씸 훈련센터 제4브리핑실
큰일이다. 빠져나갈 구석이 없어 보였다. 그의 눈이 갑자기 커지더니 아주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얼룩이 진 파란 의자 등받이에 허리까지 지긋이 밀어 눕히더니,
며칠 정리하지 않은 것 같이 덥수룩 거칠게 삐져나온 노란 턱수염을 긁적이며 나를 노려본다.
"백업데어(Back up there), 거기 그 대목 방금 뭐라고 한 거죠? 우리가 그 어프로치를 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한건 같은데 그거 맞아요?"
지난 한 시간 그의 브리핑을 대부분 조용히 살짝 미소를 머금은 온화한 표정으로 흘려보내던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한마디 한 것에 그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분위기가 갑자기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 평가관은 내내 거의 모든 질문을 기장승급 인터뷰를 앞둔 영국에서 온 부기장 마이클에게 집중하고 있던 터었다.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이젠 나도 어쩔 수 없이 물러설 수 없는 이 토론에 뛰어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네. 물론입니다. 오피티(777의 이착륙 성능을 계산하는 엡) 켈큐레이터에 해당 접근에서 요구하는 실패접근 상승률을 입력한 뒤 계산해서 해당조건에서 불가능하다고 나오면 절대 그 접근은 하면 안 됩니다. 그건 하면 안 되는 접근이에요."
단호한 나의 답변에도 그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에야 말로 자신이 왜 평가관인지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의지만 더 불태우게 만든 것처럼 이번엔 우리 둘 사이에 놓인 이 아무 생각 없이 적어도 10년 이상 이 자리를 지켰을 테이블에 바싹 다가앉는다.
"그래요. 그 계산이 엔진아웃(한쪽엔진이 고장 난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도 우린 투엔진이잖아요. 엔진이 고장 나지 않으면 정상적인 실패접근절차 경로를 따르면 되고 운나쁘게도 한 엔진이 고장이라도 우리에겐 엔진아웃절차가 있으니 그걸 따르면 되는 거 아닌가요?"
중간중간 숨길 수 없는 키위 (뉴질랜드 인을 부르는 은어) 엑센트가 흥분을 하니 더욱 선명하게 귀에 들어온다. 이젠 그가 완전히 이 문제에 몰입하고 말았다.
"카불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고요. 지금은 운항하지 않지만 기억하겠지만 거긴 두 개의 어프로치 미니멈(접근 결심고도)이 있었잖아요? "
이 말에 여전히 부릅뜬 눈으로 뚫어져라 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도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그랬죠."
"좋아요. 그럼, 왜 우리가 두 개의 미니멈(결심고도)을 가졌던 거죠?"
이제는 나도 단호하다.
"하나는 높고 다른 하나는 낮은 때 높은 쪽은 낮은 실패접근 상승률을 낮은 것은 높은 실패접근 상승률을 가졌잖아요? 이 카불이 왜 두 개의 미니멈을 가졌는지를 이해하면 왜 우리가 착륙성능계산을 통과하지 못한 계기접근을 하면 안 되는 지를 이해할 수 있어요."
정기 시뮬레이터 평가 이튿날 우리는 한창 오늘 훈련비행을 할 네 가지 시나리오에 대해 브리핑을 하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뜻하지 않게 삼천포로 빠져서는 벌써 10여분째 간단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논쟁의 수렁 속으로 깊게 빠져들고 있었다.
다소 흥분해서 목소리가 커져있다.
"착륙성능계산을 통과했다는 의미는 항공기가 접근 중에 엔진이 페일 되어 남아있는 단한개의 엔진으로도 차트에 나와있는 퍼블리쉬드절차만 따른다면 장애물을 회피해 안전하게 상승할 수 있다는 뜻이죠. "
이때 부기장이 왜 이런 일에 목을 매고 둘이 달려드는지 모르겠다는 심드렁한 톤으로...
"이런 경우 단순하게 관제사에게 우리가 원하는 헤딩을 요구해 상승하면 접근차트에 나와있는 상승각을 무시할 수 있는 거죠."
몇 초간 두 명의 기장이 동시에 말이 없다.
밖으로 토해내진 않았지만 분명 속으론
'말 같지도 않은...'
전혀 맥을 잡지 못한 그의 말이 그대로 반향 없이 사그라질 즈음
다시 말을 이었다.
"어느 기장이 성능계산을 해보니 상승률이 만족 못하는 걸 알고도 접근을 강행했다고 치자고요. 근데 이 사람이 불안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해서 만약 실패접근을 한다면 그대로 실패접근절차를 따르는 것이 부담스러워져요. 그래서 관제사에게 고어라운드를 하면 회사의 엔진아웃절차를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도중에 엔진이 페일 될 때를 대비해서요. 이 말을 들은 관제사는 뭐라 할까요? 그러세요 그럴까요? 아니죠. 당장 당신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라고 묻겠죠. 그렇지 않나요? 실제 엔진아웃이 발생해 엔진아웃을 따르는 것과 미리 이를 대비해 아직 엔진아웃 상황이 아님에도 엔진아웃절차를 따르는 건 다른 문제죠. 엔진아웃절차라는 건 잘 아시지만 '인 하우스'로 공인된 절차가 아닌 어디까지나 회사 내의 비공인 절차예요. 이걸 근거로 나는 발간된 절차를 무시해도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나요?"
정적이 감돈다. 말을 이어나갔다.
"카불이나 홍콩의 공항입장에서 생각해 보자고요. 우리 공항에 이 접근은 주변산악지형 때문에 실패접근 시 이 정도의 상승률이 필요하다고 절차를 만들어서 발간을 해요. 만약 엔진고장 시 이 상승률이 안 나온다면 페이로드를 줄이라는 의미죠. 그런데 더 많은 승객과 화물을 실으려는 욕심에 디스페쳐가 무게를 줄이지 않고 제한 없이 실고서는 조종사에게 우린 자체에서 만든 엔진아웃절차가 있으니 그 제한치 무시하고 들어가세요라고 말하는 상황인 거죠. 회사의 엔진아웃절차를 공항당국에 허가받은 적이 있나요? 없죠. 만약 공항이나 FAA나 항공당국이 이런 사정을 인지한다면 당장 처벌하겠다고 달려들지 않을까요. 우린 이런 상황에서 실링이 낮아 결심고도가 낮은 그래서 더 높은 상승률을 요구하는 날씨에서는 페이로드를 제한하죠. 디스페쳐가 지키고 있는 겁니다."
여기까지 잘 따라왔는지 검열관이 이젠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남미 콜롬비아의 보고타 공항의 경우에 엔진아웃 미스드어프로치 절차가 따로 발간되어 있는 걸 아실 겁니다. 날씨가 나쁜 날 낮은 쪽 미니멈(높은 실패접근 상승률을 요구하는)을 써야 해서 페이로드가 제한되는 항공사들이 입을 피해를 줄여주기 위해 공항당국에서 공식적으로 엔진아웃절차를 허가해 준 것이죠. 이러면 가능해요. 이런 경우가 아닌데도 그냥 다닌다면 우린 발간된 절차를 무시하는 겁니다. 성능을 초과함에도 무게를 제한하지 않고 운항하는 건 항공법 위반인 거죠. 우린 그렇게 운항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