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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일지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

by 김군

계단을 처음부터 다시 오르는 입장이다.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떠돈다. 하지만 그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것들 대부분은 별로 좋은 게 아니다. 푸념, 불만, 후회. 마치 담배 연기처럼 금세 흩어지고 마는 하찮은 것들이다.


그럼에도 요즘 자주 떠오르는 하나의 상념이 있다. 그 상념은 내게 사색의 시간을 건넨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를 바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이 사자성어가유독 요즘 나를 자주 멈춰 세운다.


배달이라는 노동 위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나는 귀와 눈을 활짝 열어야 한다. 주문서 위엔 언제나 요구들이 잔뜩 얹혀 있다. 그 문장들 사이엔 ‘압박’이라는 단어가 숨어 있다. 하나라도 놓치면 감점이고, 누적되면 낙제라는 느낌이 든다.


빠르게, 더 빠르게, 더 완벽하게. 점점 속도가 붙는 연주곡에 갇힌 듯한 하루다. 거리에서 시계를 보면 조급해지고, 움직이지 않는 엘리베이터와 끝없는 계단은 짜증을 유발한다. 시야가 좁아지면 사고는 금방 터진다.


나도 몇 차례 사고를 겪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머릿속은 ‘고객의 주문’을 걱정하고 있었다. 몸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야

그 씁쓸함과 서글픔이 물처럼 밀려왔다.


어느 날은 땀을 뻘뻘 흘리며 주문을 수행했다. 정확한 위치가 아닌, 지하철 역사 안까지 들어와달라는 요청이었다. 수많은 개찰구와 복잡한 구조물 사이를 헤매며, 나는 잠시 늦었고, 그 결과 나를 맞이한 건 핀잔과 인상 찌푸림이었다.


화가 났다. 하지만 이런 일은 드물다. 음식이 식었다며 한참 지난 뒤 주문을 취소하는 고객, 위치를 잘못 입력해 놓고도 연락을 받지 않는 고객. 그럼에도 배달은 완료되어야 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누리는 편의라는 건 누군가의 수고, 누군가의 땀,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피어나는 꽃이라는 것. 그리고 나는 그 거름과 토양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역지사지’라는 네 글자가 오늘따라 더 깊이 가슴에 남는다.


가끔, 요청사항에 이런 문장을 남기는 분이 있다.

“늦어도 괜찮아요. 기사님, 안전운행이 더 중요해요.”

그 짧은 문장에 울컥한다.


집에 돌아와, 이젠 나도 주문을 넣을 때 그 문장을 꼭 남긴다.


‘늦어도 괜찮습니다. 기사님, 안전이 먼저예요.’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문장이 세상을 조금 덜 차갑게 만든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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