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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Aug 28. 2022

800만 가지 죽는 방법 vs. 살아야 할 이유

800만 가지 죽는 방법(1982) 로렌스 블록

[세계 추리문학전집] 33/50


범죄의 최첨단 도시 뉴욕. 오후 3시 30분. 바에서 창녀와 탐정이 만난다. 간단한 도입부 설정만으로도 눈길을 끌기 충분하다. 나아가 '일을 그만두고 포주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는' 창녀와 '무면허 알코올 중독자 전직 경찰' 탐정이라면? 더욱 흥미롭다. 손쉽게 풀리는 것 같았던 의뢰. 하지만 어김없이 죽음이 찾아온다. 전형적 하드보일드 형식을 지닌 '사건'. 반면 범죄소설의 익숙하고 일반적인 흐름으로 진행되지 않는 '이야기'. 더욱 평범함과 거리가 멀고 입체적이며 복잡미묘한 '캐릭터'. 『800만 가지 죽는 방법』을 끌고 가는 세 요소다.



모든 등장인물은 내면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각양각색이다. 먼저 주인공 매튜 스커더. 과거 근무 중 우연히 소녀를 쏘게 된다. 그 후 경찰을 그만두고 아내와도 이혼한다. 대신 알코올 의존으로 고생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황폐한 마음을 부여잡고 버티듯 살아가는 탐정은 드물다. 포주 '챈스'는 더욱 특이하다. 떠나고 싶다는 킴의 의향을 매튜에게 전해 들은 뒤 순순히 허락한다. 수입을 모두 가져가기는 하지만 자신이 데리고 있는 여자들을 존중한다. 스커더를 대하는 태도도 신사적이다. 스커더가 조사를 위해 한 명씩 만난 킴의 동료들 역시 각각 개성이 강하다.


문제는 새 삶을 꿈꾸던 킴이 잔혹하게 살해된 것이다. 사실 겉과 속이 다른 챈스가 범인일까. 챈스는 거꾸로 스커더에게 범인을 밝혀 달라고 의뢰한다. 스쿼더는 두 가지 싸움을 시작한다. 하나는 범인 잡기, 또 하나는 금주를 이어가기다. 그가 금주자 모임에 참석하는 장면과 음주 욕구 때문에 괴로워하는 장면이 계속 반복된다. 금주자 모임에서 발언 차례가 돌아올 때마다 오늘은 그냥 듣기만 할게요, 라고 넘어가는 스쿼더. 언젠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희생자가 늘고 있는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여러 약점에도 스쿼더는 탐정으로 살아남았다. 그 역시 '800만 가지 방법' 중 하나로 죽게 될 뉴욕 시민으로 소외된 삶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늘 죽음과 맞닿아 살아가고 있지만 단념하지는 않는다. 술을 끊으려 노력한다. 십일조도 낸다. 매일 기이한 부고들이 신문에 실리는 뉴욕에서 포기하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다. 이 고군분투는 숭고함마저 느끼게 한다. 지력도 전투력도 그리 강하지 않은 스쿼더. 범인과의 마지막 격돌에서는 날렵함을 빛낸다. 10초도 안 될 간결하고 강렬한 싸움 이후 스쿼더는 구원을 붙잡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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