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서 기적 같은 나날들 Ep.10
나는 오늘도 기꺼이 책임과 사랑을 담아 손을 내어준다.
첫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경험하면서 속담처럼 전해지는 레퍼토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임신을 하면 ‘배 속에 품고 있을 때가 좋을 때다.’ 출산을 하면 ‘이제 고생 시작이다.’ 신생아 시기를 지난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아기가 손 타면 안 된다. 버릇 나빠진다.’이다. 처음에는 손 타면 안 된다는 뜻을 정확히 몰랐다. 다만 직감적으로 아기가 아닌 양육자를 위한 말이라는 건 알아챘다.
특히 할머니 세대에서 주로 하는 레퍼토리인데 가만 들어보니 옛날에는 먹고사는 게 우선이라 아기를 안아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한 번, 두 번 안기 시작하면 손맛을 알아챈 아기는 엄마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초장에 손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시절 생계 전선에 뛰어든 엄마들이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기의 버릇으로 탓을 돌린 것이 마치 육아의 정설인 양 굳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육아 휴직 중인 내게도 ‘아기가 손 타면 안 된다.’는 말을 한다. 심지어 나의 엄마는 꽤 신식 마인드인데도 그런 말을 한다. 당신의 귀한 딸이 몸 상할까 염려되어하는 말이다. 나 또한 엄마가 되고 나니 그 마음이 이해되기도 하고 실제로 손목 인대가 늘어나거나 염증 때문에 고생하는 주위 엄마들을 보면 나도 슬슬 손에서 떼어 놓는 버릇을 들여야 하나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아기가 백일이 지나면서부터 부쩍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낮잠은 토끼만큼 자는 데다, 혼자 노는 시간은 십 여분이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행여라도 모른 체하고 안아주지 않으면 저 작은 몸통 속에 얼마나 큰 울림통을 갖고 있는지 우레와 같은 성화를 낸다. 굳이 어른들 말을 빌리자면 손을 탄 것이다.
엄마와 통화 중에 요즘 육아 상황을 말했더니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해답을 내놓았다. 네가 손을 줘서 그런 건데 어쩌겠어. 낳았으니 책임져야지. 아차 싶었다. 낳았으니 책임지라는 말은 어디서 들었던 게 아니라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았을 때 내가 엄마아빠한테 했던 말이었으니까. 누군가의 딸이기만 할 것 같았던 시절에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물었던 책임인데, 돌고 돌아 어느덧 엄마가 된 내게 묵직하게 날아왔다. 모전자전이라고 나의 딸도 '낳았으니 책임져'와 같은 말들을 연신 외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부모가 책임져야 할 무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다.
사실 울음소리가 한 옥타브씩 올라갈 때마다 고민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때마다 조리원 선생님이 내게 해준 말을 떠올린다. 지금 이때 엄마아빠가 안아주지 누가 안아주냐는 말.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면서 마음껏 안아주고 싶은 내 마음을 단순 명료하게 일치시켜 주는 조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임신했을 때가 편하다, 걷기 시작하면 고생 시작이다, 손타면 버릇 나빠진다와 같은 뻔한 말들이 싫었던 것 같다. 고작 3개월 차 밖에 안되었지만 아기가 엄마를 원할 때 손을 주는 건 버릇이 아니라 신뢰와 사랑이 쌓여가는 과정이라 믿는다. 그것이 내 세계의 정설이다.
방금 튼 모빌이 금세 지겨워졌는지 여름도 아닌데 작은 매미 한 마리가 바드득 운다. 나의 부모가 내게 그러했듯 오늘도 기꺼이 손을 내어준다. 무엇보다 내가 부모에게 그러했듯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손을 필요로 하지 않을 걸 알기에. 스스로 멋지게 날아오르는 그 순간까지, 낳았으니 책임질게.
2023.04.19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