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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Dec 23. 2022

산타를 믿으시나요?

폴라 익스프레스

세 아이가 사는 집은 이맘때가 되면 007 작전이 벌어진다. 아이 몰래 선물을 사야 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야 장난감 전문점에서 한 번에 살 수 있었다지만 아이들이 커갈수록 원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점점 다양해진다. 오늘도 휴가를 낸 남편과 추위를 뚫고 여기저기를 헤맸다. 문구점, 장난감 전문점, 서점 등을 뒤졌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걸 완벽하게 구입할 수 없었다. 하아. 힘들다. 힘들어. 크리스마스이브 아이들이 잠들면 머리맡에 두는 것까지 해야 미션 클리어다.


우리 집 아이들의 나이는 초4, 초2 그리고 6살이다. 어쩌다가 아직도 산타를 믿게 되었냐고? 이미 알고 있는데 선물 받으려고 모르는 척하는 거 아니냐고? 사실 초등학교 1학년만 돼도 친구들은 산타는 없다고 떠들고 다닌다.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25일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고 산타 같은 건 없다고 말한다. 우리 아이들이 그 소리를 못 들었을 리가 없다. 11년 동안 매번 완벽하게 미션을 클리어했던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잠든 밤 차에서 선물을 포장하고 포장지를 트렁크에 던져놨다가 얼마 뒤 "엄마! 산타할아버지 선물이랑 똑같은 포장지가 여기 있어!"라고 소리쳐 식겁한 적도 있다. 눈치가 아무리 없는 아이라도 이미 알만한 사건이었다. (그때를 떠올리니 아직도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다.)


이런 사건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산타를 믿게 된 이유는 바로 매년 이맘때가 면 함께 보는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 덕분이다. 큰 아이가 어릴 때 전집을 들였는데 글밥이 꽤 많은 책인데도 아이가 좋아하는 책이 있었다. 바로 <북극으로 가는 기차>.

크리스마스 전날 밤 집 앞에 서있는 기차를 타고 북극으로 가는 꼬마의 이야기. 아이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만드는 공장으로 가득 찬 북극으로 떠난다. 그리고 산타 할아버지에게 첫 번째 선물을 받는 아이가 된다. 이 책은 커버가 다 찢어졌는데도 여전히 아이들이 한 번씩 찾는 책이다. 워낙 좋아하는 책이라 혹시 영화도 있을까? 했는데 역시 존재했다.





폴라 익스프레스는 2004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이다. 화질이 별로라 리메이크가 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맘때가 되면 잊지 않고 가족이 항상 모여 앉아 보는 영화다.


옛날엔 내 친구들 모두가 그 방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그 친구들에게도 어느덧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어 버렸어요. 내 동생 사라도 언제부터인지 그 아름다운 방울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지요. 나는 어른이 되고 이제 늙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방울 소리는 지금도 여전히 내 귀에 아름답게 울린답니다. 산타 할아버지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다 들리듯이......



이야기의 마지막. 북극에 다녀온 주인공은 이제 늙은 할아버지가 되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선물로 받은 은방울을 아직 간직하고 있지만 산타를 믿지 않는 이에겐 더 이상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할아버지에게는 아름답게 울리는 방울 소리.

이 영화를 본 뒤 아이는 의심하기를 멈췄다. 자신이 믿는 한 산타 할아버지는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아이의 맑고 순수한 마음을 지켜주고 싶어서 우리 부부는 오늘도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찾으려고 발품을 팔고 또 판다.


어른이 되면서 번번이 이런 순간을 만난다. 믿는 마음 자체가 끊임없이 빈정거림의 대상이 된다. 순수함은 순진함으로 변질된다. 철없는 소리를 하는 이상주의자가 된다. 그럼에도 아이의 굳건한 산타에 대한 믿음을 보며 나도 조심스레 꿈을 꿔본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의심하지 않고 믿는 마음. 아이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마음. 어른이 되면 억지로 감춰야 하는 마음. 그 마음을 믿어보겠다고. 방울 소리가 들리는 어른이 되어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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