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날 작가 Dec 16. 2022

거 봐. 아파트 사지 말라고 했잖아.

욕심과 실력을 구분해야 할 때

오랜만에 공인중개소 사무소(이하 부동산)에 들렀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커피숍 가는 것만큼이나 자주 부동산을 들락날락했는데 이제 일 년에 한 번도 찾지 않는 곳이 되었다. 벽을 둘러 빽빽하게 붙어있는 동네 지도와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집중하는 중년의 아주머니, 그리고 한 마디 한 마디 띄엄띄엄 할 말을 찾는 낯익은 이와의 대화. 이 모든 것이 처음 겪는 일인 듯 어색하기 짝이 없는 날이었다. 남편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동안 멀찌감치 앉아 사람 좋은 미소만 잔뜩 지었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시고요~" 반가운 이사를 받으며 부동산을 나왔다.


전세 갱신을 한 날이었다. "아이가 클 때까지 여기서 좀 오래 살고 싶거든요. 들어오실 생각은 없으신 거죠? 2년 뒤 2년을 더 살 수 있는 거죠? 계약서에 특약으로 꼭 넣어주세요." 2년 전 몇 번이고 신신당부했던 그는 계약 갱신을 얼마 앞두고 5%의 전세금을 올리겠다고 얘기한 우리에게 전세금을 절반만 올리던지 월세로 전환해 달라고 했다. "요즘 전세가 떨어지고 있어요. 더 큰 평수가 이 가격으로 나왔더라고요." 여차하면 이사할 마음도 있다는 의중을 넌지시 비쳤다. 남편과 5분이나 고민했을까. 어차피 내 돈도 아닌 거 반만 올리기로 하고 부동산에서 만났다. 신이 난 세입자는 우리에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저는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 팔고 왔는데 요즘 아파트 가격이 많이 떨어졌더라고요!" 호탕하게 웃는 그분의 얼굴을 보며 우리 부부도 웃었다.





오랜만에 남편과 도시에서 데이트를 했다.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뚝딱하고, 핫하다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오늘은 모두에게 해피엔딩인 모양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한걸음 떨어져 산 지 한참 되었다. 종잣돈을 투자한 후 더 이상 뭔가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돈'에 끌려다니는 삶에 매력을 못 느꼈기도 했지만, 더 현실적인 이유는 남편의 작고 소중한 월급이 다섯 식구가 겨우 먹고사는 것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리하게 대출을 일으켜 욕심을 부리는 순간 우리가 선택한 삶이 흔들리는 것은 당연했다. 돈이 아닌 시간, 물질이 아닌 마음. 우리가 생각한 가치에 부합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기본적으로 소비를 많이 하지 않고 물욕도 별로 없지만 꼬박꼬박 아껴 쓰지도 않는다. 그냥 돈이라는 것에 큰 관심 없이 산다. 그렇게 지내도 별일 없을 정도의 풍요로움을 갖고 산다. 그런 내가 요즘 다시 자본 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다. 평소 좋아하는 투자자의 유튜브를 꼬박꼬박 챙겨보고 한동안 전혀 읽지 않았던 투자 분야의 책도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유가 뭘까. 갑자기 돈 욕심이라도 생겨서 그런 걸까?


최근 몇 년간의 자본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폭등했다. 부동산뿐이었나. 주식도 비트코인도. 뭔가를 하지 않으면 이상하리만큼 전 국민이 투자 시장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건 가용할 수 있는 돈도 없었지만 내 기준엔 너무 비싸서였다. 대기업에 맞벌이가 아닌 우리 같은 외벌이 소시민에겐 서울 부동산의 가격이 좀처럼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냥 내가 심어놓은 씨앗이 손 안 대고 코 푼 격으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커피 한 잔을 좀 더 편안하게 사 먹을 수 있는 정도의 기분이었다. 그런데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시장이 예고 없이(물론 예고는 계속 있었지만) 가파르게 하락하는 걸 보자 하니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나 같은 사람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투자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씩 기웃거리는 중이다. 시장의 버프를 받아 운이 좋았던 욕심 많은 투기꾼 말고, 이런 때에도 웃을 수 있는 실력 있는 투자자의 이야기를.


나는 숲에서 베짱이처럼 살고 있는 평범한 엄마지만 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관심이 많다. 큰 부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도 절대 가난하게 살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그토록 엄마들에게 공부를 하자고 이야기했다. 투자를 하건 말건 그건 개인의 자유지만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한 그 바퀴에서 튕겨 나지 않을 만큼의 지식은 갖고 있자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지금 안사면 큰일 날 것처럼 하더니 아파트 가격 다 떨어지는구나. 거봐, 집값 떨어질 거라니까. 그래서 내가 사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흐뭇하게 웃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경제 공부를 시작하면 어떨까. 지금 했던 말을 주워 담으며 땅을 치고 후회하기 전에. 멋지게 자본 바퀴에 탈 수 있는 기회가 올지도 모르니까. 제발, 제발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들이 경제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