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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정 Apr 27. 2020

재택근무가 이런 영향까지 주다니

드디어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다.


 말하기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 나는 별로 건강을 챙기는 편이 아니었다.

허리가 좋지 않아 매일 스트레칭을 하고, 주에 두어 번 홈트로 땀 흘리는 것 외에는 건강에 특별히 투자하는 사실이 없는 이 무던한 나날에, 재택근무라는 폭탄이 떨어졌다.







 

 처음에는 전쟁 같은 출퇴근길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큼은 내심 좋았음을 고백한다. 다만 그런 생각은 1주일도 채 가지 않았다. 마트, 빵집, 주유소 등 필수 생활 시설 외에는 모두 문을 닫은 여기 상파울루 도심에서 집 안에만 있어야 하는 나날이 늘어가고 좋았던 감정은 금세 사라져 자취를 감췄다.


일주일에 한 번, 마트 가는 시간이 유일하게 아파트 밖을 나서는 시간이다. 이렇게 마트 가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 하루 종일 주인과의 산책시간만 기다리며 집에 있어야 하는 애완견들의 삶이 이런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예전 키우던 강아지의 산책에 소홀했던 점이 기억나 뒤늦은 죄책감이 밀려온다.


 자주 마트에 가서 조금씩 장을 봐오면 되지 않겠나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마스크를 안 끼는 사람이 여전히 많은 이 동네에서 밖을 자주 나가는 것이 부담이 되기 때문에 스스로 1주에 한 번으로 제한하였다. 아직은 브라질 내에서 눈에 띄는 사례가 없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인종차별의 리스크도 항상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불 밖은 위험해'를 진지하게 새기고 살아간다.


밖순이였던 내가..

 

이렇게, 재택근무 및 봉쇄가 떨어진 지 벌써 2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매일매일 몸이 뻐근하고 안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에는 아마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다. 애초에 움직이고 걷는 시간 자체가 10분의 1 정도로 줄었을 테고, 볕 아래에서 사람들과 같이 걸어가는 활기의 시간조차 없다. 평소 브라질 뷔페식으로 점심을 자주 먹으면서 샐러드와 과일도 조금씩은 섭취를 했었는데 이제는 마트에서 따로 구매하지 않는 이상 먹을 일이 없다.



 엄마가 매번 비타민이니 뭐니 영양제 좀 챙겨 먹으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네네네하고 말았지만,

요즘같이 몸 굳기 좋을 때가 되니 드디어 발등에 불이 떨어진 느낌이다.

나는 왜 항상 이렇게 급박해져야 뭘 진지하게 할 마음이 드는 걸까. 이 나쁜 버릇은 쉬이 고쳐지지가 않는다.




평소 마트에 가면 한식에 쓰이는 주재료 양파, 마늘 정도 외엔 특별히 과일 야채 칸에서 구매한 것이 없지만 어제는 좀 달랐다.


보기만 해도 몸에 비타민이 도는 느낌이다.



작은 수박 반통과 청포도 두팩, 사과에 귤까지 조금씩 조금씩 쟁여왔는데, 혼자서 이걸 언제 다 먹나 싶기는 하지만 이렇게 마음이 든든할 수가 없다. 매번 이런 저런 냉동고기에 통조림 음식을 잔뜩 사와 냉장고에 정리를 마치면 들었던 그 충만한 느낌이 어제는 곱절로 드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 충만감의 질도 달랐다.

과일 섭취가 실제로 내 건강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주게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무언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정신적인 만족감은 이미 충분했다.


평소 배고프면 매번 빵을 먹거나 라면을 끓여먹었는데 이젠 과일을 집어먹을 생각이다.

음.. 이 문장 자체가 주는 내적인 위로가 생각보다 강렬하다.




이외에, 어제는 특별히 요거트나 생선 등도 함께 구입했다. 사실 장을 보다 보면 매일매일 사는 것만 똑같이 반복해 사기 마련인데 어차피 할 것도 없으니 새로운 식재료를 발굴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것들일 수 있으나, 유제품을 잘 챙겨 먹지 않는 내게 요거트는 직접 내 돈으로 사는 일이 거의 없는 음식이었으며 생선 같은 경우에도 혼자 사는 사람들은 아마 잘 해먹는 일이 없지 않을까.

어제 산 생선은 브라질에서 정말 흔하게 먹는 흰 살 생선, tilapia (틸라피아)인데 거창하게 먹기보다는 한국식 고등어구이처럼 소금을 쳐 담백하게 구워 먹고 싶다.


Tilapia (출처 Receiteria)


이외에 문어도 사봤다. 건강에 좋은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요즘 남는 것이 시간이니만큼, 새로운 먹거리 시도를 위해! 푹 삶아 숙회를 해 먹으리라.








위와 같이 글을 끝맺기엔 왠지 찔려 양심 고백처럼 덧붙인다.

사실 건강을 생각해 식생활을 다양히 하겠다고 결심을 했지만, 달다구리들의 유혹도 피할 수는 없었다. 내가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씩 이런 것들이 먹고 싶어 질 때가 있는 것을...

어떻게 사람이 완벽히 건강한 먹거리들만 챙겨 먹나, 그럴 수는 없다고 나 자신을 위로하며 적어도 장바구니 안에 과일이 늘었다는 것으로 일단 이번 주는 만족하기로 한다.


손이 가요 손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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