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 김남주 옮김
민음사 2021년
파리의 마흔 살 인테리어 디자이너 폴은 오랫동안 교제해 온 연인 로제와 애매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로제는 그녀를 가장 사랑하지만 또 다른 여자들과도 가볍게 만남을 즐기고 있어서, 폴은 안정감과 불안을 동시에 느낀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젊고 순수한 20대 남성 시몽을 만나게 된다. 시몽은 진지하고 뜨겁게 폴을 사랑하며, 용기 내어 그녀에게 "브람스를 좋아하냐"라고 묻는 데서 두 사람의 교류가 시작된다. 폴은 나이 차이와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그의 순수한 애정에 흔들리고, 로제와의 권태로운 관계와 달리 새로운 활력을 느낀다.
하지만 결국 폴은 안정된 현실과 익숙한 관계를 버리지 못하고, 시몽 대신 로제를 다시 선택한다. 젊은 사랑의 열정 대신 익숙하지만 불완전한 안정을 택한 그녀의 선택은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며 아이러니한 인생을 드러낸다.
(여기까지 줄거리)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며 몇 챕터까지는 폴과 로제의 성별을 착각, 아니 계속 확인했다.
'폴'은 남자이름, '로제'는 여자이름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이름과 내용이 잘 매치되지 않아 둘이 '동성연애'인가 하는 의심도 잠깐 했었다는...
또한, 책 제목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 말줄임표로 끝나는 것이 독특했다. 다른 번역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내가 본 2021년판 민음사(김남주 옮김)에는 그렇게 되어 있었다. 찾아보니 실제로 원작이 「Aimez-vous Brahms...」)로 ?가 아니라...로 끝나는 제목이라고 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당당하게 묻는 게 아니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아직은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관계에서 용기 내어 상대에게 다가가는 뉘앙스가 잘 표현된 것 같다.
또 민음사 책의 표지도 눈길을 끌었는데 '마르크 샤갈'의 「생일」(L’Anniversaire, 1915)이란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샤갈이 연인 벨라를 위해 그린 그림으로, 한 남자가 몸을 비틀어 여인을 입 맞추려는 장면인데, 두 인물은 현실적 중력과 상관없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사랑의 황홀감과 비현실성을 표현한다고 한다. 즉, 현실보다 감정이 우위에 있는, 사랑에 빠졌을 때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생일' 속 두 사람처럼, 소설 속 인물들도 서로에게 끌리지만 이게 현실에서 가능할까라는 불확실성과 불안은 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폴의 입장에서. 그래서 키스를 하기 위해 몸을 비틀어 가며 애를 쓰며 그 순간의 황홀감에 빠져있는 남자와 폴에게 사랑을 표현할수록 그 마음이 더 커져가는 시몽, 땅에 발을 딛고 눈을 뜨고 입맞춤을 하는 여인과 시몽과 만나면서도 로제와의 관계를 생각하고 좀 더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폴의 모습이 잘 매치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림의 제목이 '생일'인 것, 아니 '생일'이라는 그림을 표지로 쓴 것도 참 적절하다. 생일을 같이 축하한다는 것은 안정적이고 뭔가 서로 약속된 관계라는 뜻인데, 폴과 로제는 마치 생일을 기념하듯 매년 2월이면 함께 일주일 동안 산에서 보내곤 했었다. 그런데 시몽과 관계를 갖게 된 이후 폴은 처음으로 로제와 같이 떠나기를 거절하고 그 시간에 시몽과 멋진 곳에서 데이트를 하게 된다. 이 그림의 장면이 그 데이트 당시의 폴과 시몽의 모습을 잘 나타내는 것 같다. 로제를 떠나 왔지만 한편으론 로제를 생각하고 있는 폴, 폴의 마음이 확실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걸 외면하고 이 순간의 황홀함을 만끽하고 싶은 시몽.
그런데, 이 일을 계기로 로제는 폴에 대해 더 간절한 마음이 생기고, 폴도 로제의 그런 마음을 확인하고 그동안 시몽과의 불같은 열정이 계속되긴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시몽을 떠나 로제에게로 돌아가는데.
(이하 스포)
소설의 마지막 엔딩은 옮긴이의 표현처럼 '머릿속에 빨간불이 켜지는 각성의 엔딩'이었다.
저녁 8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그녀는 로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세계문학전집'에 실린 소설들 중 가장 참신하면서도 모던한 전개와 결론이 아니었나 싶다.
마치 기욤 뮈소의 책을 읽은 듯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