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책을 쓰고 싶었다. 호랑이의 가죽이나 사람의 이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나의 말을 대나무숲에 쏟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람결을 따라 누군가의 눈과 귀에 닿아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1주일, 늦어지면 2주일에 한 편씩이라면 1년에 족히 서른 편의 글을 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걸 뚝딱 묶으면 책 한 권이 나오리라 짐작했다. 결론적으로 거창한 계획은 완전히 실패했다. 1주일에 한 편의 글을 정해진 시각에 성실하게 업로드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어중간하게 살고 있다. 창대한 계획, 바쁘고 피곤한 일상, 그리하여 미미한 결과. 조금 더 올라가면 뭐가 될 수 있으려나. 거기까지 올라가려니 시간도 열정도 용기도 다 모자라다. 원래는 다 넘쳐났을지도 모르겠는데 이제는 나도 모르게 그것들이 슬슬 빠져나가고 있다. 만으로 (이제 만 나이만 세상에 존재하니 이렇게 쓰는 것도 옛날 방식이겠다.) 마흔이 넘었고 직장, 집, 거리 어디에서든 어중간하고 대체가능한, 흔한 존재가 되어가는 중이다.
책이라던가, 작가라던가 그런 환하고 광나는 꿈들은 내려놓고 그저 내 일상과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쓰려한다. 나와 식물, 과거나 현재 혹은 미래. 그 어딘가에 어중간하게 걸쳐있으며 얽혀있어 이도 저도 아닐 수 있는 이야기를. 때로는 글로 때로는 미완의 그림으로, 그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