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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자 K의 수감록

스물과 의미에대하여

by 김군

살다 보면 우리는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이 하나 둘 생긴다. 그리고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힘은 꽤나 무시하기가 어렵다. 이정표가 없는 비포장길 위에서 의미로 포장된 것들은 시멘트가 되기도 하고 아스팔트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기어이 도로를 만들어내어 마치 내 한걸음 한걸음에 정당성이 부여되는 느낌이다. 나의 서랍장에는 각기 다른 의미라 붙여진 명찰표가 쌓여간다.


휘적휘적거리며 손으로 그중 하나를 집어보았다. 숫자라는 두 글자가 눈앞에 놓였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꼬리표 같은 존재이다라는 것이 먼저 연상되었다. 매 순간 시시 때때 따라 외서 명백하고 뚜렷하게 자기 목소리를 낸다. 거기에는 거짓이 없다. 어떤 학문에서는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전제를 내세워 말하기도 한다. 이 티 없이 정직한 것 앞에서는 뭔가 가끔은 정이 없어 얄구지게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꼬리표처럼 삶에서 따라오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다 보니 또 샛길로 들어가 이 속에서도 나름의 취향이 생기고 선호가 파생된다. 일례로 들자면 행운의 숫자로 7을 사람들이 여기며 좋아하기도 하고 숫자 4를 죽을 사자와 같은 발음이라 불호하기도 한다. 나에게도 선호하는 하나의 수가 있다. 숫자 5를 좋아하는데 이에 딱히 특별한 이유는 있지 않다. 그냥 뭔가 안정감이 생기기에 선호한다. 그래서 일상 속의 아이디나 비번에 5가 어떻게든 포함된다.


아무튼 이런 숫자의 선호는 때로는 의미라는 것이 부여돼도 한다. 나에게 처음으로 그 명찰표가 붙어진 숫자는 바로 스물이다. 이 수가 내게 가지는 의미는 인정이었다. 스물은 국가에서 명시적으로 성인의 기준으로 정한 출발선이었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제약이란 것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불만은 대게 우리의 시간 중 미성년자 일 때 발현된다.


미성년자 성년이 되지 못한 사람으로 일정의 통제 속에 보호되는 존재들이다. 아직은 그 뿌리가 온전치 않기에 관심과 아낌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울타리를 쳐서 엇나가지 않게 망가지지 않게 사회가 지켜본다. 나의 보호관찰의 시절은 대개가 그렇듯 불만투성이었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 일 수였고 그에 대한 답변은 성에 차지 않았다. 나는 울타리를 벗어나도 초원을 달리는 말처럼 힘차게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이 성년과 미성년을 구분 짓는 경계선의 숫자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어서 스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자유라는 것이 손에 주어져 내가 그리는 그림이 얼마나 멋질지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시계 속에 시계침이 스물에 걸렀을 쾌감이 들었다. 이젠 저 갑갑한 울타리가 아니라 망망대해를 항해할 수 있다는 꿈에 두근두근거렸다.


하지만 찰리채플린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비극이다' 역시 지나간 선구자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막상 성인이라는 스물은 의미가 있지 않았었다. 기껏해야 약간의 제약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정도 그 속에서 술 담배를 할 수 있고 청불영화를 당당히 관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심하게 다가와 어깨를 짓누를 묵직한 책임감이라는 단어는 마음에 돌덩이가 되어 불편함을 주었다.


단편적으로 대학교에서 내가 강의를 들어가지 않아도 뭐라 하거나 지적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대신 학점이라는 등급으로 평가되고 그것을 온전히 감당해야 했다. 강압이 사라졌다는 것이 자유롭다는 것이 마냥 행복하지 않았다. 어떤 것이 맞는지는 내가 판단하여야 했고 그에 따른 실패를 감당해야 했다. 적어도 울타리 안에서는 명시적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내려주었다. 그것에 엇나가면 교화를 하거나 스스로 시정할 시간과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스물의 나에게는 낯설었다. 막상 적토마처럼 사막 위를 달려 오아시스를 금방이라도 찾을 것 같았던 자신감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나는 방황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옆에서 누군가는 달리기도 하고 후진하여 재수를 준비하며 나름의 원 코인을 사용하여 수정하려 했다. 나는 하루하루 그냥 의미 없이 흘러가는 것에 맞추어 살아갔다. 그 시절에 하루 끝에 술이 달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스물을 희미해져서 어느 한구 석에 던져졌다.


가끔은 후회가 되기도 한다. 스물의 의미를 더 살릴 수 있었는데 나의 아둔함이 발목을 잡은 것 같아서 안타깝다. 하지만 그도 그리 자주는 안 떠올랐다. 고됨과 또 찾아오는 시련은 틈을 주지 않았다. 오늘도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망각의 진통제를 투여한다.


나의 추천 플레이스트

스물 (2015.이병헌)


'사람들은 우리보고 좋을때다좋을때다 그러는데 뭐가좋은거지 이렇게 힘들고 답답하고 막막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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