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풀만 뜯고 어떻게 살아. 내가 염소야? 토끼야?' 난 고기 없이는 절대 못살아' 하며 웃어넘기곤 오늘은 소고기를 먹을까, 돼지고기를 먹을까 고민하곤 했다.
어쩌다가 옥자라는 영화를 본 날도 그랬고 또 우연히 도축의 잔혹한 실태를 보여주는 사진, 다큐멘터리를 봐도 잠시간 반성의 시간을가질 뿐 육식을 조금 줄여야겠다는 결심은 작심 1시간이었다.
전부 '그랬다' 식의 과거형으로 작성하긴 했지만...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나는 고기를 너무나 사랑한다.
식탁에 고기가 없으면 허전하고, 든든하게 먹은 것 같지가 않다. 덩어리 고기도 사랑하고 각종 고기덮밥, 고깃국도 너무나 좋다. 윤기도는 삼겹살을 보면 침이 싹 고여 입을 다신다.
그래서 윤리적인 문제로 채식을 택하는 사람들이 참 대단하고 존경스러워도 내가 막상 그렇게 되어보겠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못했고,고기를 먹음으로써 얻는 정신적 행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걸 포기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왜일까? 올해부터 유독, 환경 문제들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배달을 시킬 때마다 셀 수 없이 딸려오는 일회용 용기 쓰레기들
-남은 음식을 보관할 때 사용하는 비닐백
-내용물만 비우고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물통과 음료 캔
-쭉쭉 짜내 쓰는 세제
전염병이 터진 후, 지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환경 문제에 더 신경 쓰자는 미디어 콘텐츠가 유독 눈에 띄었던가? 내가 의식적으로 좀 더 찾아보게 되었던 것일까?
뚜렷한 계기는 사실 모르겠지만 자꾸 어느샌가 나의 일상에서 낭비되는 자원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대학시절에 배웠던 '과도한 육류 소비는 가축으로부터의 메탄가스를 많이 발생시키므로 환경 파괴의 주범'이란 내용이 생각나 육식 식습관까지 돌아보게 되었다.
다른 것과는 달리 육류 소비에 대해서는 한 층 더 생각할 거리가 있었는데 바로 동물들의 삶과 복지에 관한 것이었다. 수백수천 마리의 돼지, 닭들이 몸 크기만 한 우리에 갇혀 뒤도 돌아보지 못하는 자세로 먹고 자고 배설하기만을 반복하며 살을 찌우게 되는 과정, 그리고 처음으로 이런 공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도축날 사진 등을 우연히 마주하게 되면 황급히 뒤로 가기를 눌러 회피하곤 했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봐도 정신적으로 괴롭기만 하고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왜 개, 고양이는 안되고 소랑 돼지만 됩니까라는 오랜 반론에도 여전히 나 스스로 납득가능한 변명거리를 찾을 수 없었기에 더욱 직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회피에서 나아가 문제를 직면해야 할 때가, 스무 살 하고도 몇 해를 더 먹고서야 찾아왔나보다. 75억 인구 중에 나 하나 바뀐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지만 (초등학생 때 불렀던 60억 지구에서...라는 가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그때에 비해서 15억이나 늘었다니 충격이다.) 알고 보니 내가 하루만 맘먹고 채식을 해도 지구에 끼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고 한다.
한 사람이 일주일에 1번 채식을 하면 약 1년에 15그루의 나무를 심는 놀라운 효과를 가져온다. 또 동물사육으로 인해 발생하는 토양 및 수질 오염도 줄일 수 있다
이런 연구 결과를 반영해 '고기 없는 월요일'이라는 환경 운동 캠페인도 적극 진행되고 또 각종 마케팅 활동도 생기고 있는 듯한데, 굳이 월요일이 아니어도 끼니 중에 몇 번은 고기를 섭취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 지킨다면 그것만큼 쉬운 환경운동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단을 바꾸기 위해서는 내 의지만큼 중요한 것이 주위 사람이고 또 환경이다. 아마 많은 한국의 직장인들이 회식, 그리고 모두 함께하는 점심 식단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생활 속에서 철저한 비건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고, 가정에서 고기 안 먹겠습니다 하고 선언하는 것은 '그게 뭔 소리야?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는 거야, 얼른 한 점 집어먹어 내가 너 먹이려고 얼마나~~' 하는 하소연 섞인 협박을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브라질에서는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채식하기가 수월하다. 각종 식당에 채식 메뉴를 갖춘 곳이 많고 현지에서 가장 흔한 식당 형태 중 하나인 뷔페에선 자신이 원하는 음식만 쏙쏙 골라먹을 수 있기 때문인데 이 때문인지 근처에 채식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다. 게다가 그냥 식당인 줄 알고 모르고 들어간 한 베지테리언 뷔페에서는, 생각보다 고기를 쓰지 않고 만든 음식들이 맛도 있고 포만감이 들어 놀라웠다.
이렇게 주위 환경도 받쳐주니, 육식을 정말 줄여야겠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고 싶지 않으니 솔직하게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시작했다.
채식주의자는 어렵고, 채식지향주의자가 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겠다고.
-고기보다는 야채, 생선 및 해산물을 택하려 노력하고,
-덩어리 고기는 1주일에 두 끼니로 제한하고,
-유제품, 계란 등은 계속 먹을 것이며,
-음식들에 들어있는 동물성 성분들까지 확인해가며 골라먹기는 어렵고,
-또 뼈해장국이나 국밥 등 고깃국은 솔직히 포기 못하겠다고.
써놓고 보니 채식지향이라기보단 비덩주의, 플렉시테리언. 혹은 비육식주의지향에 가까워보인다.
어쨌든 뭐, 이름이야 무엇이 되었든 그게 중요한가.
내가 스스로, 의식적으로 과한 육식소비를 줄여보겠다고 맘 먹은 거다.
브라질은 아직도 코로나 확진자 수가 매일 몇만 명을 넘나들고 있으므로 식당에서는 음식을 먹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고 항상 2-3주에 한 번 크게 장을 봐서 직접 해 먹고 있는데, 다음 주 일요일에 장 보러 갈 때는 채소들의 비중을 훨씬 높여서 장바구니를 채워보려고 한다.
아직 영양소 등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기는 하지만, 그런 것은 일단 천천히 알아보기로 하고 고기류의 경우 일주일 기준 닭가슴살 한 팩, 간 소고기 한 팩만 구매하는 것이 1차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