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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ly Pok 밀리폭 Dec 07. 2019

계약직을 전전하다 일용직 노동자가 되었다.

비정규 노동자로 살면서 겪은 내 이야기

“�♬♩”

”자기야 오늘도 신나는 하루 되세요. 다니엘이 응원합니다.”

새벽 3시 40분 친구의 강다니엘 알람 소리에 잠이 깬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기 싫도록 찬 공기가 나를 감싼다. 세안 후 썬크림까지만 바르고 십 분만에 주섬주섬 간식을 챙겨 집을 나선다. 새벽이라 도로가 휑하다. 물류센터는 차 타고 30분거리 외곽에 위치해 있다. 시작은 4시 45분인데, 4시 30분까지 미리 와서 준비하라고 했다.

백수 10개월차, 조급한 마음에 속이 타 들어 가던 중, 3개월째 쿠팡에서 새벽 택배 알바를 하고 있는 친구의 추천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버스가 안 다니는 어두운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데 나는 운전을 못해서 친구 집에서 자고 같이 출발한 것이다. 1일차, 긴장된다. 내 작은손에 맞지 않는 빨간 반코팅 면장갑을 지급받아 자리를 배정받는다. 친구소개로 와서 그런지 업무도 다시 가르쳐 주지 않는다. 어제 미리 들어두긴 했지만 당황스럽다. 다행히 업무는 어렵지 않다. 뒤에 있는 택배트럭에 붙여진 종이의 ‘A, B, C, 107A’ 따위의 코드를 기억했다가 앞에 있는 레일 컨베이어로 밀려오는 택배 중 맡은 코드를 골라 트럭 안에 분류해서 쌓으면 된다. 한 차당 코드가 4~8개 정도 되고 세 트럭을 책임져야 하니 체력과 순발력은 물론 시력도 좋아야 한다.

오십 분 일하고 십 분에서 십오 분 쉰다고 했지만 말이 그런 거지 실제로는 통합물류센터로부터 온 한 트럭의 모든 물량이 내려지고 다음 물류 차가 올 때까지의 시간을 말했다. 그마저도 이전 택배가 밀릴 때 정신 없이 내렸던 박스를 정리하다 보면 십 분이 지나있었다. 트럭 안까지 오르내리기를 수백 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이 뻘뻘 난다. 곧 숨쉬기가 가빠져서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소매를 팔꿈치 너머까지 걷어 부친다. 그렇게 다섯 시간 삼십 분, 어느새 해가 뜨고 열 시 십오 분이 되어 있다. 시간이 정말 총알 같다. 오전 중에 이만 보를 넘겼다.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지만 한편으론 아침운동을 한 듯이 개운하기도 하다. 일을 마무리 짓고 한 장짜리 일용직용 단기근로계약서를 쓴다. 쉬는 시간 30분을 뺀 다섯 시간의 임금을 받는 다는 내용이다. 출근시간도 강제로 15분 일찍하라고 해놓고선, 쉬는 시간 포함 나의 현장에서 머문 45분이 제외된 다섯 시간이다. 사인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와서 씻으려고 하니 콧속에 시커먼 먼지가 풀어도 풀어도 계속 나온다. 손과 팔에는 벌겋게 긁힌 자국들이 보이고 그제야 쓰라려 온다. 트럭에 오를 때 박은 건지 레일을 밀다가 찍힌 건지 무릎은 온통 멍 투성이다. 체력에 자신 있었는데 녹다운 된 자신이 초라하다. 친구는 숨쉬기 운동만 하던 애고, 나는 매일 운동하는 ‘운동몬’이라 쉽게 봤는데 멀쩡한 친구와 비교되니 자존심도 상한다. 복잡한 마음이지만 깊은 생각할 것도 없이 씻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자고 일어나니 오후 세 시다. 몹시 허기가 져 마구 먹어댔다. 백수 되고 신경성 위염과 장염 때문에 소식 해야 했는데 많이 들어간다. 일 시작 하루 만에 위장염도 낫고 식욕이 돌아왔다. 속이 편안할 걸 보니 위장염은 신경성이 아니라 운동부족 이었나 보다. 매일 아무 대도 안가고 방에 쪼그리고 앉아 취업실패로 좌절하여 훌쩍이고 있었으니 위장이 쪼그라들어 있었을 거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 다시 못할 것 같았는데 한 숨자고 밥 먹고 나니 내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새벽일의 장점이 일 마치고 낮잠 자고 식사하고도 아직 훤한 대낮인 것이다. 덕분에 강제로 새벽형 인간이 되었다.

둘째 날 긴장을 덜했더니 좀 낫다. 답답해도 사온 마스크를 꼭 하고 긴 팔을 입어서 피부가 긁히지 않도록 주의했다. 벌써 베태랑이 된 기분이었다. 어제보다 적은 물량에 친구가 도와주니 밀리지도 않고 쉬는 시간 먹는 초콜릿은 꿀맛이다.

