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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온 자리, 돌아가지 못할 시간

내 집을 찾아 방랑하는 자

by 김군

오랫동안 머물던 터전을 떠난 지 꽤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돌고 있다.‘방황’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 이름을 등에 달고 이곳저곳을 떠돈다. 그 속에는 자의도 있었고, 타의도 있었다. 삶은 때때로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방향으로 밀어낸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는 점점 내 자리를 줄인다. 조직 안에서의 역할은 희미해지고, 경험과 능력은 자연스레 잊혀진다. 내가 나인 이유들마저, 이제는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게 된 것만 같다.문득, 영화 <은교>의 한 대사가 떠오른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이 말처럼, 나의 자의는 타의에 무너졌고, 그 무너짐을 아무렇지 않은 척 감추려 애써본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가책’이라는 말이 남아 있다. 사실 정착을 아예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몇 차례 이사를 시도했지만, 길어야 한두 달이면 다시 짐을 쌌다.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나는 불평도, 불만도 가졌다.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그러나 나는 결국, 나의 찬란했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멋지고 쿨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마지막 세입신고를 한 지 네 달이 지났다. 계약을 이어갈 수도 있었고, 누군가는 그렇게 되기를 바랐으며,
솔직히 내 마음 한편도 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끝을 선택했다. ‘미래’라는 핑계를 내세우고, 소통되지 않는 구조를 핑계 삼아 다시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는 영화 <졸업>의 마지막 장면처럼, 알 수 없는 감정의 여운에 잠긴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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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렀고, 새 집을 찾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이제는 정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망각하기엔, 나는 더 이상 청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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