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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Nov 02. 2022

어른의 언어를 배우는 중이다.

때로는 침묵도 언어다.

나는 말이 서툰 사람이다. 먼저 대화를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어떤 말을 내뱉기 전에 머릿속으로 수많은 회로를 돌린다. 하물며 아주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과도 편안한 대화를 하는 경우가 드물다. 물론 이전에 내가 오랫동안 생각했거나 충분히 곱씹었던 이야기, 예를 들어 글로 한 번 정리했던 주제라면 조금 다르다. 그럴 땐 편안하게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요즘 말로 많이 뚝딱거린다. 평소 잘 숨기고 사는 아기 같은 목소리가 튀어나온다던가 어, 어, 어 하고 시동을 한참 걸고는 단답형으로 대화를 종료한다. 어떨 땐 마음과 달리 차갑고 냉정하게 말이 튀어나올 때도 있다. 그래서 보통 나는 말을 하는 사람이기보다 듣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늘 말을 잘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지만 쉽지 않다. 상황에 맞는 말을 하고 싶고, 상대가 듣고 기분 좋은 표현을 하고 싶고, 내 마음이 왜곡되지 않게 전달하고 싶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적합한 말을 찾지 못하고 웃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에게 말은 여전히 어렵다. 세련되고 우아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톡톡 건드리며 안아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 내 이상형이자 닮고 싶은 사람인 건 어쩌면 당연하다. 오롯이 내 결핍에 의해서다.


내가 아는 그녀는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사람이다. 항상 차분하게 들어주고 조용하고 나긋하게 질문했다. 강의 때마다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힘은 경이로웠다. 말주변이 없는 나도 그녀와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묻지도 않은 내 이야기를 주절주절 다 꺼내게 되었다. 그녀의 목소리와 표정과 미소에 무장해제가 됐다. 어떻게 하면 타인과 교감하는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말을 잘하는 방법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배워보고 싶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타고난 것일 수도 있고, 대화법 즉 기술을 익히는 것으로도 가능할 수 있다. 아나운서들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단순히 '말'을 잘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뛰어난 화법이 아니라 성숙하고 배려있는 태도였다. 타인과 어른의 대화를 하고 싶었다.


어른의 언어는 어떻게 배울 수 있는 걸까.


말주변이 없어도, 한 마디를 하는데 여러 번 말을 골라내야 해도 상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묵직한 한마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말을 잘하는 사람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대화법이나 어휘력 책을 볼 게 아니라 내 앞에 있는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어른의 언어는 상대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당장 말을 잘하기보다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일부터 연습해본다.


그리고 또 하나를 요 근래 배우고 있다. 그건 바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또한 어른의 언어임을 알게 되었다. 말을 잘한다고 하면 어디 가도 빠지지 않을 정치인들의 '말'을 듣자니 속에서 울화가 치밀고, 거기에 옳고 그름을 따지며 한 마디씩 보태는 사람들을 보자니 눈을 감고 싶다.

도무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지만,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억장이 무너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침묵하기를 배운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잘잘못을 따지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보태는 것이 아니라 괴롭고 아파할 누군가의 고통을 짐작하고 애도하는 것뿐임을 알기 때문이다. 적재적소에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있는 깜냥이 안 되는 지금, 그저 침묵하기로 한다.


이렇게 듣고, 참고, 고르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성숙한 어른의 언어를 쓸 수 있게 될까. 거기에 희망사항을 하나 더 보태자면 위트까지 갖추면 좋겠다. 난 여전히 꿈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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