수요일까지 3일 연속 일하니 또 한계가 온다. 마침 목요일 물량이 줄어들 예정이라는 반장님 말씀에 하루 쉴 수 있었다. 하루 더 쉬고 싶지만 월~일요일 사이 한번만 쉬어야 한다. 주에 6일을 일해야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꿈 같은 휴일이다. 백수로 놀 땐 매일 지옥이었는데 일하고 하루 쉬니 일분 일초가 소중하고 기분이 좋다.

금요일 다시 출근이다. 신입이 많다 보니 트럭 안 정리가 잘 안되나 보다. 반장이 우리를 소환하는 소리가 들린다. 종종걸음으로 빨리 가고 있는데 앞서가던 사람이 뒤돌아보면서 눈치없다는 듯이 황당해 한다. 나만 빨리 걷고 있었다. 다들 반장의 확성기를 타고 부르는 소리에 내달린다. ‘어떻게 현장에서 뛸 수가 있지?’ 다른 건설 현장 경험이 있던 나는 너무나 놀랐다. ‘안전제일!’ 현장에선 뛰지 않는 게 첫 번째인데 기본적인 안전교육도 없으니 엉망이다. 일용직노동자는 임금차이만 나는 게 아니라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권리도 없어서 당연한 인권을 보장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인간다운 삶과 일용직 노동자는 너무나 안 어울린다. 더 잡생각을 할 틈도 없이 기계처럼 몸을 움직인다. 금요일과 토요일이 가장 물량이 많은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연장 근무도 잦다고 한다. 십오 분 연장해도 다 임금으로 계산해 준다니 좋았다. 미리 겁준 대로 양은 엄청나다. 특히 무거운 조립 형 나무 서랍장을 싼 박스와 세탁기, 뭔지 모를 묵직한 쇳덩이도 온다. 쓰나미처럼 들이닥치는 음료수캔 박스들과 1.5리터 물6개 팩은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다.

쉬는 시간 동료들과 조금 친해졌다. 어느 동료는 일 시작한지 6개월 째 13kg이 빠졌다고 했다. 평균적으로 5kg은 다들 빠지는 것 같다. 다이어트 약 먹어도 안 빠지던 살이 여기서 일 시작하고 살만 빠진 게 아니라 근육도 생기고 몸매 라인이 예뻐졌다고 했다. 요요 올까 봐 못 그만두겠다는 농담도 오고 갔다. 따로 자영업을 하는 데 장사가 어려우니  폐엽은 피해보고자 시작한 ‘투잡러’들도 많고 젊은 취업준비생도 있다. 원래 극한 직업이라 여자는 안받았었는데 작년 10월부터 채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자들이 힘이 세지는 않지만 손이 빠르기도 하고 물건 정리는 남자보다 더 잘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일용직의 탄력적 근무시간이 매력이다 보니 지금은 남자보다 여직원이 더 많다. 여성의 고용 지속률도 남성보다 오히려 높다고 했다. 어느 애기 엄마는 새벽에 잠깐 일하는 거니 애만 아빠가 유치원에 보내면 돼서 시작했다고 했고 갑자기 아이 때문에 못 가게 되더라도 마음 편하게 근무 취소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한다.

다음 날 토요일, 애기 엄마가 출근을 못했다. 탄력적 근무시간은 좋지만 그래도 그렇게 여러 사정으로 일주일에 6일을 못 채우면 주휴수당이 날아가는 게 아까웠다. 다른 복리후생이 따로 있는 게 아닌데 그것마저 못 챙기니 내가 다 속상하다.

시작한지 7일차, 일요일이 되었다. 익숙해진 일, 좋아진 체력, 돌아온 입맛 등 장점이 많아 계속 일하고 싶었지만 친구한테 계속 신세를 질 수 없어 그만두기로 했다.

일하고  다음주 화요일. 2019 6 18.   처음  임금이다. 377,800. 얼마 만에  돈인지, 모바일 앱의 빨간색 입금액을 한참 바라보았다. 감개무량하다. 2010  직장에서 연봉이 2,500만원 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돈인  몰랐다. 최저시급 4,110원일   느꼈는데 최저시급 8,350원이  2019, 그보다 적은 임금을 받아 쥐고 10년만에 깨닫는다. 대학 졸업    동안   번도 정직원으로 일하지 못했다. 계약직이라도 꾸준히 일하다 보면 경력이 되고 10년뒤면 뭐라도  있을  알았다. 일찍 결혼이라도 했으면 나았을까? 이렇게 불안하진 않았을 것만 같다. 부모님 말씀을 들었어야 했는데, 죄송하고 막막하다. 서른  살까지 싱글 여성으로서 나름 부족함 없이 욜로족으로 잘살았는데  순간에 무너진 기분이다. 억척같이 돈이라도 모아놨으면 이렇게 좌절하진 않았겠지만, 이제와 후회해봐야 소용이 없다. 오늘도 모집자는  명인데 지원자는 414명인 입사지원 페이지를 열고 기업의 열람일을 확인한다. 영원히 미열람으로 남을 것만 같다.  

출근 전날, 친구에게 받은 인수인계
일하고 난 뒤, 집에가기전 찍은 맑은 하늘
일주일 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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