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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지 Apr 14. 2022

작업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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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

pm 11:54

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붓 터치나 색을 자유롭게 쓰면서 가장 편안한 자세와 마음으로.

드로잉을 더 많이 해야 한다.

떠오르는 걸 바로바로 습관처럼 옮겨 그리는 연습을 하자. 나만 보는 그림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3월 21일

pm 10:31

반복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그림도 운동처럼 꾸준히 해야 감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그림을 수행의 과정이라고 하나보다.


3월 22일

pm 4:28

그리다 보면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 그림을 그리지만 그림 안에 답이 있을 때가 있는 것이다.

날이 풀리고 있어서 작업에도 속도가 붙는 듯하다. 핑계겠지만 겨울에는 그림이 잘 안 된다. 싹이 트고 얼어붙었던 물이 거세게 흐를 때, 주변으로 이름 모를 들꽃이 고개를 들고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며 사이로 햇빛이 반짝거릴 때, 그늘이 감사해지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는 무엇 하나 놓치지도 무뎌지지도 않고 만나는 모든 것들을 기록하리라 다짐해본다. 아주 가볍고 반가운 마음으로.


3월 30일

pm 6:43

드로잉을 기준으로 삼고 작업을 하고 있다. 드로잉을 많이 해야 한다는 선생님들의 말이 유독 깊이 와닿는다. 그동안 그림을 꽤 그렸다. 하나 끝내면 다음 또 하나를 마치면 그다음 이런 식의 작업을 하다가 여러 개를 돌려가며 오래 작업하는 식으로 스타일을 바꿨다. 훨씬 집중도 잘 되고 뭘 그려야 하는지가 또렷이 보이는 듯하다.


드로잉을 할 때 쓰는 자유로운 선을 커다란 캔버스에 옮겨 그리기만 하면 인위적인 느낌이 든다. 연구하고 많이 긋고 또 그리며 큰 곳에서도 자유로운 선을 쓰고 싶다.


그림을 하는 이유를 자주 생각한다. 그 생각은 그림 곁에 있는 동안에 스스로 답한 이유를 절대 잊어버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끝이 난다.



4월 13일

pm 9:21

욕심을 내어 무언가를 더 얻기 위해 다가가면 내가 가지고 있던 것과는 멀어진다. 얼마 전까지 그림의 세부적인 부분만을 생각했었다. 붓 터치나 질감 같은. 형태를 흐트러뜨리거나 보다 분명히 해보며 계속해서 그 속의 내 것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좋아했던걸 잊어버리고 그림 전체를 보지 못하게 됐다. 오랜만에 일기장을 뒤적이다가 발견한 문장. 아, 나 색 쓰는 걸 좋아했었지-

눈에 보이는 것만을 꾸며내기 위해 헛되이 낭비한 시간을 돌아본다. 그것들은 찾아내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찾아지고 억지로 변화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변화할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순응한 채로 가진 모두를  위에 쏟아내자.


4월 14일

pm 9:20

걱정이 앞서면 그림에 걱정이 묻는다.

그림 표면이 매끄럽지 않아 보인다면 그 이유는 수백 수천번 위에 새로운 형태와 색을 쌓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단단해진 그림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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