그 따위로 부르는 것이 듣기 싫어서 나는 '양아치 사절'이라고 쏘아댔지만, 정민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때나 우리 집에 들이닥쳐 2차나 3차나 해장술 같은 것을 요구하곤 했다. 신혼집이건만 친구네 자취방 드나들듯 와서 걸걸하게 취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베란다 흡연을 시도하다 나에게 타박을 받고 쫓겨나곤 했다.
그랬던 그가 한동안 뜸했다.
졸업을 앞둔 시기라 취업 준비로 바쁠 것 같아 그러려니 했다. 매번 흙수저 타령에 고주망태가 되어 이번 생은 망했다고 부르짖었으나 시즌이 다가오니 급하긴 했겠거니, 하면서 남편의 취업에 대해서도 슬슬 걱정이 되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으면 좋겠는데 남편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회계사를 준비한다고 하는데, 별로 공부에 집중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결혼까지 했으니 나도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고 돌아와 또 아무도 손대지 않은 집안일을 감당해야 했고, 남편은 학업과 취업을 핑계로 늦게 귀가하여 씻고 잠들기 바빴다. 퇴근하면 욕실 근처에 널브러진 그의 양말을 치우면서 슬슬 이혼 지수가 가파르게 솟구치는 걸 심장박동으로 확인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정민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제육볶음 양념을 기가 막히게 하거든. 기다리고 있어. 밥만 안쳐 놓든가."
한국 남성의 소울 푸드, 제육볶음을 기다리며 남편은 소주를 사다 냉장고에 넣고 배고픔을 참았다.
"남의 집에 와서 웬 요리를 본인이 하겠다는 거지? 아니, 그것도 천하의 김정민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창 요리하는 남자들이 TV를 점령하던 때라 제멋에 취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다 가겠거니 했다.
"사랑하는 내 형제여, 오늘 내가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싶다네."
어디 사극에서도 나올 것 같지 않은 어색한 문어체 대사를 읊조리며 나타난 정민이는 어딘지 모르게 달라 보였다. 흙수저를 되뇌기에 찰떡같은 흙빛 입술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비판과 증오가 난무하던 눈가에는 봄바람이 불었다. 2년 전, 내가 재희를 소개해주고 사랑에 흠뻑 빠지기 시작하던 때의 모습과 닮았다. 연애는 조금만 지나도 시들하고 취업 구멍은 나날이 송곳 꽂을 자리도 없어져가는데,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밝아질 수 있을까? 그래도 닭살 돋는 멘트는 적응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조롱, 반어적 화법인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눈을 흘겨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능숙하게 비닐봉지에서 돼지 앞다리인지 뭔지를 꺼내어 밑간을 시작했다. 양념통이라도 꺼내 줘야 하나 싶어 다가가니 손사래를 친다. 딱 앉아만 계시라고, 뭐든 알아서 척척 찾아서 할 테니, 오늘은 누님도 대접받으시라고. 아니, 그러니까 그 대접을 왜 우리 집에서 이러시냐고요, 식당에서 한 끼 사주시든지. 어수선하게스리.
"아빠랑 사이가 워낙 안 좋았잖아. 말 한마디도 잘 안 하거든."
아들들 머리가 크기 시작하면 아빠든 엄마든 대화를 잘 안 하지 않나? 우리 아버님은 하나뿐인 아들 장가보내 놓고 나서 종종 아들이 쓰던 방에 들어가 앉아계시기도 하고, 아들과 함께 먹던 생각에 울컥해서 혼자서는 치킨도 안 시켜 드신다고, 일찌감치 결혼해서 아드님 빼앗아온 며느리가 미안해질 정도로 아들을 그리워하시지만, 보통 아버지들은 아들과 대면대면하기 마련이다.
"말도 안 하고 같이 산다는 거 참 숨 막혀. 나도 빨리 결혼하고 싶더라."
"재희랑 결혼 안 해? 너도 얼른 해버려."
"취업부터 해야지. 진무처럼 졸업, 취업 전에 결혼하기 쉽지 않다."
그래. 어른들이 말리는 데에는 이유가 다 있다. 결혼하고 나니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황급히 닥쳐온다. 결혼이 급한 게 아니었다. 빠뜨린 순서를 되짚어가는 데에는 더 많은 에너지가 든다. 감정적인 에너지를 포함해서.
"아빠한테 이걸 해드렸더니 좋아하시더라."
이건 좀 색다른 이야기. 아버지에게 제육볶음을 해드리는 아들? 별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엄마가 제주도에 2박 3일 다녀오셨는데, 집에 먹을 게 별로 없더라고. 그래서 내가 했지."
"와, 아들 키운 보람이 있으셨겠다. 잘했네, 잘했어."
"사랑이라는 게 뭐 별 건가? 따뜻한 밥 한 끼면 통하는 마음 아닌가 싶더라고. 예전 같으면 아빠랑 단 둘이 2박 3일 보낸다고 생각하면 집에 들어가기도 싫었을 텐데, 사흘 연속 저녁밥은 계속 내가 차려드렸잖아."
어느새 매운 기름 냄새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남편이 소주병을 꺼내자 정민이는 사양했다. 술을 끊었단다. 진짜 왜 이러지? 남편은 섭섭해하며 혼자 잔을 채웠다.
"자, 이제 말해봐. 오늘 저녁밥의 주제는 뭐야?"
궁금증을 참고 간신히 식사를 끝낸 후 드디어 내가 물었다.
"그런 거 없어."
"안 하던 짓 하는데 이유가 없어? 하다 못해 뭔가 심경의 변화 같은 거라도 있을 거 아냐."
"음, 내가 내 존재에 대해 새롭게 깨달은 게 있어서 그래."
갈수록 수수께끼 같은 대답. 응, 그래, 네 지금의 존재 양식이 내게도 무척 새롭단다. 대체, 네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하지만 그 뒤로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어제는 엄마가 백화점에서 쇼핑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따라다니며 짐꾼 노릇을 했다는 둥, 엄마가 주식 때문에 뭘 자꾸 물어보거나 귀찮게 할 때에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다 대답해주느라 집에 있어도 바쁘다는 둥, 달라진 가족 관계의 근황을 잠깐 밝혔을 뿐이다. 그는 그렇게 어머니께 곰살맞은 편은 아니었다. 어머니께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랬다. 속정은 깊을지언정 표현은 거칠고 무뚝뚝했다. 아무래도 어디가 많이 아파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게 분명하다고 나는 합리적 의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 사이에 그는 남편의 어깨를 감싸 안고 뭐라 뭐라 속삭이며 남편의 서재로 들어가 버렸다. 딱히 내 친구도 아닌데 둘이서 속닥거린다고 소외감 느끼기에도 애매하고, 취업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시작하는데 끼어들기에도 조심스러웠다.
드디어 방에서 나오더니 그대로 현관으로 직행.
"진무야, 속 끓이지 말고 소신껏 준비해. 기도할게."
"그래."
"다음엔 닭도리탕, 콜?"
"오, 좋지. 좀만 덜 맵게."
"아, 오늘 매웠지. 알았어."
아, 이건 평소의 '간다.', '가라.' 따위와는 사뭇 다른 인사. 끝까지 연극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저 인간, 왜 저럴까? 내 의심의 눈길을 의식했는지 흘끗 나를 한번 보더니 나에겐 인사 대신 이 말을 남겼다.
"근데 누나, 누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어?"
이 질문이 내겐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초대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