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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Jun 06. 2024

삼촌, 안녕

가족 ::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가족의 정의가 이렇다는데, 그럼 내 가족은 누군가.


얼굴도 자주 못 보는,

이렇다 할 교류도 없는,

어떠한 공감대도 없는,

이웃보다 먼 친족 관계가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들의 삶에 관심이 없고,

나에게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하는.

혹은 우리 가족을 때때로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내 가족인지는.


내가 가족이라는 정의 아래에 두는 사람은,


그저

남편,

아이들.

친정 아빠,

엄마.

시어머니,

시누 가족.


그리고, 삼촌.


삼촌.

우리 아빠랑 열 살 넘게 차이나는 그 집안의 막내.


호랑이 같은 형한테 매일 혼나서,

비슷하게 혼나는 내 입장에선 같은 편, 동지.


젓가락 행진곡부터 다이애나까지

내 옆자리에 앉아 피아노를 뚱땅거리고,

주말마다 수영장에 가서 신나게 놀아주던 친구.


겨울에는 스키, 여름에는 수상 스키,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스포츠맨.

덕분에 나도 못하는 게 없는 스포츠걸.


상급자 코스에 데려다 놓고 휙 가버리는 아빠 대신

항상 나를 기다려주던 사람.


한창 사춘기 때 삼촌한테 대들었다가 처음 혼나서

엉엉 울며 왜 날 혼내냐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던 날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던 삼촌을 보며

더 크게 울었던 철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나.


무섭고 엄격한 부모 밑에서 큰 내게

처음으로 져준 너그러운 어른.


왜 우리는 이모도 없고, 삼촌도 없어?

항의하는 꼬마들에게

대신 너희한테는 삼촌 할아버지가 있잖아. 했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가족이라고 소개하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지 않았을까.



내 어린 기억에도 삼촌은 자유로운 영혼이라

어느 날 연락도 없이 훌쩍 떠나버리곤 했는데,

이번에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났다.


허망한 마음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나빴다, 정말.

우리 집에 곧 놀러 온다고 했잖아.


삼촌 흔적을 어디서 찾을 수 있지.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았던

카카오스토리에 들어갔다가 또 울었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매년 보낼걸.

이걸 왜 나는 이제 봤을까.

항상 지나고 나서 후회가 된다.



근데 삼촌.

삼촌은 갈 때도 괴롭지 않았을 것 같아서

왠지 삼촌은 그랬을 것 같아서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후회 없을 것 같아서


삼촌답게 가버렸네, 싶어서

나 조금 괜찮았어.

그렇지만 내일은 많이 울 것 같아.


이정재보다 더 잘생긴 우리 삼촌

거기 가서 할머니도 만나고,

좋은 여자도 만나고, 행복하게 살고 있어.


우리 나중에 꼭 만나.

그때에는 삼촌한테 넘치게 받은 사랑,

내가 다 갚을게.


고마워.


삼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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