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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Mar 28. 2023

쪼들릴수록 계획하지 않는다.

단순함의 미학



씀씀이는 늘어났는데 물가는 치솟고 금리도 인상되었다.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정말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아주 오랜만에 가계부 파일을 열었다. 어디에 지출이 많은가 살펴본다. 말할 것도 없이 식비다. 무럭무럭 자라는 세 아이와 연일 몸무게를 갱신하는 부부의 식비에 혀를 내두른다. 간식과 커피값까지 합치니 '뭘 이렇게까지 처먹었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빵 소비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빵값을 줄이면 자연스레 커피값도 줄어든다. 건강함은 덤으로 얻겠지, 싶으면서도 고소한 빵 냄새의 기쁨을 잃는다 생각하니 잠깐 시무룩해진다.


매일 꼬박 가계부를 쓰면서도 가계 지출에 큰 변화가 없는 가정이 있다. 우리 집처럼 가계부를 쓰지 않아도 간간히 점검을 하고 나면 확연하게 달라지는 가정도 있다. 차이가 뭘까. 꼼꼼하게 계획하고 야심 차게 가계부까지 마련했는데 (그마저도 얼마 못쓰고 버려질 것) 달라지는 건 없고 스트레스만 받는 이유가 뭘까. 중요한 건 본질인데 우리는 항상 엉뚱한 곳에 시간을 낭비하는 건 아닐까. 


나는 계획에 취약한 사람이다. 계획을 세우면 어떻게든 지키려는 강박과 지키지 못했을 때 나에 대한 실망이 커져서 오히려 계획을 세우기 전보다 더 상태가 안 좋아진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나는 미리 계획하는 것보다 일단 해보면서 중간중간 체크를 하는 것이 더 맞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비 지출을 통제하려면 우선 나의 소비 내역이 필요하다. 가계부를 쓰는 이유도 내가 지금 어디에 돈을 쓰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가계부 적는 게 힘들다면 3개월 정도 카드 명세서를 뽑아본다. 이때 사람들의 방어기제가 강해진다. 여기서의 방어기제는 욕구불만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취하는 행위이다. 소비 내역 하나하나를 따지며 "이건 꼭 필요했어.", "이건 중요한 거야." 내 소비에 대해 타당한 이유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이 또한 시간 낭비다. 큰 항목으로 소비를 묶어본다. 식비(집밥/외식), 쇼핑(의류/미용/생필품), 의료비, 교통비, 경조사 등 우리 집에서 주로 쓰는 소비 분류를 한다. 그리고 그중 과하다 싶은 항목을 하나 정해서 다음 달엔 이 부분을 얼마큼 줄이겠다고 계획을 세운다. 일일이 분류하지 않고 전체 금액이나 비율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철두철미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이 상태가 되지 않았음을 기억하자. 나는 허술하다. 나는 충동적이다. 나는 무계획적이다. 인정하고 시작하면 큰 스트레스 없이 작은 변화를 맛볼 수 있다.


우리 집은 식비에 거의 몰빵 되어있다. 쇼핑을 즐기지 않는다. 감사하게 남편은 더욱 그렇다. 웬만큼 심한 상태가 아니면 병원을 잘 가지 않는다. 어떤 확고한 신념 때문이 아니라 산에 살며 세 아이와 병원 가는 일이 그렇게 고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면역력이 자연스레 좋아져서 콧물 훌쩍 정도면 금방 낫곤 한다. 교통비는 차 없이 살 수 없는 곳이다 보니 그러려니 한다. 포기할 건 쉽게 포기해야 스트레스가 적다.


아이들이 클수록 지금보다 더 식비가 많이 들 텐데 어떻게 줄여야 할까.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대형마트를 가지 않으면 된다고 한다. 이게 정석인 줄은 알지만 우리 집에선 통하지 않을 거라 의심했다. 워낙 먹는 양이 많아서 대형마트에 가야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다. 더 자주 장을 봐야 하는 게 오히려 에너지 낭비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성공했다는 것은 바로바로 실천해 본다. 오아시스나 마켓컬리에서 온라인 주문을 하고 시내에 내려갔을 때 채소 가게나 생협을 들렀다. 한, 두 달 실천해 보니 확실히 소비가 줄었다. 먹거리를 잔뜩 사 와도 며칠 못 가서 없어지는 집이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아껴 먹는다. 내가 아이들에게 참을 권리와 나눌 권리를 빼앗았구나! 큰 깨달음 하나를 얻는다. 다음 달부터는 빵집 가는 횟수 줄이기를 실천해 본다.


쪼들릴수록 빡센 계획은 금물이다. 과한 다이어트가 요요를 불러오는 것처럼 평소 소비습관을 무시하고 바짝 조이다 보면 엉뚱한 곳에서 큰돈을 쓰게 된다. 나의 소비 내역을 점검하고, 가장 많이 쓰는 항목에서 10만 원 줄이기, 20만 원 줄이기 차근차근하다 보면 3개월, 6개월 후에는 정상 소비 구간으로 진입할 수 있다. 단순할수록 성공확률이 높다. 변동지출 항목은 내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에 변동지출이다. 지금은 약간의 의지를 발휘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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