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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Nov 16. 2022

불안을 딛고 나아가야 할 때

수능 D-1! 서울대생이 알려주는 마음을 다잡는 방법 

  수능 시험이 있는 11월은 더 추운 느낌이 든다. 무심코 들이마신 큰 숨에 콧속마저 시큰해지는, 마지못해 11월의 밤이다. 무려 10년 전인데도 11월만 되면 수험생 시절이 떠오른다. 고3이 되자마자 아득히 불안했다. 방금 전까지는 차라리 얼른 수능을 치르고 개운해지고 싶었는데, 또 모르는 문제를 마주하면 시간이 더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그 해. 여전히 누군가 온 마음을 붙들고 시험을 치른다 생각하면 덩달아 가슴이 쿵쿵거린다.


  그래서일까, 몸이나 마음이 너무 힘들 때면 시험 보는 꿈을 꾼다. 불행히도 꿈속의 나는 언제나 덜렁이다. 꼭 중요한 것을 두고 헐레벌떡 시험장으로 달려가는 장면부터 꿈이 시작된다. 컴퓨터 사인펜이나 아날로그시계, 손에 익었던 볼펜 같은 것을 두고 겨우 입실하는 장면이 아주 길게 재생된다.

  생애 처음으로 느꼈던 가장 큰 고독과 불안함이 이맘때쯤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 아빠도, 선생님도 하다못해 일타 강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오직 시험지와 나만의 시간. 그 홀로됨이 너무도 고독해 두렵고 조마조마했다.


나는 미래를 위한 준비가 충분히 됐을까?

  11월이 되면 다시 수능을 치르듯 미래를 그려본다. 나는 충분한가, 내가 원하는 바에 다가가고 있나? 점수를 매겨보기도 한다. 불안이 찾아올 때마다 온몸에 힘을 주고 혼자 견디려고 애쓴다. 하지만 누군가 자그마한 틈이라도 내어준다면, 어쩔 도리 없이 풀썩 기대어 용기를 얻고 싶어진다.


  천재와 잠시 뇌를 바꾸고 싶다고 생각해도, 나는 여전히 나일뿐이고 그런 나를 나만큼은 너무도 잘 알아서 더욱 불안해진다. 애꿎은 후회가 가득하다가도, 아냐!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하는 단단한 마음이 생긴다. 아무렴, 갈팡질팡이 당연한 날들이었다.



  미래가 몹시 아득하게 느껴질 때 옷을 단단히 껴입고 밤거리로 나간다. 차가운 손을 주머니에 쏙 넣고 걷다 보면 수많은 차들을 만난다. 그중에 큰 관광버스를 마주칠 때 생생히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고등학교에 가면서 목동에 있는 큰 학원을 다녔다. 처음 가보는 종합학원은 무척 외롭고 낯설었다. 모르는 애들은 잔뜩, 나보다 잘하는 애들도 잔뜩이었다. 어수선하고 불안한 내게 상담 실장은 말했다.

  "집이 그쪽이면 학생은 1호차 타고 오면 돼요."

  그가 쥐여준 학원 버스 시간표를 들고 약속 시간보다 10분이나 먼저 가서 기다렸다. 아무런 표지판도 없는데, 아저씨가 나를 발견할까? 나를 태워주실까? 공원 앞 횡단보도에서 학원 버스를 기다리며 불안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 관광버스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열린 문을 흘끗거리자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는 말했다.

  "오늘 처음 온 학생이지요? 어서 와요, 반가워요"

  낯선 경계심을 안고 버스 계단을 올랐다. 차창 앞과 맨 앞자리에 주르륵 놓인 작은 인형들이 나를 반겼다. 한 달이나 지났는데도 버스 안을 가득 채운 크리스마스 리스들도 함께. 제대로 환영받는 기분이었다.


