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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의 쓸모 Oct 29. 2022

서평 _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

생각하지 않는 삶에 도사리는 악

1962년 5월 31일. 한 남자가 당당히 교수대에 섰다. 그에 대한 재판 절차가 정당한지에 대한 논란은 있을지 모르지만. 누구도 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덤덤히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아돌프 아이히만의 이야기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은, 한 사람이 어떻게 양심의 가책도 없이 반인륜적 행위에 가담할 수 있는지를 아이히만을 통해 보여준다. tvN에서 방영한 <책을 읽어드립니다>에서 이 책이 소개된 이후 이 책은 더 유명해졌다. 설민석 강사보다 더 잘 설명할 자신이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몇 가지 생각을 요약해 보려 한다.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비록 자신의 패소를 더 나아가 죽음까지도 예상했다 하더라도 그는 떳떳했다. 국가의 명령에 충성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그뿐이었다. 사이코패스도 아니었다. 반유대주의자로 아니었다. 국가의 명령. 그의 양심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데는 그 하나만으로 족했다.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speak)은 그의 생각하는데 무능력함(inability to think),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the words)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the presence of others)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reality as such)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106p


그렇다 적어도 그는 거짓말쟁이는 아니었다. 단지 그는 “반인륜 범죄” 앞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생명에 대해서, 자신이 한 일의 결과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 그 사람(히틀러)은 노력을 통해 독일 군대의 하사에서 … 총통의 자리에까지 도달했습니다. “... ”그의 성공만으로도 제게는 이 사람을 복종해야만 할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 양심의 소리에 자신의 귀를 가까이할 필요가 그에게는 없었다. 그것은 그가 양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의 양심이 "자기가 존경할 만한 목소리와 함께" 자기 주변에 있는 사회의 존경할 만한 목소리와 더불어 말했기 때문이다. 198p



아이히만이 국가에 충성했던 것, 법과 명령에 충실했던 것은 애국자였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히틀러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와 동경이 맹목적인 충성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아이히만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저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기 스스로 법과 국가의 명령에 충성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명령에 의한 결과에 대해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아이히만은 단 한 사람의 유대인도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인 적은 없다. 다만 죽음으로 인도했을 뿐)


이런 관점으로 봤을 때, 히틀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충성이 그의 양심을 무디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즉, 이러한 맹목성과 추앙이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예루살렘 아이히만의 마지막 문장)을 만들어 낸 것 같다.




아이히만의 경우, 그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반인륜 범죄에 동조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많은 견해와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도 누군가의 지위가 내 책임감이나 양심을 무디게 만드는 경우가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까라면 까”라는 조직문화 속에서 상급자의 말 앞에서,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업무의 책임과 최소한의 양심을 버렸던 적은 없는가. 사실 나의 행동이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의 큰 사건은 흔하지 않다. 특히 업무에 관해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사소한 영역까지 ‘악의 평범성’의 개념을 적용해 본다면, 나 또한 상급자의 말에 <나 스스로의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선과 악의 문제로 접근할 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 스스로 직무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은 버렸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논리가 빈약할 수도 있으나, 악의 평범성은 반인륜적 범죄자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사고를 멈추는 순간, 나 역시 양심 가책 없이 악의 편에 설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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