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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정 Sep 14. 2020

내 생애 최악의 홈쉐어링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같이 산다는 것


작년 초, 브라질에 온 지 약 일 년 반 만에 남자친구와 그의 가족을 떠나 홀로 상파울루로 이사하기로 맘먹었다.

영주권이 나올 시기가 다 되었기 때문에 이에 맞추어 구직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기 위함이었다.

아무래도 집은 직접 봐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 임시로 에어비앤비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며 여기저기 홈페이지를 뒤지고 메시지를 보내어 방문하며, 머무르고 싶은 집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들 어떻게 좋은 집을 구하여 사는 것인지, 내가 생각하는 가격대에선 영 맘에 드는 집, 맘에 드는 위치의 집이 없어 고민을 거듭했다. 더 편하게 살고 돈을 더 낼까,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 등등.


이 글은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최종적으로 살게 된 두 집의 이야기이며, 결론적으론 홈쉐어링 실패담이다.






1. 모녀와 강아지가 살던 집 (2019년 3월-4월)


 내가 정해놓은 맥시멈 예산 범위에 겨우 들어왔던 이 집은 초등학생 딸과 엄마, 그리고 작은 요크셔테리어 한 마리가 살고 있는 오래된 아파트 집이었다. 군데군데 낡은 티가 나긴 했어도, 집주인이 워낙 좋아 보이고 결정적으로 상파울루 상업 중심지 코앞이라는 점 때문에 이 곳에서 살아보기로 결정을 했다. 아무래도 처음 살게 되는 곳이다 보니 치안과 교통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


어디나 그렇듯, 첫 입주 때에는 굉장히 좋은 분위기로 들어갔다. 내가 외국인이다 보니 우리 딸 영어 연습 상대가 되어줄 수 있겠다며 재잘거리던 집주인은 필요한 게 언제든 있으면 말하라며 한껏 미소 지어 보였고, 나는 내심 사람들은 착한 것 같아, 다행이다. 라고 그렇게 잘못된 착각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1. 주방이 낡은 것은 알았지만 사실상 위생적으로  쓸 수 있는 가재도구가 없는 상태. 딸은 잔뜩 녹이든 프라이팬에 계란 프라이를 해 먹곤 했지만 속으론 '저건 좀..'싶어서 결국 내가 쓸 도구들은 내가 따로 전부 구매했다.

2. 키우는 강아지를 학대하고 있었다. 때리는 학대가 아니라, 방치의 학대. 산책은 일주일에 한 번 나갈까 말까 해 보였고, 강아지가 옳지 않은 곳에 대소변을 보게 되면 하루 종일 세탁실에 묶어두고 교육이라며 나보고 풀지 말라고 부탁(명령..?)을 했다. 잠을 잘 때는 소파에 소변이라도 보면 안 된다며, 복도와 거실을 나누는 문을 닫아두어 강아지가 컴컴한 복도에 갇혀있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늦은 밤 화장실로 향하다 강아지의 대소변을 밟은 적도 있다. 그리고 샤워는 대체 시키는건지 아닌건지, 항상 냄새가 나고 털이 떡져있는 게 기본이었다. 아무리 남의 집 개라지만 보기가 안타까웠다.

3. 모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들이 교회에 얼마나 가는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밥을 먹고 있는 내게 다가와 내가 지저스의 러브를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며, testamunha(간증) 동영상, 혹은 찬송가라든지 예배 영상을 볼륨 높여 틀어두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계속 관련한 설명을 하려고 애를 쓰는데 나 같은 무교 of 무교에게는 그런 고통이 또 없었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4. 초등학생 5학년쯤이 되었던 그 딸은 도대체 변기 물을 내릴 줄 몰랐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8살도 아니고 12살인가 그랬는데 그 정도면 변기 물 내리는 건 기본으로 알 시기 아닌가? 이틀에 한 번 꼴로 마주치는 오물에 나중에는 변기 뚜껑을 열 때마다 두려움이 일었다.


참고 참다가 결국 강아지에 대해서 조금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고 또 딸에게 변기 관련해서 교육을 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다수 번 전한 뒤 집주인과 좋지 않은 긴장감이 생겼는데, 집을 나가게 된 결정적 라스트 샷은 4번에서 터졌다.


어느 날 한낮, 그 딸과 나만 집에 있었을 때였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변기 테러를 목격하자 순간 열이 받은 것이다. 대체 이 더러운 꼴을 언제까지 봐야 하나!


그래 봐야 뭐 어린애에게 어떻게 하겠냐만은, 딸을 불러 변기를 가리켰고 제발, 물 좀 내려줘.라고 부탁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날 밤 새벽 한 시쯤 집주인이 방문을 두드렸다.


요지는, 왜 애한테 직접 뭐라고 하느냐는 것이었는데 거의 두 시간을 말다툼했던 것 같다. 아니 적당한 걸로 문제가 되어야 같이 사는 입장에서 그냥 참는 것이지 이건 너무너무 기본적인 거 아니냐고, 그리고 내가 화를 냈어 욕을 했어 변기 물 내려주라고 한 건데 근 50만 원씩 줘가면서 이런 꼴을 매일 봐야 하냐고! 한달 동안 쌓일 대로 쌓인 불평불만은 끝이 없었고, 집주인도 그녀의 불만을 쏟아냈다.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왜 행주로 안 닦냐고.

