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탈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가운 열정 Oct 14. 2022

탈출 05

구원의 확신 

가끔은 목사님도 잘 모르겠다며, 천국 가서 직접 물어보자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런 솔직한 대답에 나도 용기가 났다. 모르는 건 모르는 채로 넘어가도 괜찮지 않나? 적어도 분명한 건 성경은 내가 이해하기 어려우니 누군가에게서 도움을 받고 먼저 배운 사람들에게서 나 역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작정하고 신학을 전공할 것도 아니고, 이렇게라도 시간을 내어 조금씩 알아갈 기회가 생긴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관심이 없고 잘 모를 때에는 질문도 별로 없었는데, 하나씩 펼쳐서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궁금한 것들이 더 많이 생겼다. 그런 영적인 대화가 오갈 때, 무엇으로 이 행복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쏟아지는 질문들이 때로는 무겁기도 했고 때로는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목사님은 특유의 유머와 개인적인 경험들을 뒤섞어 강약약 중강 약약 리듬을 타도록 이끌었다. 이렇게 열정적인 목사님이 있나? 원래 목사님은 다 이런가? 게다가 이건 어디까지나 무료 강의라는 사실. 매주 토요일마다 무려 다섯 시간씩, 이렇게 세세하고 친절하게 응답하시면서, 심지어 다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나 전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아무 대가도 없이 강의를 해준다는 것이 존경스러웠다. 


크지도 않은 교회, 대학가 호프집과 편의점 사이 골목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허름한 상가 건물. 

1층에는 작은 방 두어 개, 2층은 주방이고, 3층이 드디어 본당이라는데, 어딜 봐도 상가라기보다는 낡은 하숙집 같은 모양새이다. 본당에는 어디 학교나 학원에서 버렸음직한 낡은 책상과 의자들이 대각선 한쪽 구석에 서있는 목사님을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둥글게 줄을 맞추고 배열이 되어 있다. 한번 들어가 앉으면 화장실을 드나들기에도 복잡한 구조이건만 사람들이 빈자리 없이 꽉 차 있고, 책상 위에는 자리마다 빵과 종이컵이 놓여있다. 일명 오티빵이라고 했다. 오티빵은 교인들 사이에서 꽤 관심도가 높았다. 이번 주 오티빵은 뭐가 나왔나, 이런 질문을 곧잘 받곤 했다. 그래 봤자 작은 식빵이나 치즈가 박힌 모찌 같은 것들, 가끔은 촌스러운 크림빵이기도 했지만 종일 앉아 있으면서 허기를 달래기에 충분했고 매번 그 맛이 자극적이지 않아서 먹기 좋았다. 곁들인 일명 오티커피는 그야말로 어디에서 팔 것 같지도 않은 신기한 믹스커피 맛이 났다. 설탕과 프리마가 잔뜩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커피맛이 진해서 한 모금 마시면 정신이 번쩍 났다. 남편은 초코파이만 나눠주면 무작정 따라가서 캐롤을 부르는 시골 소년마냥 즐거이 오티빵을 먹고 귀갓길에 그날 먹은 것과 비슷한 빵을 사기도 했으며, 나는 묘한 믹스커피 맛에 차츰 입맛이 들어 주중에도 종종 커피믹스 봉지를 뜯기에 이르렀다. 


은근한 중독성에 비해, 생각해보면 뭐 하나 변변한 것이 없었다.

건물만큼이나 소박한 책상, 책상만큼이나 소박한 간식, 간식만큼이나 소박한 커피, 커피만큼이나 소박한 사람들. 그랬다.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도 종종 본당을 떠올리면 구리구리한 발 냄새와 젖었다가 말랐다가 하는 땀냄새가 커피 냄새와 뒤섞여 습습하게 코끝에 와닿는다. 오티 시간이 끝날 무렵이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이 본당으로 몰려들어 한 사람씩 무작위로 짝을 이루어 오늘 배운 내용을 복습하기도 하고 강의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들에게선 하나같이 땀냄새가 났다. 무슨 스포츠 동호회인가 싶을 정도로 죄다 운동복 차림이었고 여자들은 대부분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거나 짧은 커트 머리였다. 물론 화장기도 전혀 없었다. 지나치게 수수하다 못해 뭔지 모르게 지저분한 느낌이 들 정도랄까? 꾸밈없는 모습에 꾸밈없는 웃음들, 약간 당황스러울 정도로 정돈되지 못한 채 나타나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묘한 친근감, 오래 묵은 사람들의 편안함이 내겐 조금 어색했지만, 내 집 드나들 듯 아무렇게나 입고 아무 때에나 종일 북적거리는 모습에서 교회에 대한 애정과 강한 주인의식이 느껴졌다. 조용히 어딘가에 흩어져 있다가 어느 순간 스르륵 모여 그림자처럼 사람들 곁에 와서 머무는 묘한 존재감.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단하지 않아 보이는 그 사람들에게서 알 수 없는 은둔자들의 기운 같은 게 보였다. 내공이 서린 칼날이 부드럽게 허공을 긋고 돌아서면 잠시 뒤 나무 한 그루가 조용히 그 자리에서 조각나 쓰러지는 것 같은 영화의 한 장면. 어쩌면 은밀한 공작원들처럼 파워플하지만 겸손해 보이는 그들의 정체가 조금씩 궁금해졌다. 


