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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보 Sep 14. 2021

이렇게 밖에 못하는 아들

32살 캥거루

언제쯤이면 가까워질 수 있을까


늦은 저녁 뒤늦게 씻고 몸을 뉘인 침대에서 뜬금없이 진동이 울려 퍼졌다. 누워있던 고개를 들어 쳐다본 시계에는 11시가 넘어 1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아니 이 시간에 올 전화가 없는데.. 검은 핸드폰에 밝게 빛나고 있는 '아부지' 라는 글자. 아버지의 전화였다.


나에게 아빠라는 말은 어른이 된 나에게 혹여나 남들이 볼까 하는 시선 때문에 하지 못했고, 아버지라는 말은 차마 너무 무거워서 입에 올리지 못했던 말이라 그나마 나은 '아부지' 라고 저장해놓은 철부지 아들이다. 평소에 전화는커녕 문자조차 하지 않는 부자 사이에 전화는 어색하다 못해 낯설게 까지 느껴졌다. 정말 아주 가끔 이렇게 전화가 올 때면, 하나는 분명했다. 술을 마신 게 틀림없었다. 술이 들어가야 말문이 트이는 아버지, 같은 말만 반복해서 똑같은 답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하는 아버지, 술주정이 심해 술을 먹고 나서야 평소에 쌓였있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서 잦았던 싸움 등 이게 내가 여태 30년 살아오며 겪었던 술에 대한 인상 그리고 술에 취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었다. 나는 매번 그런 싸움을 보고 자라왔고, 왜소하여 말릴 힘도 없던 나에게 당시 술 취한 아버지는 무서움의 대상이자, 나쁘게 말하면 적이었다. 늦은 시간 초인종이 울릴 때면, 몸이 기억을 하는 듯이 온몸에 털이 서고 무의식적으로 긴장이 되었다.


그럴 때면 문밖으로 몸을 3/4 정도 내밀고는, 다녀오셨어요 라는 형식적인 인사와 함께 눈도 쳐다보지 않고, 황급히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혹은 오실 때쯤 불은 다 꺼두고 오지도 않는 잠과 함께  뒤척이며 자는 척을 했더랬다.


나에게 밤은 코너 속에 코너 같은 이벤트 같았다.(물론 좋은 의미에 이벤트는 아니다.) 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꽉 차 있는 술냄새에 집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고, 나 가지 못해 갇힌 마음은 연신 살려줘를 외치고 있었다. 방안에 있어도 혹여나 내 이름을 부르지는 않을까 하는 긴장에 연속이었고, ‘야 이대희’ 라며 이름 석자를 부르는 날이면 평소에는 말하지 않아 겹겹이 쌓인 불만을 털어내는 아버지의 말씀을 한 시간이고 듣고 있어야 했다.




내가 나이가 먹을 만큼 먹어 갈 때쯤에는 아버지는 지방으로 가시는 날이 많아지고, 적게는 1주 많게는 한 달 가까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 날이 많아졌다. 그만큼 술에 취해 들어오는 아버지를 보는 날은 적었고, 나 또한 그런 불안감에 대해 조금씩 무뎌지면서 아버지가 없는 날이 오히려 평범한 날이 되어갔다. 연락 좀 드려라 라는 어머니의 말에도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연락을 하는 일이 드물었다. 무뎌진 불안감만큼 나에게도 내가 그렸었던 부자간의 모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여느 평범한 집안처럼 진로에 대한 상담도 받아보고, 내 고민에 대해 함께 나눠보기도 하고, 나보다 앞서 살아왔던 인생에 대해 들어보고 심심한 위로 안주삼아 한잔 기울일 수 있는 그런 친구 같은 아버지 말이다. 이런 고민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하면 돌아오는 답변은 항상 네가 먼저 다가가 봐 라는 형식적인 답변이었다. 나에게는 그 먼저 다가가 봐 라는 행동이 가장 어려운데 말이다.


물론 나도 그런 시도를 안 한 적이 없는 건 아니다. 내가 한번 다가가 볼까, 얘기를 먼저 건네 볼까 라는 생각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 비록 손에 꼽을 연락이지만, 고심하는 가운데 했었던 연락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아버지와 대화를 하는 일만큼은 여전히 어렵고 힘들다. 술에 취한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과 불안감은 시간이 지나 덜어냈을지언정 그런 불안감 속에 쌓인 벽과 어색함은 한순간 쉽게 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익숙해진 나날들 가운데 침대 위에 울리는 전화는 참 이상하고, 긴장되었다. 한동안 그런 일이 없어 불안감이 사라진 줄 알았음에도 이런 불안감은 내가 30살이 넘어서도 오히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알아서 긴장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당연한 안부전화일걸 알면서도 긴장하는 나를 보며 아직도 술에 취한 아버지를 지켜보는 어린아이와, 아무것도 하지 못해 아버지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어머니를 보고 있었던 무력한 어린아이가 거실 혹은 내 방에 남아 있는 듯했다.


