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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Oct 08. 2024

돌봄 받는 능력

돌봄의 온도는 몇 도일까

몇 달 전, 올해 남은 3개월의 독서모임 선정도서를 정했다.

그중 10월은 이은주 작가의 <돌봄의 온도>이다. 

요양보호사인 딸이 치매를 갖고 있는 엄마를 돌보는 이야기로 가족 요양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마침 아빠의 사고와 수술, 입원으로 인해 직장을 다니는 엄마는 휴일에, 나는 평일에 번갈아가며 아빠를 돌보게 됐다. 수술 후 일주일까지, 사고 당일부터 약 열흘간 아빠는 팔만 움직일 수 있었다. 식사도 물과 같은 미음을 누워서 빨대로 먹어야 했기 때문에 사실 옆에서 식사 보조 외에는 많은 일을 하진 않았다.



식사와 식사 사이에 약 4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있다. 그 사이에 대체로 할 수 있는 일은 독서가 제일이었다. 영상을 시청한다면 아빠의 요청을 못 들을 수 있고, 글쓰기는 가끔 휴게실에 나가서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자리를 비워야 하기 때문에 침대 바로 옆 보호자용 침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책 읽기가 좋았다.



<돌봄의 온도>는 요양보호사 일을 하면서 가족 요양을 함께 하는 작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주 보호자 외에도 가족 간의 요양 협조라던지, 사회의 역할 등 노인 인구가 많아지는 시점에 보완해야 하는 내용도 담겨 있어 사회적으로도 가치 있는 책이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보호자의 역할뿐만 아니라 돌봄을 받는 주체의 '돌봄 받는 능력'이라는 부분이었다. 목욕을 할 때면 팔을 뻗어준다던지, 간식을 먹을 때 정확하게 어떤 것이 좋고 나쁨을 이야기한다던지, 배변 케어를 받을 때 엉덩이나 다리를 들어준다던지 하는 것들이다.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요양보호사 교육을 하고, 나도 아빠를 돌보는데 '돌봄을 받는 능력'이라고 하니 생소했지만, 결국 그렇게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어렵지 않게, 힘들지 않게 서로를 돌보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봄의 온도




아빠는 내가 9~10살이 되던 해부터 거의 같이 살지 않았다. 지방에서 일을 한다며 주말에만 오던 것이 몇 달에 한 번 꼴로 얼굴을 보는 식이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예 따로 살기 시작했는데 같이 살 때도 별 대화가 없었고 나이 들어서는 그저 안부만 묻는 식이었다.



퇴근 후 주말에 병원에서 밤을 보낸 엄마는 결국 몸살이 났다. 나도 아빠의 사고현장을 찾아가고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는 등 신경 쓰며 병원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입 안이 헐어갔다. 회진 시간에 맞춰서 담당 의사를 만나기 위해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전에 먼저 집에서 나와 병원에 가기도 했다. 



아빠는 이제 앉아서 죽을 먹는다. 식성이 좋아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낸다. 원래도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번도 내게 '배고플 텐데 밥 먹고 와라' 또는 '밥은 먹고 왔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섬망 증상 때문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한 번도 그런 질문이 없었다. 



병원에 간 날, 아빠는 심부름을 시켰다. 아빠가 일하던 곳에 가서 가져올 것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아빠 집에 가서 화분에 물을 주라고 한다. 화가 났다. 딸은 배가 고픈지 안 고픈지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으면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집에 가서 식물에 물을 주라고? 



점심을 챙겨드리고 집에 가기 전에 내가 있을 때 아빠가 앉고 서는 연습을 더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아빠는 '배가 불러서 못 하겠다'라고 한다. 참았던 말을 쏟아냈다. 

-아빠는 그렇게 배가 부르게 잘 먹으면서 나는 배가 고플 거란 생각은 못 했어? 



점심으로 먹을 셰이크를 챙겨갔지만, 집에 가기로 했다. 병실에 나오기 전, 다시 물었다.

-그래서 사무실 가서 그거만 챙겨서 오면 되는 거지?



아빠는 말했다.

-갔다가 화분에 물도 꼭 주고 와. 화분 다 죽게 생겼네.


-아니, 절대로 안 갈 거고 여기도 다시는 안 올 거야.



오지 못하는 엄마는 아빠에게 전화로 '아파도 운동을 해야 하니 의사가 시키는 대로 걷는 연습을 많이 해라, 화라도 애도 둘이나 키워야 되고, 일도 해야 하는데 계속 저렇게 옆에 못 있는다.' 등의 이야기를 했단다. 아빠는 그렇게 말하는 엄마에게 이렇게 대답했단다. 

-누가 오랬나?




돌봄을 받는 능력도 눈치인 것인가, 딸이라고 만만하게 보는 것인가, 궁금했다. 

그리고 바로 내일 오전에 있는 운동 수업을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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