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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Sep 30. 2022

탈출 03

갈등

기대와는 달리 수련회는 딱히 재미가 없었다.

애초에 뭘 기대했는지조차 잊었다. 부흥회니 수련회니 이런 거 좇아 다니면서 그때마다 일시적인 분위기에 취해 잠시 충만해진 기분이 들었다가 금세 사그라드는 것에 회의적인 편이었기에 굳이 실망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불편은 처음부터 예상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숙박을 한다는 점, 모르는 사람들과 친근하게 눈이라도 마주치고 수시로 인사해야 한다는 점, 수련회에 이름을 등록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원하든 원치 않든 주최 측이 시키는 대로 일정을 따라다녀야 한다는 점, 아무리 손님으로 배려하고 대접해준다고 해도 그야말로 그들만의 룰에 일방적으로 순복해야 한다는 점 등등 다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조별 모임이었다.

이번 수련회 때 처음 온 사람들만 모아서 진행하는 간단한 소그룹 강의가 있었다. 복음에 관해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마지막에는 믿음을 결단하게 하는 일종의 신앙 입문 과정인 듯했다. 부목사님들이나 전도사님들이 이 많은 조별 모임을 다 감당하기 벅차지 않을까, 어림 잡아도 30여 개가 넘는 조를 어떻게 다 가르치려나, 남의 행사였으나 언뜻 궁금했던 것도 같다. 그런 오지랖은 아무 쓸데가 없었다. 그 교회에는 애당초 부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이 없었으므로. 우리 교실에 들어온 강사는 뜻밖에 아직 대학을 다니거나 갓 졸업했음직한 젊은 여자였다. 하얀 블라우스에 검정 바지, 명찰을 목에 걸고 활기차게 인사하며 문을 여는 모습에서 살짝 긴장감이 묻어났다. 저렇게 젊은, 아니 어린 학생이? 순간 속으로 '애게게~' 했다. 저런 애들이 가르친다는 건가, 세상 물정도 모르는 새파란 얼라들이?


이제 와서 얘기지만 사실 나는 특별한 존재로 태어났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좀 유치하긴 하다. 그래도 나라는 존재에 대한 자부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엄마가 난임이었다. 결혼하고 2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빠에게 후처를 들이라고까지 종용했다. 해준 것도 없는 둘째 아들에게서 기어이 손자를 보겠다는 턱도 없는 열망으로 할머니는 며느리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요즘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그때 시골 할머니들은 으레 그랬다. 엄마는 새벽마다 교회 강대상에서 엎드려 울면서 기도했단다. 절에서 백일 동안 공양하고 치성을 드리더니 마침내 아이를 잉태했다는 옛날이야기는 들어보았으나 그게 교회에서도 통하는 이야기였나? 엄마는 백일 간의 새벽 기도 끝에 강대상에서 설핏 잠이 들었다가 태몽을 꾸게 되었다고. 오직 기도로 생긴 아이, 신의 은총으로 태어난 아이가 바로 나이다. 그 사실은 모든 외적 난관을 극복하는 요술봉이 되었다. 자라면서 곱슬머리가 나고 윗니가 돌출되어 차츰 자유분방한 얼굴이 되었다든가, 대학 입학시험에서 낙방하여 재수를 하게 되었다든가, 심지어 집이 쫄딱 망해서 이사를 다니며 가난에 쪼들려도 신의 아이로서 자긍심만은 잃지 않았다. 그런 나란 말이다.


말하자면 그 자긍심이 내겐 복음이었다.

모태 신앙이라고들 하는 그것.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어떻게 생겨 먹었든, 나는 신의 아이라서 괜찮다. 잘 될 것이다. 잘 되어야만 한다. 복덩어리이다. 나와 함께 계신다. 뭐 이런 것. 그걸 객관적인 언어로 풀어주겠다는 소그룹 강의가 과연 얼마나 나에게 와닿을 수 있을지도 모호한데 하물며 저렇게 경험치도 부족해 보이는 사람의 이야기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 것인가? 벌써부터 김이 샜다. 하지만 복음은 생각보다 체계적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처음, 중간, 끝이 분명한 구조였고 앞뒤로 논리 정연하여 이해가 쏙쏙 잘 되었다. 문제는 '죄'였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으나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다.

특히 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선택받은 자로서의 특별함에 꽉 차서 평범한 인간의 흔한 죄에 대해 간과했다. 아무래도 그런 얘기는 불편하다. 억울하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방어 태세를 갖추게 된다. 어찌 되었든 해결책이 있다는 것에 집중하고 싶어 진다. 타고난 출신 성분이 이미 '신의 아이'였기에 이미 해결된 죄에 대해 더 이상 따지고 싶지 않았던 것. 그건 또 선택받은 자로서의 특권이기도 했다. 2천 년 전 예수라는 중동 지방의 한 청년이 전 인류의 죄를 몽땅 짊어지고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그리고 부활하여 인간을 해방시켰다. 온갖 죄의 책임으로부터, 죄의 중독으로부터, 또 죄로 인한 수치와 자괴감으로부터, 죄로 인한 죽음에의 불안으로부터. 어찌 되었든 전인류의 죄에 내 죄는 묻어갈 수 있었고, 인간에게 주어진 구원에도 덩달아 무임승차할 수 있었다. 내 죄는 모태로부터 이미 사해졌던 것이다.


그걸 이제 와서 다시 들추자고?

