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답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것은 내가 이제야 -마침내 어렴풋이- 알게 된 것들 중에 가장 반복해서 깨닫게 된 이치이다. 일어난 일들은 대게 좋지 않은 사건들일 확률이 크며 그 일이 도대체 나에게 왜 일어났는가를 알기까지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다. 몹시 궁금하고 절망스러워서 이유가 드러나기 전까지의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까지 할 수 있으나 그 순간도 결국 지나가고 시간은 흐른다. 흘러가며 잊히거나 왜곡되거나 선명해지는 기억을 두고 묵묵히 해야 하는 일을 할 뿐이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 연결지점을 지나치는 순간에 어렴풋한 이유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우연히 들어가 보게 된 전시에서, 잠에 빠져들기 직전에, 누군가와 하는 의미 없는 대화 속에서, 지겹게 들었던 노래 가사에서 등등. 이렇듯 복잡하고 알 수 없는 형태로 이어짐을 깨닫는 때는 온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달콤한 깨달음은 금세 휘발되어 사라지고 나는 그 기쁨의 순간을 또다시 잊은 채 살아간다. 이것은 내가 삶의 어느 지점에서마다 기록의 욕구를 느끼는 이유이자 연필을 들고 붓을 잡고 글을, 그림을 남기는 까닭이다.
내가 지금 여기에 살아있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감정을 오래 붙잡아두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