하지만 아쉬움은 있었다.

그들은 별로 대답하지 않았다. 일종의 금기였을까? 그날 다 해결되지 않은 내 궁금증과 더 알고 싶은 얄퍅한 호기심에 대해 그들은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다음 시간에 목사님께 직접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든지, '아,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네요.' 라며 대답을 슬쩍 피하는 것 같았다. 별로 궁금하지 않거나 이미 해결되어 다룰 필요가 없거나, 그게 뭐든 자신의 구원과 믿음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거나, 그냥 나에게 관심이 없거나. 어쩌면 이미 많이 겪어봐서 논쟁을 피하는 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한 건지도 몰랐다. 물어보는 사람들은 대체로 여전히 인본주의적 관점으로 신을 해석하려다 실패하여 화가 나있기 마련이니까. 질문 속에 이미 분노를 내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문은 곧잘 설득으로 귀결되려는 의지를 품고 있었으므로. 


그렇다면 굳이 그들이 와서 잠시나마 얼굴을 비추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매주 처음 보는 사람들과 무슨 대화를 하라는 걸까? 잘 모르겠지만 그냥 기도하러 오는 건가 보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큰 의도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날 배운 것들을 내 언어로 간략히 정리할 기회를 주는 것, 자유분방한 차림새와 태도를 은근히 공유하며 그들의 문화와 관습을 드러내는 것, 다 같이 그 시간 배운 것들에 감사하며 기도로 마무리하는 것. 그 짧은 10여 분의 대화가 꼭 필요할 것 같지 않아 먼저 자리를 뜨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나는 그래도 일부러 찾아와 주는 그 사람들의 발길이 따뜻해서 그 시간을 기분 좋게 받아들인 편이다. 오티반 사람들보다 오히려 그들이 그 시간을 더 기다리고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 오늘 그 말씀하셨구나.' 하는 감탄인지 깨달음인지를 내뱉거나 '아, 저도 그때 그런 거 여쭤보고 배웠는데.'라며 자신들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모습, '지금 잘 배우세요. 목사님이 직접 가르치시는 시간은 오티반뿐이니까요.'라며 한정판 강의에 대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면 오티반의 현장으로 와서 그 과정을 복기하는 기쁨이 느껴지곤 했다. 나도 지금의 시간을 그리워하게 될까? 적어도 목사님의 열정과 재치가 넘치는 강의에 끝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안타깝다는 마음은 들었다. 


그럴수록 깨알같이 필기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핵심이나 성경구절에 몇 장 몇 절 같은 걸 받아 썼으나 나중에는 짧은 문장으로 간추린 노트가 되었고 점차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제법 장황해졌다. 집에 가서는 꼭 복습했기 때문에 기록이 상세할수록 좋았다. 점차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이 생기고 우스갯소리를 하실 때마저도 현장의 분위기를 기억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모조리 적어내려 갔다. 그 정도 열정으로 고3을 보냈더라면 재수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장장 다섯 시간 동안 서서 열강하시는 덕분에 쉬는 시간이 전혀 없었는데 누구도 잠시 쉬자는 얘기가 없었다. 6개월 간 오티반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쉬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때로는 믹스커피를 잊고 급한 화장실도 참으면서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혹여나 한 두 마디라도 놓치게 될까 봐. 집중해서 듣다 보면 화장실도 견딜만했고, 점차 물이나 커피 같은 것도 화장실을 덜 가기 위해 참을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지나가는 이야기가 오티반 기간 내에 다시 언급되지는 않을 거라는 것과 그러고도 무수한 질문들이 쌓여 있어 우린 갈 길이 바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게다가 목사님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걸 말씀하시더라도 우리와 통찰력이 다르시니 이 귀한 시간에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다고, 그러니 관심 없는 영역이라 해도 패스하지 말고 잘 들어두라고, '왜'인지는 지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알게 될 테니 지혜롭게 잘 배우라고, 기존 멤버들이 유경험자로서 누누이 귀띔해준 꿀팁도 한몫했다.


시간과 정성을 들이면 귀해지는 법이다.

결정적으로 오티반을 통해 나는 거듭났다. 구원의 확신, 내가 궁금했던, 불안했던, 모호했던, 두려웠던, 어려웠던, 불가능했던, 그래서 포기했던 바로 그것. 수없는 질의와 응답을 거쳐, 유대인들의 하부르타 교육 방식으로, 무엇보다도 성경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정립해나가면서 얻은 것. 명확한 약속의 말씀으로 다가온 구원의 확신. 이제 흔들리지 않는 뿌리 하나를 박았다.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뿌리에서 줄기가 나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야 한다. 그건 전적으로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며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었고, 이미 나는 멈출 수 없다는 확신. 구원의 확신은 그렇게 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탈출 0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