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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야 Feb 04. 2024

융릉과 건릉 사이

융건릉의 소나무숲, 참나무숲

출처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우연찮게 화성에 갔다가 융건릉에 들렀다. 사람들이 주차장에 줄지어 차를 대고 표를 끊어 왕의 무덤을 구경하고 있다. 큰 키 나무들을 지나 하늘이 뻥 뚫린 묏자리를 보니 이곳이 명당이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왠지 가까이하기 께름칙하지만 왕의 무덤만은 예외인가 보다. 무덤이 있는 너른 언덕을 보고 있으니 내 마음도 환해지는구나.  


융릉은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다. 영조가 정쟁 속에서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게 했다는 이야기는 지금 들어도 너무 충격이고 또 슬프다. 후에 세자의 슬픔을 애도하며 영조는 사도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세자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다는 뒷 이야기도 애달프기는 마찬가지이다. 사도세자의 아들, 영조의 손자인 정조의 무덤은 융릉 옆 쪽에 나란히 있다. 그게 건릉이다. 정조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영조의 총애를 듬뿍 받았다고 한다. 자신이 왕이 된 후에는 억울하게 죽어간 아비의 묘를 터가 좋은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묘가 아니라 원으로 승격시켰다.


 먼저 만들어진 것이 융릉일 터. 융릉까지 가는 길이 아주 환하다. 세월을 짐작할 수 있는 쭉쭉 뻗은 소나무 숲이 곱게 가꾸어져 있어 아름답고 한 겨울에도 청량함이 느껴진다. 빽빽하지만 길게 쭉쭉 뻗어 가슴이 뻥 뚫리는 소나무 숲을 지나면 언덕배기 위해 크게 치장해 올린 융릉과 무덤을 지키는 사당이 보인다. 살아생전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나 효심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했을 정조의 마음은 어땠을까. 융릉을 보니 정조의 마음이 떠올라 괜히 안타까워진다. 


옆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제법 걸으면 정조의 무덤인 건릉이 나온다. 건릉을 보고 다시 출구로 걸어가는데 참나무 숲이 한창이다. 융릉 앞은 소나무 숲인데 왜 건릉 앞은 참나무 숲일까. 처음에 아버지의 묘소를 멋지게 가꾸려고 소나무 숲을 조성했을 것이다. 소나무 숲은 시간이 많이 흐르면 참나무 숲으로 바뀌기 마련이다. 참나무는 자라는 속도가 소나무 보다 빨라 어느 시점이 되면 소나무의 키를 금세 넘어선다.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참나무는 양지에서는 더 잘 자란다. 하지만 양지에서 잘 크는 소나무는 음지에서는 힘을 잘 못쓴다. 소나무 숲은 그렇게 점차로 참나무 숲으로 변화하고 이런 현상을 숲의 천이라 부른다. 소나무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으뜸으로 치던 나무였으므로 융릉 주변을 소나무 숲으로 가꾼 것은 당연한 처사였을 것이다. 융릉이 만들어지고도 세월이 한참 흘러 정조가 죽었을 때, 소나무 숲 주변으로 자연스레 참나무 숲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 근처 어딘가를 정조의 무덤으로 쓴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숲 둘레 산책길은 산불 조심 기간이라 하여 막아놓았다. 산불이 나면 참나무가 더 위험할까, 소나무가 더 위험할까. 소나무가 훨씬 위험하다. 소나무에는 송진 성분이 있어 활활 잘 타 불이 잘 번지며 솔잎은 불씨가 되어 몇 킬로를 날아갈 수 있다고 한다. 참나무는 바짝 마르지 않고서야 소나무 보다 느리게 탄다. 강원도 쪽에 산불이 크게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는 소나무 숲이 많기 때문이다. 산불이 크게 번지는 것을 막으려면 참나무 숲이 더 많아야 한다. 


산불이 나서 혹여 융릉의 소나무 숲이 빠른 속도로 타기 시작한다면 건릉의 참나무들이 애간장을 태우며 안타까워할 것 같다. 정조가 사도세자를 떠올리며 그리했던 것처럼. 정조는 살아서도, 무덤에서도 늘 아비를 걱정하고 있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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