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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Jan 09. 2021

엄마들이 경제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행복하고 싶을 뿐 가난하고 싶지는 않아서.



철없는 이상주의자 둘이 다 커서 소꿉놀이를 한다고 사람들이 혀를 차던 시절,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도 되는 집에서 땀을 뻘뻘 흘리도록 놀았고, 남편은 가끔 멋쩍은 웃음으로 나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룰루랄라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행복에 미소로 화답했다. 더 이상 독박 육아의 늪에 빠져 날을 세우는 부부 관계가 아닌 서로를 품어주고 이해하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어서, 그래서 눈 딱 감고 이런 미친 짓을 결심했고 우리는 실제로 행복해졌다.

아이들의 동화는 그래서 왕자님과 공주님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난다. 우리의 이야기도 여기에서 결말이 난다면 그렇게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비록 하수처리장 작은 집에서의 행복이었지만, 그들만의 작은 숲에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해피엔딩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동화가 아니다. 앞으로 적어도 50년은 더 살아야 끝이 나는 이야기다. 우리의 행복은 과연 몇 년짜리일까? 남편의 급여로 지속할 수 있는 행복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내 머릿속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썼다 지웠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한숨을 쉬었다.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이 생각이 결국 우리의 행복을 갉아먹게 될 것이었다. 고통은 독박 육아에서 돈으로 대체될 뿐이었다. 아이는 결국 자라지만, 돈은 죽을 때까지 우리를 따라다니며 괴롭힐 것이다.

나는 그저 행복하고 싶었을 뿐, 가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제가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았습니다. 이제부터 철 좀 들겠습니다." 두 손 번쩍 백기를 들어야 하는 걸까?


내가 자본주의를 파고들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이전에 옆집 언니, 앞집 언니 말만 듣고 브라질 채권도 사봤고, 주식도 해봤지만 번번이 손해만 봤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저 좋다니까, 덥석 돈을 내어주었다. 그때야 여윳돈으로 했다지만, 이제는 생존이었다. 누구의 말에 재미 삼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내가 보고, 내가 듣고, 내가 공부한 것만, 그것만 믿어야 했다. 그때부터 경제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새벽 3시면 현관 앞에 던져지는 신문을 펼쳐 들고 애써 오는 졸음을 삼켜가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셋째를 뱃속에 품었을 때였다. 그 와중에 셋째냐는 신랄한 비난이 쏟아질 때마다 나는 더욱 두 손을 움켜쥐었다. 원했던 안 원했던 이 생명은 행복의 씨앗이었다. 부부가 행복해졌다는, 가족이 행복해졌다는 신호탄이었다. 내가 더 치열하게 공부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주식 광풍이 불고 있다. 너도 나도 주식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하루에도 몇 천씩 벌었다는 사람들이 생긴다. 신용대출을 다 끌고 와서라도 해야 한다고,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바보라고 한다. 하물며 이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남편도 며칠 전 나에게 말했다. 너도 주식 한 번 해보지 그래? 우리 남편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온 나라가 주식으로 들썩이고 있음이 틀림없다.

내가 분명히 말하건대, 공부하지 않고 시작하는 투자는 결국 화를 입고 만다. 나에게 결정권이 없다. 좋다는 말만 듣고 들어갔지만 언제가 매도 시점인지 모르니 사고팔고를 반복하다가 수수료만 잔뜩 내는 꼴이다. 아무리 좋은 종목이라 해도 믿음이 없으니 소액만 집어넣었다가, 한없이 올라가는 주식에 마음이 급해져 거액을 추매 하고 꼭지에 물린다. 혹시나 운 좋게 성공했어도, 그것이 운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실력을 자만하여 위험한 종목에 손을 댔다가 순식간에 곤두박질치는 주가에 재산도 곤두박질친다.

주식으로 거액의 돈을 벌려면 워런 버핏의 말처럼 집중 투자와 장기간 투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주식에 매달리는 사람들 중 몇이나 그런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주식시장에 참여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깟 몇 백을 벌려고 주식창에 온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바라던 행복인가?

그렇다고 혼자 소외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공부하지 않은 투자는 결국 화를 입으니, 공부하라는 얘기다.


남편이 돈으로 시간을 샀으니, 나는 시간을 사는데 쓰인 그 돈만큼을 벌겠다. 적어도 가난해지지는 말자. 그것이 내가 자본주의를 공부하게 된 이유였다. 엄청난 부를 얻기 위함이 아니었다. 남편이 본인의 선택에 미안해하지 않도록,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해피엔딩을 위해서 한 선택이었다.

내가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깨달은 것은 무엇보다 내가, 엄마인 우리들이 자본주의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시간을 쏟아부으며 일하는 남편의 돈을 가치롭게 쓰는 것도, 그 돈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도, 그 주체는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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