그 젊은 강사는 칠판에 붙인 큰 종이에 이쪽에서부터 저쪽에 이르기까지 빼곡히 성경 구절을 조목조목 적어가며 복음의 기승전결을 논했다. 그녀도 분명히 말했다. 죄가 해결되었노라고. 그러면 지금도 내 안에 들끓는 죄는 어떡하지? 새로운 고민이 내 발목을 붙들었다. 그냥 누군가 대신 갚아준 셈 치고 모른 척했던 빚이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복리 이자로 불어나는 느낌이었다. 태생부터 신의 핏줄이었던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야만 했다. 죄의식이 함부로 나를 짓누르지 않도록 막무가내로 외면했던 죄가 하얀 종이 위에 고스란히 다 적혀 있었다. 건드리는 게 싫어서 그녀가 강의하는 내내 기분이 나빴다. 게다가 해결된 줄 알았던 게 아직 내 안에서는 현재 진행형이란 말이다. 마치 이 문제에 대해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만 같은 태도로 위풍당당하게 강의하는 그녀를 노려보다가 결국 손을 들고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강사님은 지금 죄를 안 지으세요?"


"네. 저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아, 뭐래니? 말문이 막혔다. 넌 벌써 그게 죄야. 지금 죄 없다 하는 그게 바로 죄라고. 나는 속으로 맹비난을 퍼부으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내가 저랬었나. 앞꿈치로 슬슬 뭉개어 뒤로 슬쩍 차 버리고 구두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버리던 내 발이, 죄짓지 않는 인간임을 주장하는 입술을 똑 닮았다. 죄 앞에서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나 모두 모순덩어리. 그녀에게서 내 한계를 보고 말았다. 환멸에 구역질이 났다. 그마저도 쪽팔려서 화가 났다. 종국엔 벌떡 일어나 그 자리에서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단호한 답에서 바벨탑의 견고한 옹벽이 보이고, 빈틈없이 전개된 복음에서 바벨탑의 아찔한 높이가 느껴졌다. 여기서 앞으로 뭘 배울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음을, 나에게 다시 한번 신의 은총이 임해야 함을 깨달았다.


"어땠어? 들을 만했나?"

재희가 식당으로 이끌며 물었다. 밥도 다 귀찮다. 얼른 집에 가고 싶다. 동네 교회 아무 데나 들어가서 조용히 혼자 앉아있고 싶은 충동, 뭔지 모르게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이 재희가 한 마디 덧붙였다.

"퍼포먼스가 끝내줘. 강의는 별로였어도 엉뚱한 데서 은혜가 있을지 누가 알아? 밥 먹고 이왕 왔으니까 퍼포먼스만 보고 가. 사람들이 준비 많이 한 것 같던데."

그래 봤자, 춤추고 노래하고, 조금 더 세련되게 말하자면 아이돌 댄스 리믹스의 찬양 버전, 간증으로 쓴 랩 가사에 비트를 얹은 힙합 순한 맛, 뭐 그런 것들.


오히려 끌리는 건 관객들의 반응이었다.

어디 방송국에서 아이돌 공연을 보는 소녀팬들도 이보다는 덜 할 것 같았다. 환호와 박수로 무대 위 사정은 도통 잘 모르겠다. 아무나 올라가서 엉덩이로 이름 쓰기만 해도 이렇게 난리가 날 것 같은 열렬한 반응. 무슨 허접 공연에 분위기 띄우고 관객을 홀릴 바람잡이들을 심어놓았나 싶을 정도로 객석이 뜨거워서 본 공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수시로 옆과 뒤를 돌아보며 한편으로는 소외감을 느꼈다. 그들만의 잔치, 그들만의 축제인가? 손님들 앉혀놓고 자기들이 더 좋아하잖아. 괜히 심술이 났다.

"재미있어?"

정민이가 음료를 들고 어디선가 나타났다. 시무룩한 표정을 보고 신경이 쓰였나 보다. 시끄러워 소통도 힘들다. 그래도 힘껏 소리질러 불평을 쏟았다. 음악소리에 내 기분이 파묻히지 않도록.

"먹을 것도 없는 뷔페에 데려다 놓고 맛있냐고 물어보는 거야? 나 집에 갈래."

정민이 성격이라면 이런 말에 마음 불편해져서 절대 붙잡지도 않고 삐쳐서 한동안 연락도 안 할 텐데, 오히려 씩 웃더니 넉넉하게 받아친다.

"누구랑 먹느냐에 따라 다르지. 우리랑 먹자. 맛있게."


우리, 우리란다.

수련회 따라오기 전에도 우리는 우리였다. 우리 동네 사는 우리 남편 친구, 우리 친구의 남자 친구, 우리 넷의 여행과 우리 넷의 우정. 그런데 지금 저 인간의 '우리'에는 내가 포함되어 있지 않나 보다. 무슨 짓을 해도, 어떤 퀄리티로 해도, 무조건 웃어주고 손뼉 쳐주고 환호해주고 사랑해주는, 그래, '사랑해주는', 그들이 '우리'인가 보다. 죄도 짓지 않는다고 우기는 젊은 강사와 수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에 빠지는 자유를 즐기는 목사가 좀 거시기해도, 이렇게 무작정 서로 용납하고 인정하고 기뻐하는 '우리'가 있다면, 나도 이렇게 무작정 '우리'가 될 수 있다면. 찢어질 듯한 드럼 소리가 내 심장에서 울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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