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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지 May 01. 2021

요행을 바라지 않는 마음


 지름길을 걷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동시에 궁금했다. 그 길을 걸어갈 때 무슨 생각을 할까. 아득한 거리에 그저 아프게 목을 꺾어 바라볼 수밖에 없던 목적지 주변에 다다랐을 때. 그곳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의 밀도와 온도를 온몸으로 느끼고 담을 때 딱 그 순간 느낄 행복함의 정도를 알고 싶었다. 누군가 멀리서 지름길은 아무에게나 열리지 않기에 그 길을 찾을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소리친다. 내가 선택한 출발선에 서서 시-작 소리에 맞춰 앞으로 뛰었을 때부터. 뒤로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첫 발을 내딛고 나서부터는 거침없이 뛰었다. 한두 갈래로 나뉘던 길은 네 가지로 여덟 가지로 나뉘기도 한다. 도대체 어떤 길을 선택해야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 수 있을까. 선택의 기로에서 충분한 시간은 주어지지 않고 나는 자주 뒤를 돌아본다. 주변의 소리와 발에서부터 느껴지는 촉감에 익숙해질 때쯤 다시 길은 갈라지고 모양을, 색을 바꾼다. 어렴풋이 보이는 낯선 풍경과 다시 처음 섰던 출발선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만 같은 이상한 느낌. 정신을 차려보면 내 모습은 가려져 보이지 않고 지름길을 선택해 뛰는 사람들의 모습만 보인다. 닿고 싶은 그들과 점점 멀어지기도 가까워지기도 한다. 내 모습을 보고 싶다. 목적지로 향하는 것이 맞는지 여기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헤아려보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보이지 않는다. 나의 모습을 가리고 있는 것이 어떤 장애물도 아닌 내 손인 것 같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의 길이가 짧은지 긴지, 밝은지 어두운지, 계속 걷고 싶은지 그만두고 싶은지 알 수 없다. 사실 알고 싶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몰라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몰랐던 것을 알았을 때 늘 기쁘진 않았으니까. 눈물 나게 행복한 순간 바로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불안함이 더 진해져 있는 이유를, 병원 가까이에 장례식장이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알았을 때처럼. 무엇인가를 계속하게 만드는 용기는 결과를 알 수 없게 쳐진 눈부시게 까만 마음속 암막커튼 안에서 나온다. 모르기 때문에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름길을 걷고 있는 중에는 이 곳이 기다려왔던 그곳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 것이다. 투명한 유리조각 안에 담아놓았던 크고 작은 노력들이 빛을 받아 반짝이고 그 빛은 앞에 보이는 커다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기회의 문을 비춰준다. 그리고 결국 손잡이를 찾아 열게 할 것이다. 이런 눈부신 길에 발을 내딛을 수 있는 때는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늦게 올 수도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에둘러가는 길은 절대로 지름길이 될 수 없다. 걷는 순간에는 그렇게 느낀다. 시간이 한참 흘러도 그렇게 기억될 것 같다. 에움길이 알고 보니 지름길이었다- 지름길은 사실 없다- 는 말들은 거짓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분명 쉽고 빠른 길이 있음을 두 눈으로 보았기에. 두 팔 가득 투명한 유리 조각들을 아프게 끌어안고 눈부신 그 길은 왜 나에겐 열리지 않을까 절망했었기 때문에. 무너지는 중심을 붙잡고 간신히 서있었을 때가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누구보다 길고 어두운 길을 걷는 사람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깜깜한 그곳에서 깊은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희미한 빛은 점점 짙어지는 어둠 속에서만 선명하게 볼 수 있기에. 눈물과 땀방울과 희미한 빛이 묻어있는 그림은 당장 다수의 앞에서 그 가치를 뽐내지는 못하지만 깊은 눈을 가지고 있는 몇몇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가 오래 남아서 기여코 자국을 만들고 잊혀질 것이다.    


 출발선이 여기 목적지가 저기라면 나는 이렇게 일직선으로 걷는 게 아니고 구불구불 왼쪽으로 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숨이 차서 자꾸 멈추게 되지만 발 밑으로 차곡차곡 정직하게 쌓여가는 내 그림들이 있으니까- 라고 말했던 나를 위해. 눈부신 길을 찾기 위해 희미한 빛을 쫓으며 오늘도 천천히 에둘러 걸어간다. 돌고 돌아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도, 결국 지름길이 열리지 않아도 주저 없이 발을 내딛기로 한다.      


 계속 그려야 한다. 요행을 바라지 않아야 한다. 끝없는 어둠 속에서 누군가 밝히고 있는 빛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고 스스로 빛을 내서 작은 유리 조각들을 밝히며 걸어야 한다. 내 모든 마음을 쏟아내서 그렸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직 없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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