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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자 K의 수감록

죽음의 순간을 목격하다.

by 김군

글을 쓰다 보면 가끔은 꺼내기가 망설여지는 것들이 있다. 그럼에도 삶을 이야기하고 떠들다 보면 나도 모르게 새어져 문장으로 튀어나온다. 나는 오늘 단어 하나를 무심코 머릿속으로 타이핑하게 되었다. 그리고 뭔가 주저함을 넘어 쓰고자 해 본다.


삶은 연속성이 있는 지평선이라는 망각을 대게는 하는 편인 것 같다. 하지만 명확히 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 착각을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두려움을 느낀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 끝의 두려움이 가장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단연코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객체로서의 시간이 멈춰진 것을 공식적으로 공표하고 기록을 하게 된다.


가끔은 끝이라는 것이 마침표로 보이지만 미묘하게 쉼표와 겹쳐진 오묘한 형태이기에 완전한 종료처럼 느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잠깐의 아쉬움 그리고 다시 우리는 망각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온전한 마침표이다. 지평선의 끝에 도달하여 바라보는 끝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두렵고 이것을 마주하는 것이 무섭게 생각된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단어가 내 울타리에 들어와 인식한 것은 여느 사람들보다 이르게 일어났다. 책갈피 끼어진 한 부분을 펼쳐본다. 그리고 첫 줄은 중학교 2학년 나의 모습이 보였다. 인간은 저항의 동물이며 자유의지에 대한 갈망을 표출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내게도 그 시절은 그러하였다. 의무교육이라는 틀인 학교의 연장선으로 학원이라는 곳이 부각된 순간이 있었다. 나의 학창시절은 그 시기에 겹쳐져있었다.


항상 변화의 초입에는 반발이 대체로 심하게 일어난다. 기존의 틀이 깨지는 것이기도하고 모르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거부감을 일으킨다. 중학교 2학년 보통의 아이였던 나 또한 한 명의 투사가 되어 목 놓아 싫음을 표출해 낸다. 이 학업의 연장선은 불쾌했고 여유와 쉼을 쪼개어서 뺏아가진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서 소심한 투쟁의 행동은 몇 명의 아이들과 함께 자율학습시간을 땡땡이를 치면서 몰래 빠져나와 오락실로 향했다.


학원과 같은 밀폐된 공간임에도 이곳은 다르게 여겨졌다. 가장 큰 차이점으로 일단 유희 수단인 게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모두를 몰입하게 만든다. 극도로 집중력이 커지면서 공간에 머무는 이들에게 시간이 어찌 가는지 모르게 만든다. 여느 때와 같이 적당히 눈치를 보다 허술한 감독 선생을 뒤로하고 살금살금 무리는 울타리를 벗어 나왔다.


환기도 되지 않고 소음이 귀를 잠식시키는 공간에서 우리는 일부가 되어 오락을 즐겼다. 당시 이 자유의지를 갈망한 일탈집단의 관심사는 삼국전기라는 게임 속 히든 캐릭터를 찾는 것이다. 조이스틱을 일정방향으로 흔들고 버튼을 몇 번 누르면 기존에 인물들이 아닌 새로운 인물들을 선택할 수 있다. 정확히 방식을 해야 하기에 나름의 시뮬레이션을 했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우리는 한없이 작지만 만족감을 주었던 히든 캐릭터를 만들어 게임에 임했다.


역시 숨겨진 이유가 있을 만큼 기술적인 부분이나 파워가 남달랐다. 이 쾌감의 몰입감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몰랐고 복귀시간이 되었다. 돌아가 가방을 찾아 학원버스를 타야 완전범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무용담을 곱씹으면서 떠들며 발길을 학원 쪽으로 향했다. 어느새 목적지가 다가오면서 어떻게 눈치채지 못하게 제자리에 들어가냐에 대해 작전을 짜보았다.


마치 다른 이들의 눈에는 범죄를 작당하는 이들처럼 보였을 것이다. 100M의 범주에 들어서 나는 일생의 트라우마의 순간을 마주한다. 우리 학원 근처에는 육교가 있었다. 8차선이라는 폭에 아무래도 신호등보다는 육교가 안전에는 괜찮지 않을까라는 의견이 더 먹혔을 것이다. 하지만 계단을 가파르게 여기는 이들에게는 위험천만한 무단횡단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상식적으로 이런 행동을 할까 싶지만 생각이상으로 밤중 차가 한가한 때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모험을 하는 이들이 꽤나 있었다. 문제는 이에는 남녀노소가 대중없었다는 것이었다. 불안 불안한 모습을 보면서 항상 보는 내가 조바심이 났다. 근데 하필 나의 눈앞에 그것이 결국 사고로 이어졌다. 걸음이 느리고 불편한 어르신이 좌우를 살펴보다 횡단을 하였다.


우리는 어 어 어 하는 탄식을 하면서 위험천만함에 걱정에 시선을 붙잡히다 위에서 내려오는 스쿠터와의 충돌을 목격한다. 순식간에 사람이 날아가 밀려졌고 쓰러짐이 일어났다. 복귀라는 본연의 목적을 잊고 나는 이 불안이 현실로 되는 상황에 발길이 멈춰졌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멍해졌다.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생각은 멈춰졌다. 10대의 아이에게 눈앞에서 사고를 목격하게 된다는 것은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히 목격자는 우리 말고도 더 있었다. 누군가의 신고로 상황은 정리가 되었다.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멍함에 어찌어찌 학원에 갔고 가방을 찾고 버스를 타고 귀가를 하였다. 어떻게 되었을까 이 사고의 경과를 알고 싶었다. 다음날 학원을 가는 길 하얀색 선으로 표시된 사고현장을 보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학원의 화제 이야기로 이 사건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일단 스쿠터를 몰던 운전자는 중상을 당했지만 일단 살으셨다고 한다. 하지만 무단횡단을 한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한다. 인근에 사시는 분이라 이런 무단횡당을 자주 해서 사람들이 위험하다 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계단을 오르는 힘듦과 번거로움은 이 무모한 선택을 유지하게 만든 것이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아니 어찌 보면 죽음이라는 단어를 인식하게 된 처음인 것이다. 나는 이날 이후로 한동안 이 순간을 악몽으로 꾸었었다. 아직 겪지 못한 것들이 아는 것들보다 많을 때 너무나 인상적인 것이었다. 한 번도 끝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지 못한 내가 누군가의 삶이 종료되는 순간을 마주한 것이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정점에 카테고리에 죽음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 뒤로 몇 차례 주변인들의 죽음에 대해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공포는 조금은 희석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끝이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면 복잡하다. 누군가는 이 망각을 유지하고 외면하려고도 한다. 그리고 회피하는 이들의 방식은 내 눈에는 비겁해 보일 때가 있다. 끝을 깎아내리고 훼손시켜 버린다. 두렵다는 것에 대응하는 방법이 너무 비겁하고 좀스럽다. 그래서 나의 스탠스는 흔들림이 있지만 나름 마주하고 인지하려 한다. 적어도 그게 당당해 보인 다른 생각이 든다.


나의 추천 플레이스트

스틸라이프 (2014.우베르토 파솔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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