그날 내 미간은 전화를 받기 전부터 살짝 일그러져 있었고, 전화를 받지도 않았는데 몸은 이미 긴장한 탓인지 굳어 있었다. 잠이 확 달아나는 순간이었다. 이미 늦은 시간인데 자는척하고 받지 말아 볼까, 혹은 받지 않아서 나중에 이게 무슨 일로 돌아올까 그냥 받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라는 고민을 하는 사이 진동은 이미 여러 번 울리고 있었다.


그렇게 고민을 내리지 못한 나는 진동 끝자락 말미에 마지못해 한 손으로 통화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한동한 정적이 흐르는 통화에는 말도 하지 않았지만, 주변에 울리는 조그마한 소음 그리고 평소와 다른 숨소리, 술을 마신 게 분명했다. 통화 너머로 술냄새가 나는듯해 몸이 더 움츠러들었다.


여보세요..

어 뭐하냐

자려고 누웠지, 왜?

그냥 전화해봤다. 잘 지내냐

잘 지내지,

엄마는 자냐?

어, 아마 잘 거예요 불 끄고 들어왔어.

그래 알았다 잘 자라

네 주무세요.


뚝...


이렇게까지 밖에 못하는 아들과 이렇게까지 해야만 대화가 가능한 아버지의 전화는 불과 1분도 되지 않아 끊어졌다. 긴장이 풀린 몸에서는 참은 한숨이 한껏 쏟아져 나왔다. 이렇다 우리 부자간의 대화는 일방적이다. 나는 술 마신 상태에서 대화하고 싶지 않아 단답만 뱉어 댔고, 전화를 받은 아들은 뭐하나 끝내 물어보지 못하고 전화는 끊어졌다. 내가 쉬었던 한숨이 이제야 끝났다는 안도의 한숨일까 혹은 굳이 이렇게 까지 했어야 했나, 조금만 친절했어도 됐는데 라는 한숨이었을까 헷갈렸다. 아무 일도 없는 안부전화였지만, 전화를 받기 전까지 마치 으르렁대는 강아지처럼 털을 쭈뼛세우고 받았던 나에게 조금은 회의감이 들었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뭐라도 좀 물어볼걸 그랬나. 짧은 대화를 하며 문장이 끊어지는 순간마다 이어지는 작은 정적이, 서로 더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물어보지 못해 생기는 틈 같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잠이 오지 않아도 자는 척해야 했었던 그날보다 유독 그날은 잠이 오지 않았다. 하루를 힘들게 마무리하고 유일한 낙인 술을 마시고 나서야 전화가 가능했던 아버지의 전화를 혹은 이미 많이 늙어버린 아버지의 전화를, 아무 일도 아니었던 그저 안부전화를 날이 선채로 받은 나의 후회가 맞았을까, 전화를 끊고 나서는 한동안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시선으로 아빠를 얘기할 때면 과거 내 이야기가 항상 나오곤 했다. 어머니의 말을 빗대어 표현하자면, 나를 그렇게나 좋아하셨다나..  첫째가 아들이어서 좋았고, 나머지는 그냥 나여서 좋았던 듯하다. 10점이 애정이라면 그 10점을 온전히 나에게 쓰셨겠다. 기억한 켠 좋지 않았던 기억을 뒤로하고 한쪽 구석에는 그래도 좋았던 기억은 존재한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 주인 복합주택 2층에 살았었는데, 어둡고 좁은 방한 쪽에 크나큰 장롱 하나와 작은 티브이가 하나 놓여있었다. 조그마한 팩을 꽂아 할 수 있는 게임기를 사들고 와서는 방에 나란히 앉아 같이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의 나와 아버지는 행복했던 듯하다. 어두운 방골 티브이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에 우리의 얼굴도 밝았을 테니 말이다.


한없이 큰 존재였고, 세월의 풍파를 맞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버린 얼굴에는 이제는 생기보다는, 삶의 고단함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남아있다. 등은 점점 굽고 머리털에는 흰색이 많아져, 염색약을 쓰지 않고서는 커버할 수 없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이제는 많이 늙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세월의 흔적들은 몸에 훈장처럼 남아 그때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대신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하고 싶었던 게 많았지만, 우리 때문에 못했던 것임을 고단한 하루 속 나에게는 이해 못할 술이지만, 아버지에게는 유일한 낙이 었음을 이제는 그 훈장을 몸에 지니고 가족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날 밤에 울렸던 전화도 내가 생각한 것들과 멀지 않을 것이다.  비록 이렇게 까지 밖에 못하는 아들이라 안 좋았던 기억을 제외하고서라도 많이 부족했던 아들이라 다가가기 힘들지만, 왜 그래야 했는지, 그래야만 대화가 가능했던 아버지를 이해할 순간이 온다면, 그 컸던 벽들도 단단하고 컸던 것이 무색할 만큼 한순간에 허물어지지 않을까. 나는 오늘 휴대전화를 들어서 통화목록에 있던 ‘아부지’의 이름을 바꿨다. ‘아버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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