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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Jun 26. 2024

아빠의 담당의사는 보호자를 호출했고,

엄마는 나를 호출했다.

모처럼 저녁 약속이 있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 엄마에게 문자 한 통이 와 있다.

-시간 될 때 전화 한 통해


모임이 끝나면 늦은 시간이 될 텐데, 언제 전화를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즈음, 급한 엄마가 못 기다리고 전화를 걸어왔다.

-아빠 입원해 있는데, 보호자 오라네. 니가 좀 가야겠다. 8시 반까지 지난번 거기로 오래.

-엄마가 가면 되지, 왜 내가?

-나는 법적으로 남이잖아. 니가 가야지.

-이야기 듣는데 무슨 그런 걸 따지노

-아무튼 니가 좀 가라



모임 내내 마음이 불편해서 마음껏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아니 의사 만나는데 가족관계증명서를 갖고 오라는 것도 아닌데, 왜 엄마는 나를 내세우는지. 이래서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그냥 '노는' 사람 취급을 받기 일쑤다.



8시 반까지 오라는 메시지는 9시 반까지로 연장됐다.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아빠가 기침이 너무 심해서 입원했다고 하는데, 혹시 폐렴은 아닐지 걱정에 이른 새벽, 잠에서 깼다.




한 달 만에 다시 방문한 혈액종양내과는 대기실이 텅 비어있었다. 환자들 예약이 거의 없는 날인가 보다. 담당 의사는 회진 돌고 있다 하여 약 30분을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담당 의사가 바뀐 것도 병원에 가서 알았다. 이번에는 어떤 의사일까 궁금했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환자와 어떤 관계냐고 묻는다. 


-딸이에요.

-지금 아버님이 어떤 상태인지는 알고 계시죠?

-네

-현재 인후 쪽, 임파선 부근 쪽으로 증상이 나타나고 있어서 계속 콧물이 많이 흐른다고 하셨고, 이비인후과 검사해 보니 비염 증상 정도만 보이는 거고요. 지난번 담담했던 선생님이 그만두시는 바람에 제가 맡아서 이번부터 보고 있는데, 지금 하고 있는 치료는 어딜 가나 이렇게 진행될 겁니다. 약간 교과서 같은 건데, 서울이나 부산을 가도, 일본이나 미국을 가도 모두 다 이렇게 치료가 진행되는 거예요. 하루 주사 맞고, 나머지 약을 먹고, 1,2주 동안 암세포가 죽으면서 정상세포도 같이 손상되기도 하고요. 2주가 지나면서 다시 정상 면역으로 회복되는 과정이라 3주 텀을 두고 치료를 하게 되죠.

앞에 담당선생님이 치료하신 방향에 저도 동의를 하고요, 이 전까지 치료에서는 잘하셨는데, 이번부터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어요. 

-기침도 그래서 많이 나는 건가요?

-그렇죠.



의사는 A4 종이에다가 그래프를 그려가며, 백혈구와 적혈구, 혈소판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마치 혈액 수업을 듣는 듯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을 들으며 지난번 교수는 그만둘 거라 마음이 떠서 그렇게 퉁명스러웠나,라는 딴생각을 잠시 했다)



-백혈구가 기능을 잃게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00 억제제 같은 거를 투여하고요(정확한 게 생각이 안 난다), 아버님, 배에 주사 하나 맞았어요? 올라가면 간호사가 줄 거예요. 적혈구와 혈소판이 떨어지는 건 무조건 수혈밖에 안 됩니다. 아버님, 지난번에 노란 거 맞으셨죠? 그게 혈소판이에요. 빨간 거만 생각할 수 있는데 빨간 거는 적혈구고요.



예전에 한참 헌혈 할 때, 혈소판 헌혈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지금 아버님 상태가 1~2주이기 때문에 급격히 면역이 떨어지는 시기예요. 그래서 골수 쪽도 많이 약해져 있고요. 이때 항생제 투여, 수혈 이런 조치가 안되면 패혈증이 오기 쉬워요. 패혈증은 말 그대로 혈액이 졌다,라는 뜻이죠. 그러면 심하면 사망까지 이르게 되는데, 보통 30%고요. 조치를 잘해도 만약의 경우 10%의 사망 가능성은 있지만, 많이 줄어들게 되는 거죠.

6회 치료를 하시고 나중에 재발하게 되면 다시 항암을 새로 또 하셔야 하는 거고요. (지난번에는 8회라고 했는데?) 그렇습니다. 치료 경과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오늘 오시라고 했고요, 또 달라지거나 하면 오시라고 하겠습니다. 






아빠는 병실에 가볼래? 물었다. 내가 바로 가는 게 아쉬운 듯했다. 

병실로 올라가 아빠가 다음 주까지는 더 있어야 한다니 필요한 건 없는지 살펴봤다. 작은 과자와 음료 같은 걸 챙겨주면서 가지고 가라고 했다. 나는 과자를 챙기고, 화장품을 미처 못 챙겼다는 아빠의 말에 병원에 있는 편의점을 가기로 했다.



그때 아까 담당의사가 말했던 배에 맞는 주사를 준다 했다. 백혈구를 유지시켜 주는 주사를 맞고, 혈당을 재고, 엑스레이를 찍으러 내려갔다. 편의점에서 화장품과 주스를 샀고, 아빠 병실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왔다. 



친구는 큰 병원에 누가 따라가면 좋지,라며 자기 아빠도 큰 병원에서 매번 길을 잃어서 짠하다고 한다. 모두 직장에 메인 몸이라 따라갈 사람도 없어서 안타깝다고. 아까 아빠도 '어찌 나보다 더 길을 더 잘 아냐'했다. (내가 좀 길눈이 밝지) 이제 70대 후반, 눈도 예전만큼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점점 꺼져가는 걸 느낀다. 산소가 부족한 램프 속에 억지로 산소를 넣어 불을 타게 해 주지만, 스스로 빛을 내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고 모든 몸이 노쇠해진다는 것을 병원에 일하면서 타인의 관점으로 관찰했지만, 내 가족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것은 생소하고 짠한다. 내겐 언제나 뽀빠이 같은 아빠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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