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곧 나 자신이다
말을 늘려서 발음하면 ‘마알’이 된다. 마알은 마음의 알갱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말이 마음의 알갱이란 말이다. 말은 곧 자기 생각과 마음이다. 157p
마알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니 국어사전에 나오진 않았지만, 마음의 알갱이라는 표현은 참 좋은 표현인 것 같다. 말은 마음의 알갱이, 다시 말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라는 말은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나는 어떤 생각과 마음을 품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얼마 전 읽었던 ‘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에서도 글은 곧 글쓴이 그 자신이라는 말을 했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 역시 ‘글은 곧 작가 그 자체’라는 말에 끌려서였다. 말과 글, 이 두 가지 표현 방식을 통해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는 동시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하는 책이었다..
말은 내가 하는 것이니 내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말은 하지 않을 때까지만 내 것이다.
내뱉은 순간, 그 말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그때부터 말의 소유권은 들은 사람에게 옮아간다.
이 엄연한 사실만 잘 받아들여도 말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 163p
흔히 ‘내 입으로 내가 말하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는 식의 말을 많이 한다. 그렇다. 어떤 생각을 하건 그것은 자유다. 생각 그 자체가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는다. 말 역시도 자기 입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문제가 될 게 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말은 생각과 달리 누군가는 듣는다. 하지만 이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누군가 듣는 말은 내가 내뱉는 순간부터 나의 말이 아닌 듣는 사람의 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말 때문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말 때문에 싸움이 나기도 한다. 말 때문에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말 때문에 마음을 사기도 한다. 말 때문에 화를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말 때문에 빚을 갚기도 한다.
흔히 하는 말로 ‘생각은 자유’다. 그러나 그것이 말로 나오는 순간 이미 나의 것이 아니다.
말을 듣는 엿장수 마음대로다. … 어떤 말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들었느냐가 중요하다. - 245p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다. 말은 내가 내뱉는 순간부터 더 이상 나의 소관이 아니다.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듣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렸다. 내 입으로 말을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배려는 말하기의 출발점이다. 배려하는 마음이 소통의 시작이다. 우선 배려 있는 말은 세심하다. - 34p
내가 어떤 말을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어떻게 들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은, 어떤 말을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것이 곧 배려이다. 대화의 본질은 소통이다. 그렇기에 상대방이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듯하다.
물론 친한 친구와 대화하면서 존댓말을 쓰면서 깍듯이 대화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대방이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한다는 것은 어렵게 생각하기 보다 오히려 상대방에 따라 지켜야 할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이것이 배려이지 않을까.
무엇보다 말속에 듣는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듣는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 - 21p
앞에서 말했든 대화의 본질은 소통이다. 그리고 소통은 대화하는 사람과 더 깊은 관계를 맺게 해준다. 말을 주고받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 이것이 소통이다. 그런데 대화를 하는 (두) 사람 중 한 명이라도 마음이 닫혀있으면 대화가 정말 힘들어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한 적 있다. 상대방의 마음이 닫혀있든, 나의 마음이 닫혀있든, 대화 상대방의 마음이 닫혀 있으면 대화가 정말 힘들다. 말은 주고받지만 서로의 마음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듣는 위 문구의 말이 무슨 말인지 정말 잘 알 것 같다.
사실 모든 대화에서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고, 비호감인 사람도 있다.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나는 I의 성향을 가져서 사람들과의 교제와 대화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일이다. 그래서 때로는 형식적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도 있고, 대화에 집중하는 척만 했던 적(특히 사람들이 많을 때는..)도 많았다.
어쩌면 나의 이런 태도들이 사람들과의 관계에 스스로 선을 긋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들에 대해 마음을 여는 것과 진심을 다하는 것이 소통을 위한, 더 깊은 인간관계를 위한 배려의 시작이 아닐까.
즉 대화를 잘하려면 경청, 공감, 질문, 이 세 가지를 잘해야 한다는 뜻이다. 듣고 공감해 주고 묻는 것이다. - 122p
대화는 곧 소통이다.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소통 말이다. 위의 두 구절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라면, 경청과 공감, 질문은 소통을 위한 방법일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내용이고,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대화의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내가 사람들과 대화할 때 가지는 마음과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말도 자라야 한다. 어른은 어른답게 말해야 한다.
말하기에 자신이 없다면, 존중받기를 바란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 생각하다 보니 내가 어떤 마음, 어떤 태도로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변화가 있다면,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어떤 말을 할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점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직 이런 나의 모습이 습관이 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진심으로, 조금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싶다.
말은 곧 나 자신이라는 말은 지금까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점검하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지향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척’하는 사람이 아닌 더 성숙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진정성 있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