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筆 라디오 005
집필 라디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이틀에 한 편을 쓰겠다고 정했지만, 지난 이주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몸이 아팠고 마음이 조금 울적했다. 몸과 마음이 아파도 써야 작가라면, 슬프지만 나는 이미 글렀다.
경기도민이 된 지 2년이 되어간다. 어딜 가나 아이가 많고 도심과 자연이 공존하는 환경이 여전히 만족스럽지만, 일의 선택지는 줄었고 친구를 만나기엔 멀다. 어렴풋이 타국에 살면 이런 느낌일까 싶다.
감사하게도 아직까지 끊긴 인연은 없지만 가끔 친구 목록을 살피며 어떤 친구는 멀어지겠구나 싶고, 이미 멀어졌다는 생각에 친구 목록에 있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남편도 나와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지난 한 달 동안 남편의 지인만 연달아 세 번 만났다. 대화 중에는 늘 나에 대한 질문도 날아들어왔다.
내가 일을 쉬고 있는 걸 아는 지인은 경기도에서 일 구하는 게 쉽진 않다며 공감을 해주었다. 나의 퇴사 유무를 잘 모르고 있는 지인은 일을 다시 쉬고 있는 건지 물었고 지금은 아이들에게 집중한다는 말에 역시 그게 제일이라고 나의 희생을 치하했다. 그리고 나를 처음 본 지인은 일을 하고 있는지 다소 직접적으로 물어왔다. 그때마다 나는 “아직은요”, “쉽지가 않네요.”같은 말로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사실은 목에 생선가시가 걸린 것처럼 불편했다.
그들은 내게 어떤 악의도 없었다. 오히려 남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아내인 나까지 신경 써주는 걸 잘 알고 있다. 한때는 상대가 묻기 전에 내가 어느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싶어서 입술을 씰룩씰룩거린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구직 사이트를 한 시간 넘게 스크롤하다가 결국 알바 사이트에서 그럴싸한 알바를 뒤지는 날이 빈번하기에 ‘출근이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일에 대해 물으면 자꾸만 긁히는 것이다. 다행인 건 우~후~우 하고 싶은 말은 해야 돼~ 안 그러면 정말 병이 돼~ 우효의 노랫말을 외치던 객기의 시절은 지났고 말의 무게를 알게 된(알아야 하는) 나이이므로 이제는 의식적으로 말을 아낀다. 그것은 신중하게 인연을 맺는 남편을 향한 배려이기도 하다.
매일 아침 도르마무가 되는 집을 돌보고, 아이를 챙기고, 책을 읽고 글도 써요. 책만큼이나 드라마도 많이 봐서 방구석 평론가가 되기도 해요. 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일’이라면 늘 하고 있어요. 그런데 마음 깊은 곳에서는 돈을 벌고 싶은 가봐요. 누가 요즘 뭐 하냐고 물으면 마음이 요동치거든요. 예전엔 돈이 곧 자존감이라는 말이 싫었는데, 지금은 그 말이 설득력 있게 느껴져요. 그래서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연금 복권 3장을 샀어요. 나무 막대기로 긁으려던 차에, 사장님이 그건 긁는 게 아니라 당첨 번호로 확인하는 거래요. 당첨 번호를 발표하는 날, 로또보다 연금 복권이 될 확률이 1.6배나 높다는 사실에 괜히 두근거렸어요. 그런데 웬걸 화장실 거울이 갑자기 깨진 거예요. 미신을 잘 믿는 탓에 직감적으로 꽝이구나 싶었죠. 그렇게 집에서 북 치고 장구치고 하면 하루가 끝나 있어요. 회사 의자에 앉아 있을 때는 지겹게도 안 가던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 건지. 내 세상의 시간만 다른 것 같아서 무서울 때도 있어요. 그래도 두 볼이 저릴 만큼 순수하게 웃던 적은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다 눈길에서 엉덩방아를 찧은 날을 빼면- 내가 아이였던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아요. 누군가를 우주만큼 사랑해서 눈물이 나는 게 아직은 어색하고 신기해요. 입은 가볍고 엉덩이는 무겁던 회사원인 시절보다 단조롭지만 정말이지 매력적인 날들이 많아요. 엄마인 나도 궁금해해 주세요.
라고, 사실은 말하고 싶었다.
2025.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