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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정 Apr 13. 2020

남미 인종차별이 그렇게 심하다던데

 제발 눈 좀 그만 찢어요

 

 나는 비록 여행자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새로운 시각을 보고플 때 가끔 그들의 커뮤니티를 들여다볼 때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종종 보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것.


"중남미, 동양인 인종차별이 그렇게 심하다던데 진짜인가요?"


 나는 현재 브라질에 거주 중이고, 아르헨티나에 한 번 여행을 다녀온 것이 내 남미 경험의 전부이기 때문에 사실 '내 경험에 따르면 남미가 이렇습니다'라고는 말할 순 없으나 어느 정도의 경향성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주제에 대해 풀어낼 이야기는 참으로 많지만, 이 글에서는 브라질인들이 특히나 거침없이 해대는 동양인에 대한 차별적 언행에 대해서 한탄해본다.







인종차별의 종류를 나눈다면


 많은 한국인들이 기억할 것이다. 지난 월드컵 때, 멕시코 국민들이 한국인들에게 감사하다며 단체로 눈 찢는 포즈를 올려 공분을 샀던 일을. 또 작년 브라질 부부가 한국에 방문해 식혜를 보며 무식한 소리를 쏟아냈던 일을.



 어쩌다 보니 콧대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에 이어 브라질에서 두 번째 해외 생활을 하면서 인종차별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뉨을 깨닫게 되었다.


1. 그냥 대놓고 기분 나쁘라고 하는 인종차별

2. 이게 인종차별인지도 모르고 하는 인종차별

3. 인종차별인지 알고 부러 은근스레 하는 인종차별


적어도 나의 경험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1번과 3번이 흔했고 브라질에서는 1번과 2번의 유형에 대체로 해당했다. 1번에 해당하는, 길가에서 소리를 지르고 눈을 찢어대는 이들에 대해선 어느 나라든 고정 비율로 있지 않을까 싶은데, 별 얘기할 가치도 없다.


 프랑스에 있었을 때는, 3에 속하는 경험이 많았다. 내게 음식을 늦게 내준다든지, 분명 문제가 없는데도 못 알아듣는 척, 안 되는 척한다든지. 개고기와 같은 민감한 문제를 꺼내 마치 농담처럼 언급하며 비꼰다든지.


 그러나 브라질에서 내가 겪은 인종차별들을 떠올려보면 1번을 제외하면 대부분 2번이었다. 내 면전에 대고 웃으면서 눈 찢는 행위를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브라질 사람들의 대부분은 저게 인종차별 제스처라는 것을 인식조차 못하고 단지 가벼운 농담거리로 여기기 때문에 심지어 절친한 친구인 나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브라질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저기 아시안 여자애 있다!라고 속삭이는 것을 잘 듣지 못해 내가 '뭐라고?' 하고 되묻자 눈을 찢으면서 '아시안이 저기 있다고'라고 답해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굳이 왜 그럴까


  평소 자주 담소를 나누던 다정한 빵집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우연히 나의 국적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눈빛으로, '근데 전부터 궁금했는데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의 차이가 뭐야? (눈을 찢으며) 한국인은 좀 더 이렇게 생겼어? 아니면 중국인이 더 옆으로 찢어졌어? 어떻게 구분해?'라고 물어왔다.

  뭐, '난 너처럼 생긴 사람들은 구별 못해 다 똑같이 생겼어'라고 하면서 쾌남인 양 껄껄 웃던 그 택시 기사 아저씨보다는 나은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불쾌함을 참지 못해 웃으면서 '나쁜 의도가 아닌 건 아는데요, 그 동작 아시아 사람들한테는 기분 나쁘니까 하지 마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을 표출했을 때 맘에 드는 반응을 얻은 적은 사실 많지 않다. 이렇게 내가 기분이 나쁘다-하는 심정을 전달할 때마다 그들은 매우 당황해하며 '정말 나쁜 뜻은 아니었어. 객관적으로 봐도 너네는 눈이 이렇게 생겼잖아. 그래서 묘사한 것뿐이지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어. 어쨌든 기분 상했다면 미안하다'라고 사과(혹은 변론)하는데 뭐랄까 기분이, 사실은 사실인 건데 너 왜 이렇게 예민하니 라는 속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가끔 한 층 더 욱해서 "그거 racismo(인종차별)야"라고 하면 펄!!!쩍 뛰며  난 일본인 친구들도 많은데 내가 어떻게 인종차별자야!!하면서 얼마나 기분 나빠하는지. 내가 일본인 친구가 많기 때문에 인종차별 행위가 아니라는 이런 해괴한 논리를 펼칠 때면 그냥 힘이 빠져 언쟁할 마음도 사라진다.



 이외에도, 내게 일본말 혹은 중국말을 건네는 사람도 많다. 어느 날 쇼핑몰 안 KFC 직원은 날 보고 상기된 얼굴로 곤니찌와 아리가또!라고 인사하며 나의 답변을 기대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슬며시 나에게 건네는 니하오 혹은 아리가또는 어느 쪽이든 별로 달갑지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슬그머니 던져보는 니하오와 길가에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뱉어내는 니하오의 무게는 크게 달라 이 경우는 그나마 그래... 친해지고 싶었나 보다. 하고 넘어가고 만다. 귀여운 수준이다.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될 텐데, 이 사람들은 왜 굳이 이렇게 기분을 언짢게 만들까.

 브라질에서는, 특히 상파울루에서는 아시아인이 그렇게 드문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이렇게 반응한다.


 중남미의 인종차별이 거론될 때마다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브라질의 교육 수준은 상대적으로 매우 낮으며 특히 제대로 된 교육시스템에 접근조차 못한 이들이 너무나 많다. 2018년 시행된 브라질 국내 조사 내용에 따르면, 브라질 가정 중 30% 이상이 인터넷 접근성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하니, 그들이 '아시아인=일본인+일본인처럼 생긴 애들'과 같은 인식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우리가 길에서 마주치는 그 고성의 인종차별주의자는 이 30% 혹은 그 근방에 들 확률이 매우 높다. 이렇듯 길가에서 칭칭 거리는 사람들은 그냥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바라봐주는 게 우리 심신 건강에 좋다. 이해해 줄 필요도 없지만, 글로벌 사회가 무엇인지 알 기회조차 없었던 그들의 장난질에 하루의 기분을 망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며 모른 척 지나간다. 그리고 그 이전에, 라질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괜히 맞섰다간 위해를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모르는 듯 지나치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적어도 선의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러한 언행을 보이는 이들에게는 내 나름의 소소한 -나의, 만인을 향한- 투쟁으로서 매번 조심스레 지적해주는 편이다.  나 같은 사람들이 몇 년 동안 걸고넘어지다 보면 적어도 그 사람들이 지나가는 아시아인을 보고 니하오라고 인사할 일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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