  그 후로 새로운 계절이 온다는 것을 학원 버스의 인테리어로 알게 되었다. 여름이 되면 인형들은 작은 과일을 들고 있었고, 진한 녹색의 화분들도 함께 놓였다. 머리 위 짐칸에는 크리스마스 리스 대신 아이비나 틸란드시아 같은 식물들이 걸렸다. 가을에는 직접 주우셨다는 깨끗한 단풍잎들이, 겨울에는 하얀 눈사람 인형이나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놓였다.


  계절마다 변하는 버스 장식들과 함께, 나와 친구들은 1호차 버스 안에서 추억을 쌓아갔다. 학원 가는 길 미처 다 외우지 못한 영어 단어를 열심히 외우던 날도, 낭만적인 라디오 음악 소리에 각자의 꿈을 말하던 날도 있었다. 언젠가 라디오를 진행해 보고 싶어. 내가 그렇게 말하면, 친구는 나는 영화평론가가 될 거야.라고 말했다. 그럼 내가 널 라디오 프로에 부를게. 그런 꿈같이 반짝이는 대화를 주고받았던 날들.


  티셔츠 자락을 들썩이면서도 자습하러 가던 여름 방학, 엄마랑 진탕 싸우고 펑펑 울던 날, 학원을 더 다니라는 조언을 받았는데- 그럴 수 없는 가정 상황을 너무도 잘 아는 나머지 속절없이 눈물이 났던 날에도. 우리는 학원 버스에 있었다. 안전하고 다정하고 씩씩한 버스 안에.



  꿈같은 겨울날도 버스 안에서 맞았다. 아마도 1학년 겨울, 12월에 눈이 아주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차가 몹시 밀려 3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를, 2시간이 넘도록 지나지 못하고 있었다. 눈이다! 하고 신나던 마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꽉 막혀버린 도로에 지루해 죽겠다며 한숨을 풀풀 쉬었다. 그런 우리를 보고, 1호차 아저씨는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 캐럴을 틀었다. 그리고 산타클로스처럼 커다란 봉지를 들고 우리들에게 빵 봉지를 나누어주셨다. 머리 위로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달랑거리고, 빨간빛과 초록빛의 알전구들이 반짝이던 버스 안. 각자의 빵을 조금씩 나눠 먹던 소란한 밤. 꼭 루돌프 버스를 탄 것 같다고 웃던 우리들이 가끔 생각난다.


  그때를 기억하며 밤거리를 걷는다. 미래가 아득하게 느껴질 때마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이 들 때마다. 학원 버스를 보게 되면, 1호차 아저씨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 차를 타고 오가며 성실에 열심을 더했던 미더운 날들이 있었다는 걸 아니까. 누구의 응원이 아니라, 오직 내가 쌓아온 날들이 내게 주는 용기를 떠올린다. 잘 될 거란 믿음을 안고 찬 바람에 불안을 실어 보낸다.


  얼마 전 밤 산책길, 모티베이션 앱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산타클로스를 약 8년간 믿을 수 있었다면, 내가 나를 믿어줄 수도 있습니다.      해낼 수 있어요.

  그 문장을 보자마자 1호차 아저씨가 떠올랐다. 노력을 쌓아가던 고등학교 시절의 우리들도 함께 생각났다. 머리맡에 놓인 작은 선물 하나만으로 산타클로스를 오래 믿었던 것처럼. 오랜 시간 묵묵히 노력했던, 나만이 기억하는 작은 노력들을 믿어보기로 한다. 안되겠어, 못하겠어. 너무 힘들어, 하던 날들을 딛고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스스로 쌓아온 시간과 노력을 믿고, 또 새로운 시절로 나아갈 것이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수능 시험일을 앞두고 브런치에도 글을 올려보아요. 이 글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선명한 하루> 채널에 게시된 글입니다 :) 많은 분들께서 읽어주시길 바라며 브런치에도 올립니다. 꼭 수능이 아니더라도, 코가 시큰해지는 가을과 겨울이 되면 마음마저 불안해지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믿고, 오직 나의 지난 날들을 믿으며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저부터도요! :) )



희우 작가의에세이를 더 읽고 싶다면:

https://contents.premium.naver.com/sunharoo/hee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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