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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오리 Sep 24. 2024

마당개와 들개의 산책


앵두는 최근 묶였다.


결국 그를 묶어둘 수밖에 없었다. 동네 주민은 시청에 신고할 수밖에 없다고 난처함을 표했다. 숯댕이를 만나러 온 앵두의 목에 고리를 걸었다. 앵두를 달래고, 의구심을 표하는 그를 재촉하며 강제로 데리고 가야 했다.


아는 분의 도움으로 앵두의 거처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그 앞에 묶였다. 앵두의 자유는 끝났다.



그를 묶어두고 집에 돌아갈 때 앵두는 동네가 떠나가라 화를 내고 울었다. 자신의 자유를 뺏긴 것에 대한 분노, 우리에 대한 원망, 낯선 곳에 남겨진 것에 대한 공포. 앵두는 투쟁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앵두가 인간들에 의해 잡혀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다시 풀어줘야 한다고, 우리는 고민하고 후회했다.




앵두의 불안을 덜기 위해 매일 산책을 하기로 했다. 왕복 다섯 시간의 거리는 나의 체력과 스케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정신이 고통받는 것보단 나았다.


앵두는 천천히 걷는 개였다.

숯댕이가 스프린트라면, 앵두는 조깅이다.


앵두가 숯댕이 앞을 지나자, 숯댕이는 날뛰었다. 앵두의 산책을 마치고 곧바로 숯댕이 산책을 해야 했다. 이렇게 가다간 나 정말 건강해지겠다.



숯댕은 그날 밤, 온 무덤가를 뛰어다녔다. 해가 다 져서 손전등에 의지한 채 끌려다녔다. 숯댕이가 원 없이 달리게 두고 싶었다. 그건 그의 권리다.





앵두가 묶인 지 넷째 날.


처음으로 숯댕이와 앵두가 함께 산책을 했다. 늘 묶여 사는 ‘마당개’와 ‘들개’로 살다가 이제 ‘마당개’가 된 두 개. 둘 중 하나는 늘 결박, 감금 상태였다. 숯댕이가 갇혀 있거나, 앵두가 갇혀 있거나.


오늘은 내가 숯댕이를, 동료가 앵두를 맡아 함께 산책할 수 있었다. 혹시나 마찰이 있을까 우려했지만, 감금 상태를 벗어난 둘은 들떴고, 설레보였다.



숯댕이는 늘 그렇듯 산만하고 에너지가 넘쳤고, 앵두는 숯댕이를 따라 함께 산만해졌다. 그 모습이 좋았다.



앵두에게 보호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이제 사라졌다. 앵두는 버려졌을 것이다. 인간에게 버려졌고, 버려진 후에는 다른 인간들에게 잡혀 살처분될 뻔했고, 또 다른 인간의 손에 끌려 감금된 삶을 살고 있다.



앵두와 숯댕이. 들개와 마당개가 이 세상을 제약 없이 뛰어다닐 수 있다면.


누구도 그들의 목을 줄로 감지 않고, 그들의 속도를 인간에게 강제로 맞춰 걷지 않고, 나와 동료가 그들의 유일한 출구가 되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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