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모자 군단

집筆 라디오 004

by 무해향취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아니 정확히는 아이가 둘이기 이전에 나는 모자 쓴 엄마는 되지 말아야지 했다.


매일 아침 엄마 모자 군단 속에 내가 있다. 리본이 달린 밀짚 모자, 챙이 둥그스름한 벙거지 모자, 영문 레터링이 박힌 볼캡 모자, 극한의 효율을 고려한 선캡 모자… 엄마 모자 군단은 대게 아침 9시가 지나면 마치 스위치를 끈 것처럼 발걸음이 현저히 느려지며, 한 손에는 700mL는 족히 넘어 보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토스트를 장전한다. 평소 걸음이 빠른 편인 나도 의식적으로 힘을 살짝 빼고 걷는다. 집으로 곧장 갈지 말지, 무엇으로 배를 채울지 그냥 비울지, 청소기를 먼저 돌릴지 빨래를 먼저 할지.


고민하는 동안 엄마 모자 군단과 가까워졌다. 그들은 짝을 이루었기에 군단이지만, 나는 짝이 없어 모자 병사 1이다. 모자 병사 1은 걸음을 더욱 늦춘다. 왠지 스무 발자국 정도 떨어지면 적당한 것 같다. 군단을 바라보며 저 모자를 모아 산처럼 쌓는 상상을 한다. 그녀들의 고유한 채취에 전날 밤에 감은 것으로 추정되는 샴푸향이 적당히 묻어 있고 생활을 유추하게 하는 집 냄새와 크고 작은 아이들의 채취가 한데 뒤섞인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 코를 자극할 때 즈음 그 고단한 향기에 눈물이 조금 날 것도 같았지만, 배가 먼저 꼬르륵 울었다. 토스트의 진한 버터 향이 모자 산을 자욱하게 덮어버렸다. 일단 먹고 생각하자. 우리에게 주어진 이 짧고도 달콤 쌉싸름한 틈을 만끽하면서. 그러니까 모자 쓴 엄마는 죄가 없다.


2025.09.25