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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군 Jul 05. 2024

오해 속에 만들어진 프레임

블라인드

 오해라는 단어가 의도치 않게 우리의 삶에 침투되는 일들이 있다. 그로 인해 벗어나기 위한 해명의 시간은 꽤나 길고 고통스럽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 있어 지난 10년간 일을 하면서 만들어진 프렘임은 소명하고 벗어나도 항상 발목을 잡았고 어쩌면 그것이 끝으로 몰아세우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조직에서 외부인이 되어서 바라본 그것들은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왜가 납득이 되지 않는 억까 들이었다.


 내가 의도치 않게 회사 내에서 한때 관심을 받으면 입방아에 내린 적이 있다. 이러한 상황이 좋은 일들이었다면 지금도 여전히 애사심과 소속감으로 무장하여 오지 않을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대했던 바와는 다른 부분으로 주목받았다. 그것도 당사자인 내가 그 사실을 제일 뒤늦게 알았다는 것은 슬픈 부분이었다.



 블라인드라는 어플이 있다. 직장인들의 익명의 커 미니티의 장으로 유명한 사이버 공간이었다. 가입방식이 해당 회사에 대한 메일로 인증을 받아야 하기에 외부자가 아닌 확실한 내부자이다. 이러한 익명의 공간에 쓰인 글들은 조직 내 쌓여있던 불만과 불합리한 부조리들이 거침없이 까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암암리 많은 직장인들이 가입하여 활용하는 어플이었다.


 이곳에서 나온 내부자들의 저격이 가끔은 순기능적으로 언론에 관심을 받으면서 변화를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회사 내에 고위급 간부들은 이 블라인드라는 어플에 대한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 앱을 알게 된 것은 바로 오해에서 시작되었다. 두 번째 매장의 존폐가 거론되면서 꽤나 분위기가 안 좋았던 시점에 나는 갑작스럽게 점장님과 면담을 하였다.


 개별 면담이 아마도 무게의 추가 폐점으로 굳어져가서 차후 일어날 일들에 대한 언질을 주려는 의도라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나의 고충에 대해서 물어보면서 조심스럽게 나온 말은 블라인드의 앱의 존재였다. 요약하자면 이러하였다. 그 익명의 공간에서 오프라인 매장의 관계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디가 나의 인스타 아이디와 같았다. 자연스럽게 그 글은 내가 쓴 것으로 그들 사이에서 퍼져있었다.



 어이가 없었고 나는 그 어플의 존재를 들어보지도 않았고 설사 알아서 저격글을 쓰더라도 나와 연관된 단서의 꼬리를 남기지 않았을 것이라 자기변호를 하였다. 말로는 그렇지 아닌 것이라 생각했는데 혹여나 해서 확인차 물어보았다고 눈치를 보면서 이야기를 하였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주변 동료들에게 푸념을 하였으나 이미 그들은 이 사실들을 나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뭔가 오해를 받은 것도 섭섭하지만 프레임이 이렇게 빠르게 퍼지는 것이 무섭게 느껴졌다. 나를 의심하는 일부의 논리에는 경쟁사에서 온 출신이라는 것도 한몫을 하였다. 분명 처음 시작점에서는 경험을 통해 회사에 도움이 많이 될 수 있게 힘이 돼 달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어느새 이렇게 변질되어 있다는 것이 현타가 왔다. 아무리 변명하였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벗어던져지지 않았고 심지어 나의 인스타까지 염탐당하였다.


  한참을 오해를 벗어던지지 못하였고 의도치 않은 곳에서 무죄를 증명하게 되었다. 입사 당시 동기 중 한 명이 있었는데 문제가 많은 친구였다. 여기저기 오가며 이간질을 하면서 분탕질을 하였다.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치켜세우려고 하는 경향이 강했다. 심지어 동료들에게 돈을 빌리는 상황까지 가면서 터져버릴 상황이 터져버렸다. 동료들의 신뢰가 무너졌고 본인도 분위기가 돌이켜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고 퇴사를 하였다.



 나가는 과정에서도 참 구질 구질하였다. 출근을 안 하고 잠수를 탔고 퇴사처리를 위해 면담과 작성을 해야 둘 서류가 진행이 되지 못하였다. 그렇게 2주 정도를 끌다가 이러면 퇴직금이 안 나온다는 메시지를 받고서야 퇴직원을 적으며 훅 가버렸다. 바로 이 친구가 나에게 오해의 프레임을 씌운 범인이었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나의 인스타 아이디를 사용했고 화살을 내쪽으로 돌린 것이다.


 퇴사를 하면서 이 전말에 대한 고해성사를 점장님에게 하였다. 하지만 정작 내가 이사실을 안 것은 2년이 지난 뒤였다. 그때 그렇게 이야기 들었고 사실 아닐 거라 믿었다고 하였지만 그간 내가 겪었던 고통에 대한 위로는 없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똥 밞았다 생각하고 잊어라는 식이었다. 이렇게 쉽게 풀어질게 참 돌고 돌아 이리 오래도 걸린 건지 화가 났다. 하지만 오해는 한번 흔적을 남기면 다시 꼭 찾아왔다. 이 시작 이후에도 소히 억까들의 프레임들은 지속적으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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