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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갑과 을

by 김군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매달 따박따박 입금되던 월급도, 제법 맛있던 회사 식당의 점심도 이젠 없다. 자유는 달콤했지만, 그 뒤를 따라오는 건 어김없이 불안이다.


커피 한 잔으로 졸음을 쫓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프리타족이 된 나는 이리저리 작은 일감을 찾는다. 오늘은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하나 찾았다. 조건이 내 기준과 딱 들어맞진 않는다. 그럼에도 시간에 맞춰 ‘노동의 집결지’로 향한다.


묘한 기분이 든다. 예전이라면 이런 첫날엔 두근거림과 긴장감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저 무덤덤하다. 도착하니 공지받은 대로 바로 업무에 투입된다.최저임금과 짧은 근무시간. 기대는 자연스레 낮아진다.


고용주의 태도는 대체로 ‘일회용’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진 않다. 불편함은 있지만, 그런 생리를 이미 알고 있다. 예전 직장생활을 통해 충분히 익숙해진 감정이다.


업무에 대한 별다른 교육은 없다. 대충 눈치를 보며 선임자와 다른 작업자들의 움직임을 따라 한다. 역시나 실수가 나온다. 그러자, 올챙이 시절을 까맣게 잊은 사람들의 배려 없는 말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그 말들에 마음이 생채기가 살짝 나버린다 문득 세상의 이분법이 떠오른다. 흑과 백, 선과 악, 갑과 을. 세상은 너무 쉽게 나누어진다.하지만 이상은 이 분류를 부정한다. 세계의 색은 다양하다고 가르쳐주고 숙지시킨다.


갑과을 카테고리에 들어간다. 놀라운 건, 사람은 이 가면을 쓰는 순간 180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위아래를 나누고, 우열을 가르며, 상대를 지배하려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종종 선을 넘는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막말도 불쾌하지만, 반말이 특히 싫다. 서로 조율되지 않은 낯선 관계에서 퉁명스럽게 내뱉는 말들. 존중 없는 말투는 그 자체로 사람을 작게 만든다. 그 말의 내용보다, 말의 형식이 더 상처를 줄 때가 있다. 권력은 대개 말투에서 드러난다.


나는 이런 상황이 너무 불쾌하다. 상대의 말투나 태도 속에서 노골적인 무시를 느낀다. 늘 이랬다는 식으로, 옛날부터 그랬다는 말로 모든 걸 덮으려 한다. 그런 태도에 반발하면, 곧잘 ‘태클을 건다’고 여긴다.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여지없이 불쾌함을 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관계의 시작부터 자신이 ‘갑’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자연스레 ‘을’로 만든다. 그리고 그 위에서 말하고, 행동하고, 판단한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보다 누가 먼저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쥐고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다.그 순간, 존중은 사라지고 위계만 남는다.


무례함을 마치 권리인 양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내뱉는 말은 혼탁하다. 반말이 섞이고, 그 사이에 ‘친근함’이라는 이름의 제3자가 조력자처럼 끼어든다.가끔은 일부러 그렇게 느끼게 한다.


너와 나는 이제 가까운 사이라는 듯, 거리를 무너뜨린다.

하지만 그 속엔 기묘한 위계가 숨어 있다. 반말 뒤에 따라오는 친근함은, 결국 감시이자 통제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반응하지 않는다. 무시한다. 그러면 그들은 또 다른 가면을 꺼내 든다. 이 관계에서 ‘갑’이 될 수 있는 구실을 찾기 시작한다. 어떤 말로든, 어떤 태도로든 위에 서려 한다. 그리고 나는 그걸 본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보다 먼저, 권력을 드러낸다.


묵묵히 버텨야 했다.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며, 말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찰나 같기도 하고, 영겁 같기도 했던 첫 근무. 어쩌면 아무 일도 아닌 듯 치부될 수 있는 순간.


하지만 내겐 뚜렷한 하나의 장면으로 남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서는 길.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한다. 나는 이분법이 싫다. 흑과 백, 갑과 을, 위와 아래.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그리고 그 기준 위에 사람들은 너무 쉽게 가면을 쓴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보다는 오히려 혐오하고, 기피하는 것들을 더 자주 내 눈앞에 펼쳐 놓는다.


어려운 숙제를 매일 안고 사는 기분이다. 정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포기할 수 없기에 오늘도 그 숙제를 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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