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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YOON Jul 02. 2021

옳지 않지만 말할 수 없을 때

변화는 마음속의 뜨거운 점으로부터 시작된다.

부당한 일이 있으면 침묵해야 하는가, 아니면 저항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을 얼마 전 이 책과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얻었다. 저자인 로렌 슬레이터는 총 10가지의 심리학 실험을 소개한다.

 

책의 제목인 스키너의 심리상자 실험을 비롯하여, 스텐리 밀그램의 충격기계 실험, 침묵한 38명의 목격자 연구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세 가지 실험 모두 구조에 따른 사람들의 행동변화를 연구하고자 하였다. 그중 스탠리 밀그램의 충격기계 실험은 권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연구하였기에 가장 인상 깊었다.


당신은 어떤 방으로 안내된다. 유리 너머에는 어떤 사람이 전기의자에 묶여 있다. 당신 앞에는 15 볼트부터 450 볼트까지 써져 있는 버튼이 있다. 이제 묶여 있는 사람은 당신이 불러주는 단어를 읽는다. 하지만 틀릴 때마다 옆에 있는 실험자가 충격을 주라고 명령한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부당한 지시에 응하였을까? 무려 65%나 되었다. 실험자의 명령과 권위에 굴복한 것이다. 다행히도 전기의자에 묶여 있던 사람은 연기자였으며 사전에 계획된 연기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실험 결과는 당대에 큰 충격을 주었다. 2차 세계대전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 1961년에 실험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 만으로는 홀로코스트를 설명할 수 없었지만 사람이 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큰 발견이었다.


그렇다면 사람은 과연 자기 자신의 주관에 따라 행동하는가, 아니면 주변 환경에 더 영향을 받는가?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한 대로 행동한다고 믿지만 현실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주관과 양심에 따라 행동한 사람은 소수에 그쳤던 것이다.


하지만 실험에 저항한 사람들을 특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어떤 사람은 전기충격을 주는 것을 거부하였지만 자신의 심장병을 걱정해서였다. 이 사람은 모순되게도 밀그램의 실험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전기충격을 주는 것에 순응하였지만 실험 이후 더 이상 권위에 굴복하지 않았다. 솔직한 자신의 성적 지향을 드러내고 아이들을 위한 의료봉사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이처럼 밀그램의 실험은 사람이 권위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기에 평소의 나의 생각과도 연결고리가 생겼다.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하고 사회학에도 관심을 가지며 구조와 행위에 대해 끝없이 고민했다.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하며 배운 이론 중 노엘레 노이만의 침묵의 나선 이론은 이렇게 설명한다. A라는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이 소수, B라는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이 다수라고 가정해보자. A 지지자가 주장을 강하게 이어 나갈수록 B 지지자들은 침묵하게 된다. 결국 겉보기에는 실제와 다른, A라는 의견이 우세한 결과가 도출된다.


사회학에서도 구조가 먼저인가, 행위가 먼저인가 라는 주제로 수없이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앤서니 기든스의 행위와 구조화 이론에 관심이 있었다. 행위가 구조를 만들며 동시에 그 구조가 행위에 영향을 끼친 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사람을 결국 환경과 구조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내가 선택했다고 믿는 것이 어쩌면 주변 사람들이 만든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늘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작고 뜨거운 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점은 분명히 알려준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잘못된 것이라고 얘기하고 저항해야 한다고. 과거 우리의 독립운동도, 흑인 인권운동도 모두 처음에는 작은 점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내가 행동함으로써, 그것이 옳지 않다고 소리치고 목소리를 냄으로써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군대 내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옳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목소리를 내고 마음의 점을 더욱 뜨겁게 만들어야 한다. 내야 할 목소리를 제때 내지 않고 망설이는 순간, 그 대가는 참혹하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 혼자 참으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부당한 일을 참았다. 하지만 고통은 나에게서 끝나지 않았다. 나의 침묵은 누군가의 고통이 시작되는 행위였다. 후임과 동기들 모두가 고통을 받았다. 결국 부당한 일이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군대라는 보수적인 조직 내에서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면 내부고발자로 낙인찍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반신반의하며 피해자 진술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쳤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나니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또한 주변의 간부님들과 동기들도 나를 많이 도와주며 격려해 주었기에  잘못되고 부당한 사실들을 모두 밝힐 수 있었다.


비록 450볼트의 전기충격 버튼을 누르지 않았지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앞으로는 누군가의 고통이나 부당한 일에 침묵하지 않기로. 잠깐은 시끄러워지고 혼란해지겠지만 결국엔 모두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강원도 춘천, 세종호텔에서

이 글은 제가 군 복무 당시에 썼던 글을 수정하여 옮겨 쓴 것입니다. 당시에 썼던 글은 강원도민일보와 육군 지상작전사령부에서 개최한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했습니다. 어쩌면 그 자리에 섰던 경험으로 여기 브런치까지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에 진심을 녹이고, 고뇌한 흔적들을 담은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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