살면서, 설거지 후에 그릇을 마른행주로 닦는 집은 여기가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습관이 안되어 설거지 건조대에 올려두고 외출하는 일이 잦았는데, 그녀의 요지는 이거였다.


당신이 그릇 안 닦는 거나, 딸이 변기 물 안 내리는 거나 결국 똑같이 습관이 안되어 안 하는거니 둘이 똑같다.내가 지저스의 사랑을 알기 전, 그 망나니 같이 살던 시절이었다면 널 가만히 안 뒀을 것이다. 나와 교회를 같이 가면서 하느님의 이해와 사랑을 배우자.


 부족한 포어로 내 분노를 표출하느라 참 답답했는데, 저 마지막 말을 듣자 아 이건 소통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2주 내로 나가겠다고 통보했다.





2. 할머니와 살던 집 (2019.5-12)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새로 집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시간이 많지 않았다. 적어도 지난 경험으로 깨닫게 된 것은, 애 있는 집은 피하는게 낫고, 최대 두 명이 사는 집이 좋다는 것. 두 명 거주에 역세권에 위치한, 예산 내 집을 2주 내로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중 결국 선택한 곳은 직장에서 매우 가까운 한 할머니의 집.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인심 좋은 할머니의 느낌이 풀풀 났고 특별할 것 없지만 나쁜 것도 없는 그런 집이어서 결국 선택했다.


이 집에서는 몇 달 동안 큰 문제없이 살았는데, 9월 즈음이 되서부터 낌새가 이상했다.

내가 아예 쓰지 않고 있던 서랍에 모셔두었던 브랜드 로션통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든가, 장 안에 있던 데오도란트의 뚜껑이 다른 브랜드의 것으로 끼워져 있다든가.


'할머니, 혹시나 해서 그런데, 제 로션 가끔 쓰셨어요?'

'내가 네 걸 왜 써! 나도 로션 많아! 아마 저번 주에 왔던 청소도우미가 건드렸나 보다.'

'아 그럼 저 그 사람 번호 좀 알려주세요. 이건 도둑질이잖아요.'


조심스러운 내 질문에 불같이 열을 내던 할머니는 태도를 바꿔,  에이 뭘 그렇게까지 하냐며 내가 알아서 잘 이야기해두겠다고 전화번호를 주지 않으려했다.

미심쩍었다.



이런 일이 한 번 일어나니 이제 점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는데 하루는 할머니가 혹시 내 방을 드나드는 건지 확인하기 위해 방문에 아주 작은 장치를 해두고 출근했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확인해 본 결과는 당첨이었다. 누군가 방에 들어왔다는 확실한 증거.

상기된 채로 할머니 방문을 두드렸고, 혹시 제 방에 들어왔냐고 물었더니 저번 모양새랑 똑같게, 불같이 일어나 전혀 아니라고 한다. 청소도우미도 안 왔는데 말이다. 추가 물증으로, 그녀의 화장실 장 깊은 곳에서 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핸드크림과 데오도란트를 찾아냈다.

할머니는 거짓말을 하면서 내 물건을 쓰고 있었다.

지지리도 운 없는 홈쉐어링 인생.


그때부터는 방문을 꼭 잠그고 확인 장치도 확실히 해두었지만 이미 같이 사는 이에 대한 신뢰가 없어진 상태에서 사는 것이 편치 않았다. 그렇게 나는 점점 예민해지면서 비슷한 일을 두어번 더 겪었고, 양이 줄어있던 또 다른 샴푸통을 발견한 날 욱하여 할머니에게 따지기에 이르렀는데 그때 할머니 반응이 아직도 인상깊다.


나보고 너 좀 미친 거 같다고, 정상이 아닌 것 같다며 같이 못살겠다고 화를 내는 것이다.

이게 가스라이팅 당하는 기분인가. 화 낼 사람은 난데!


전투력이 떨어져,

그래요 안 건드렸다고 합시다. 다 됐고 저도 못살겠습니다. 

하고 방으로 들어와 모든 걸 잊기로 하고 영화를 틀었는데 할머니가 내 방으로 들어와 울기 시작했다.


열심히 키운 아들이 어쨌는데, 손주가 어쨌는데.. 지금 나는 너무 외롭고...  네가 자꾸 화내니까 슬프고 어쩌고.


피해자는 나인데 누가 보면 오히려 내가 나쁜 사람되기 딱 좋은 모양새였고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내가 더 이상 추궁을 할 수 없게 눈물로 막아내고 있었다.



 





정말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 싶을 때 남자친구가 상파울루로 넘어오면서 내 홈쉐어링 라이프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평생 함께한 가족이랑 사는 것도 쉽지 않다지만, 생전 처음 보는 남들이랑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미칠듯한 스트레스를 통해 깨달은 2019년이었다.


내가 운이 안 좋았을 수 있지만

정말 내 인생에 다시는, 네버,  하숙이나 쉐어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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