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의 조각>
유수지
반복되는 느린 시간 속에서의 경험들은 세상의 반대편으로 흘러가 나를 괴롭게도 즐겁게도 하였다. 의도나 계획, 대가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날들은 무용한 듯 보였지만 땅 아래로 자라나는 뿌리처럼 뻗어나가며 삶을 지탱해주고 있었다. 그 시간은 단조롭고 조용하고 특별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얕고 긴 깨달음을 주는 어떤 것들과 닮아있었으며 가난한 마음이 채워지고 다시 채워지기 위해 비워야만 하는 때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일련의 순간들은 오랫동안 찾고 있었던 조각의 모양을 하고 있기도 했다.
그림으로 담긴 나의 휴식의 조각들은 점차 희미해져 꺼내어보는 일이 잦았다. 펼쳐놓은 그림들은 겨울을 난 봄의 나무와 풀의 모양으로 일기처럼 쓰여있었으며 지극히 평범한 모두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겨울잠 같은 긴 휴식은 봄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으로, 새싹과 봉우리로부터 깨어날 것이다. 반드시 오고야 마는 때를 겸허하게 기다리는 자연과같이 재촉하거나 보채지 않은 채 변화하는 계절처럼 두어야 한다.
건강한 휴식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과 코, 귀와 입과 마음을 통해 몸의 빈틈으로 스며드는 따뜻한 어떤 것을 알아차리는 시간이다. 그것은 지나간 때를 다정히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오지 않은 시간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힘을 주기도 한다. 땅에 디딘 발의 감촉을 느껴보고, 아직 세상에 없는 음을 떠올리며, 새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걸어보고, 피부에 닿는 비와 햇살을 느끼기도 하면서. 이렇게 세상의 시간과 멀어지는 순간들은 모여 몸 안으로 흐르고, 이 쓸모없는 것 같은 지루하고 느린 날들은 견고하게 쌓여 나의 가지가 되어 자랄 것이다.
조각처럼 층층이 쌓인 터치들은 곳곳에 흔적을 남긴다. 느린 시간 동안 그림 안에서의 작은 실패와 성공은 겹겹이 쌓여 커다란 바탕이 된다. 그것들은 나무의 질감 같기도, 물이 마르면서 생기는 어떤 모양 같기도 하다. 아무것도 감추거나 지우지 않은 채로 완성된 그림들은 세상의 시간에서 벗어나 흐르는 자연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였다. 놓인 대상 사이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공간을 만들어본다. 바람은 느리고 빠르게 지나가며 나무와 풀과 사람을 휘감아 돌고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이어지게 한다.
이러한 이어짐은 이상하면서도 기뻐서 나는 자꾸만 엉뚱한 걸 그리다가도 이곳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이어진 순간을 만나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자연스러운 것들을 자연과 닮게 그려내고 싶다. 중요하지 않은 것도 오래 바라볼 줄 알고, 느린 시간을 편안하게 견디기도 하면서.
우리 조급해 말고 서두르지도 말며 각자의 속도로 걸어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